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떴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동그란 햇님이 산위로 오르며 하늘이 열린다. 오늘도 운동화를 신고 가을들판을 걸으러간다. 대문을 열고 나오니 아랫집 장군이가 멍멍하고 짖는다. '장군아, 나야' 그 소리에 짖음도 멈춘다. 모월저수지로 가는 둘레길로 들어서면 양쪽에는 노랗게 익은 벼이삭들이 논을 가득 메워 황금들판이란 말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걷다보면 알알이 맺힌 벼의 알곡들이 참 멋스럽다. 이 풍경도 이번주가 지나면 베어지고 없겠지! 벌써 들판에는 논에서 탈곡하는 트렉터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모월저수지에는 밤새 세월을 낚은 강태공들이 작은 보트를 타고 여유롭게 낚시르 하고 있다. 가을을 느끼게 하는 억새들이 흐트러지게 피어있어 햇살과 어우러져 가을풍경을 만든다.
만보이상 걷기, 가을이 되면서 매일 만보이상씩 걸으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주말에는 아침에 여유롭게 걸을수 있어서 좋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걷다가 걷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길 , 마당에 나와 있던 아랫집 언니에게 인사를 한다. 일주일만ㅊ에 보니 더 반갑다. '자기네 조롱박 필요해? 우리 달려있던 것 수확했는데 필요하면 주려구' 그말에 '주시면 감사하죠' 라고 말하니 텃밭구석으로 이끈다. 조롱박 두 그루를 심었는데 많이 열려서 쓸 곳을 찾다가 아이들 미술활동하면 좋을 것 같아 남겨놓으셨단다.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인터넷 찬스를 썼다. 조롱박손질이라고 치니 '먼저 톱으로 자르고 속을 빼내고 겉의 껍질을 벗긴 후 물에 삶아 말린다' 라고 되어 있다.
창고에 가서 톱을 꺼내들고 장갑을 끼고 작은 조롱박을 반으로 갈랐다. 흥부와 놀부의 박타는 장면처럼은 아니지만 쓱쓱 밀어보니 작은 박이라 쉽게 갈라진다. 자르고 또 자른다. 다음은 속을 파태려고 주방에서 숟가락을 들고 나왔다. 파고 또 파고 그러다 조금 더 쉬운 방법을 생각한다. 조각도를 꺼내와 파내고 숟가락으로 긁어내니 좀 더 손질이 쉬워졌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해도해도 끝이 없다. 두 시간이상, 점심도 먹지 않고 수돗가에 꼬박 앉아서 단순노동을 반복했다. 파낸 조롱박을 껍질을 벅기는데 수세미로 벗겨야 한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벗겨지지 않았다. 철수세미, 까칠한 수세미로 해도 신통하지 않다. 혹시 몰라 숟가락으로 긁어보니 잘 긁어져싿. 톱으로 반을 가르고 속을 파내고 하는 것보다 겉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 가자 오래 걸렸다.
다음 단계는 가마솥에 삶기, 물을 붓고 굵은 소금을 넣고 손질한 조롱박을 넣고 팔팔 끓을 때까지 삶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조롱박은 끓일수록 단단해진다. 손질은 처음 해보는 것이라 힘든줄도 모르고 반복 작업을 했다. 어느 덧 물이 팔팔 끓고 연두색이던 박이 색깔이 노르스름하게 변해서 바구니에 건져와 수돗가에서 찬물로 담궈놓았다. 그제서야 늦은 점심 겸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텃밭에 심어놓은 무청을 뜯고 삼겹살 한 팩, 모둠소시지를 준비하고 부추는 손질해서 간장, 식초, 설탕, 참기름, 참깨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쌈장과 함께 매운 청량고추도 준비했다. 불판위에 '지지직 지지직' 구워지는 삼겹살을 얼니 무 잎사귀에 싸서 먹으니 달큰한 맛이 입안을 맴돈다.
물에 담궈둔 조롱박을 건져 그늘지 평상위에 말린다. 덜 벗겨진 껍질은 작은 칼을 이용해 살살 긁어주니 말끔하다. 밥 먹고 남편과 함께 어둑하지만 동네한바퀴 산책길에 나섰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길가에 툭 떨어진 알밤이 보인다. 허리를 숙여 몇 개 주워 주머니에 넣고 길가에 핀 베롱나무 꽃도 보고 하늘도 보고 , 놀하게 익은 벼들도 보며 한바퀴를 돈다. 밭에는 마늘심기가 한창이다. 넓ㅇ느 밭은 흰색 비닐을 씌워놓고 한 줄에 10개씩 타공된 구명에 마늘을 넣고 흙을 덮어준다. 어둑해진 동네풍경이 고요하기만 하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 고요한 집안으로 들어오면 노곤했던 하루해가 저물어간다. 가을풍경도 어둠과 함께 조용히 내려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