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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Mar 28. 2024

엄마의 엄마

2014년 4월 기록

데이 듀티 끝자락에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 응급하게 중환자실 케어가 필요한 환자가 대기 중에 있어서 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 병동으로 나갈 수 있는 컨디션의 환자가 있는데 지금 바로 받아줄 수 있느냐는 거였다.


그런데 다른 게 아니라, 그 환자의 나이가 36세라는 점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나이를 확인하면서 왜 어린이병원으로 배정했는가를 물었고, 성인 병동에는 1인실 밖에 없고 그 환자분이 1인실을 거절하면서 소아 병동도 괜찮다고 하여 내려간다고 하였다.


통화 중에 병동 다른 전화로 레지던트한테서까지 연락이 와서 부탁한다며 받아달라고 하였고, 그렇게 성인 환자를 어린이 병동으로 전동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동 침대로 내려온 환자 얼굴을 보고는 말 그대로 멍 때렸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나. 이 얼굴은 내가 봤던 얼굴인데, 누구지.


1년 전 봤던 아이의 엄마였다.

보호자로 왔던 엄마가 이번에는 환자로 온 거다.


그 아이도 Epilepsy로 Craniotomy and Lobectomy 수술을 받았고, 엄마도 같은 진단명으로 같은 수술을 받은 거다.


내가 멍 때리고 있으니, 환자가 한 마디 던졌다.


선생님, 나 벌써 잊은 거예요?


그때서야 정신 차리고, 맞죠, 내가 아는 그 엄마, 맞죠, 라며 엄마를, 아니 환자를 맞이했다.


병실로 안내하고 병실 침대로 옮겨서 자리를 정리했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오랜만이라고, 아이는 지금 많이 괜찮아졌고, AED (Anti epileptic drugs) 약도 끊어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엄마 건강을 물었다. 엄마야말로 지금 컨디션 괜찮으시냐고, 밥 잘 드시고, 회복 잘해서 아이한테 얼른 가자고.


함께 오신 환자의 보호자는 엄마.

다시 말해, 내가 1년 전 봤던 아이의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그 아이의 외할머니.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옆에서 한 말씀하신다.


내가 이 막내딸 때문에 속이 상해 죽겠어요.


그렇다, 이 엄마도 누군가의 막내딸이었다.

엄마 옆에서는 영락없는 딸.


그러면서도 환자는 또 그 아들을 걱정한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사랑이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이 사랑을 부른다.


아이가 수술 후 회복 잘해서 지금은 약도 줄여가고 있듯이, 엄마도 얼른 회복 잘하기를.


아이도, 엄마도, 그의 엄마도 모두가 건강하기를.


마음이 어려웠다.


/ 간호사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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