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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Apr 02. 2024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면

2014년 3월 기록

전화가 왔다.


그 아이 엄마였다. 1년 전 즈음 뇌종양 진단을 받고 추적 관찰 하던 아이의 엄마였다. 다급한 목소리로 울먹이고 계셨다.


최근 3개월 전 즈음부터 급격하게 컨디션이 나빠지고 있었기에 그 아이의 엄마의 목소리인 것을 알아챈 순간 마음이 철렁 가라앉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지만, 난 아직 그 아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데, 이제 아이는 뇌종양 때문에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최근에 입원했을 때에는 연하 기능 검사 상, 연하 기능이 너무 저하되어 있어 음식을 절대 입으로 삼키면 안 된다는 소견을 들어서 L-tube를 통해 페디아파우더 feeding을 시작했다. 입원 기간 동안 점차 섭취량을 1200 kcal까지 늘려 페디아파우더를 챙겨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셨다. 서울에서도 멀고 먼 부산으로.


그리고 집에서 지내는 동안,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져 부산에 있는 병원에 가셨다고 한다. 지금 응급실에 있는데, 바로 중환자실로 가자고 한다고. 당장 기관절개술도 해야 하고, 인튜베이션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울먹이시면서 전화가 왔다.


좀 전에 아이 아빠랑 상의했는데, 서울로 오시고 싶다고 하시며 혹시 입원장을 내줄 수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신다.


아이 엄마는 평소 워낙 침착한 성격이신데,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이를 간호하고 챙기는 일은 모두 간호사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자꾸만 바쁜데 부탁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던 엄마.


아이 간호하시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던 터라 밥은 드셨냐고 물으면 다이어트하고 좋다고 웃으시던 엄마.


그렇게 한 번이라도 더 웃으려고 하시고, 고맙다는 말은 한 번이라도 더 해주시려는 듯이 얼굴을 볼 때마다 고맙다고 하시던 엄마.


그 엄마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어왔을 것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팠다.


전화를 끊고, 전공의들에게 연락해 내용을 전달했고, 전공의들이 직접 엄마에게 연락을 주기로 했다.


몇 분이 흐르고 병동 전화로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아까보다 훨씬 더 흐트러진 목소리로. 이제는 울먹임이 아니라 터지는 울음과 함께 말이다.


"선생님, 우리 아이랑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으려면 여기 부산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병원으로 올라온다고 드라마틱하게 나을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도

나도

의사들도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앰뷸런스 타고 올라오는 게 아이에게 더 무리라는 걸 아니까.


엄마에게 우리 의료진들 모두가 아이를 많이 생각하고 있고,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며, 가족 같은 아이라고 전했다.


엄마는 언제나 그러셨듯이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겨우 겨우 내 마음이 흐트러져 버리지 않게 꼭 붙잡고 통화를 마무리했지만, 수화기를 놓고 나서는 속으로 어떡해, 우리 착하디 착한 아이랑 엄마랑 아빠랑 어떡해, 어떡하라구, 를 반복했다.


/ 간호사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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