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기록
결국 오늘 밤에는 나의 아빠와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병원에서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아빠엄마의 마음이 되어 주다가 마음을 다 써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내 아빠엄마에게 당신들의 아이가 되어 울어버렸다.
오늘 그 아이 엄마가 그랬다.
선생님, 저는 멀리 보지 않아요. 하루 하루를 봐요.
이 말이 감사하기도 하고, 한없이 슬프기도 했다. 하루를 사는 것은 내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니까, 하루 하루를 본다는 그 문구 자체는 좋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더니 이 문구마저도 상대적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나 예쁜 딸을 품 안에 안고 있으면서도 이 딸이 훗날 중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인생의 짝궁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딸이 딸을 낳는 - 그런 감사함을 희망할 수 없고, 하루 하루를 살아내었다는 감사함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다니.
아빠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는 토닥이며 이 모든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정체 혹은 정지되어 있지 않은 - 감정의 오르락 내리락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인간다움의 증거라고 덧붙이셨다.
감정의 밑바닥까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바닥에 가게 되면 바닥을 박차고서 다시 올라올 수 있으니 이 감정들을 무시하기보다는 보듬어주라고 하셨다.
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무력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나를 그저 자책하거나 나무라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무기력함에서 오는 슬픔보다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는 것을 아빠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아홉 살의 나이에 세상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들을 슬픔의 감정을 통해 느낀다는 것은 굉장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엄마가 아이의 10년 후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본다고 말하는 것 또한 어딘가 나를 슬프고 화나게 한다.
우리 아빠엄마가 우리 네 남매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기쁨, 슬픔, 즐거움, 화남 등과 같은 그 모든 감정들이 그 엄마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은 불공평하다.
오늘의 내 감정은
비가 '쏴아' 억수로 퍼붓거나
함박눈이 '펑펑' 하얗게 내리는 날에
그런 세상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조용히 보고 있는 것과도 같다.
그렇게 소리 없이
크
게
떨
어
지
고
있다.
/ 간호사 김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