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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Mar 18. 2024

엄마, 나는 하고 싶은 게 많단 말이야.

2013년 1월 기록

새해가 되면서 아홉 살이 된 우리 아이가 울면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아이는 정말이지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지금 병원에 있는 이 상황이 아이를 너무 나도 슬프게 만들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이라는 녀석은 우리 아이의 연수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자리에 있어서 수술도 쉬이 할 수 없고, 응급실로 오자마자 응급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에 병실로 입원했었다.


그게 불과 한 달 전의 일이고, 지금은 아이가 어느 정도 병동에는 제법 적응하고 우리들의 얼굴도 익혀 얼굴을 보면 먼저 인사를 건네곤 한다.


요즘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친구들에게는 종종 편지를 쓴다. 편지지 줄마다 다른 색깔의 색연필로 삐뚤빼뚤 하지만 꾹꾹 눌러쓴 글씨가 가득한 편지다.


며칠 전에는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썼고, 오늘은 유치원 때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쓰고 있었다.


엊그제는 엄마가 아이를 나무라시며, 의사 선생님이 오셨을 때 왜 매번 아프지 않다고 말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종종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는데, 의사 선생님께는 아프지 않다고 말했던 거다. 아이는 엄마의 질문에 갑자기 울먹이며 대답했다.


엄마, 나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야. 정말 선생님이 오셨을 때에는 아프지 않았어. 그런데 선생님이 안 계실 때마다 꼭 아팠던 거야. 그래서 선생님한테 아프지 않다고 했던 거야. 난 거짓말하지 않았어, 엄마아아.  


아이참, 우리 천사 같은 아이. 응, 맞아. 네 말이 맞아. 넌 거짓말한 게 아니야.


아이의 눈물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미어진다.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며 울먹이는 아이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슬프다. 그래,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을까.


그리고 아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이 얼마나 넓디넓은데. 네가 보고 듣고 느꼈으면 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꼭 보여주고 싶은데. 아이가 슬퍼하는 만큼이나 나도 슬프다.


그런데 말이다. 내 마음보다도 더 슬플 마음은 엄마의 마음이다. 나는 그 마음을 미처 100% 온전하게 헤아리지 못하고 마는 것 같아 미안하고 아쉽고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내 마음이 얼마나 슬픈지 깨닫는 순간, 엄마의 마음은 감히 가늠된다. 결국에는 온전하게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말이다.


엄마는 첫 입원 날부터 약 사흘 동안은 아이를 부둥켜안고서 펑펑 우셨었다.


내가 엄마 어깨에 손만 올려도,

엄마에게 잘하고 계시니 힘내시라는 말을 할 때에도,

담당 전공의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아이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시던 동안에도 그렇게 사흘 동안을 내리 우셨다.


그 후에는 엄마가 마음을 단단히 다잡으셨다는 것을 엄마 눈빛으로 알았다. 아이가 울어도 엄마는 쉬이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고, 담담하게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다.


그 모습에 감사하면서, 또 엄마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엄마를 안아주고, 엄마의 이야기를 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해주는 만큼은 못하더라도 내가 엄마에게 엄마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와 엄마를 간호했다.


나는 한없이 부족하고 말 테지만 그래도 노력해 보겠으니 이 세상 모두가 우리 아이들과 또 엄마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우주의 모든 기운이 모여 그 기도를 들어준다고 하지 않은가. 세상의 아픈 아이들을 위해 세상 모두가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다.


/ 간호사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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