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
재래시장은 내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쉬는 날이 다가오면 오늘이 며칠인지, 끝자리 수가 몇으로 끝나는 날인지 달력을 보며 다시 한번 확인한다. 시부모님과 같이 살 때도 주말에 별다른 계획이 없으면 애들 셋까지 일곱식구가 가까운 지역의 재래시장에 가서 북적북적한 사람들 속에 섞여 장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배가 출출할 즈음에는 그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소고기를 먹고 싶으면 오랜만에 드라이브도 할 겸 장흥 시장에 가거나, 시부모님이 기운이 없어 보인다 싶으면 무안에 가서 뻘낙지로 만든 탕탕이를 먹으러 갔다. 나주에서는 국물이 뽀얀 나주곰탕을 먹기도 하고 일로나 창평을 가면 국밥을, 함평에서는 비빔밥을 사먹기도 했다.
함평 오일장은 2일과 7일, 일로는 1일과 6일이다. 함평, 일로, 무안은 거리가 가까우므로 여차하면 수시로 찾아갔고 한때는 토요시장이 매주 열리는 장흥에 자주 갔는데 장에서 주전부리도 하고 소고기도 사고 겸사겸사 댐도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보림사라는 사찰까지 들르면 우리가족의 당일치기 여행코스가 된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작은 마을 곡성은 3일과 8일이 장이었는데 신안 지도에서 근무할 때 재래시장 열리는 날이 같아서 ‘곡성에도 장이 서겠구나’ 생각하며 옛 추억에 빠져들곤 했다.
장날이 되면 엄마 손이나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 부산스럽게 따라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했던 추억이 가득하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한약으로 쓴다던 징그럽고 무서운 말린 지네와 시뻘건 불 앞에서 굵은 땀 뻘뻘 흘리시며 온종일 두드려대던 대장간 아저씨, 친구 엄마가 생선을 파시던 노점을 지나고 나면 값을 깍아달라고 실랑이하거나 시래기 하신다며 배춧잎을 긁어모아 쓸어 담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 저편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최근에 딸이 살고 있는 경산 하양장을 남편과 딸과 함께 우연히 들르게 되었는데 비록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고 계셨지만 하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 장터가 생각보다 길어서 무척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먹거리도 다양해 바삭바삭한 칠게 튀김과 족발을 손에 들고 먹으면서 구경했는데 까만 봉지 하나씩 늘어나는 재미와 시식용 음식 집어먹는 맛이 추가되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딸집에 방문 할 때면 오일장(4일과 9일)과 겹치는 날인지 확인해 보는 습관이 또 하나 생겼다.
지난달에는 큰아들이 근무하고 있는 포항에 가서 남편과 죽도시장을 구경했는데 생선 파는 골목, 회 먹는 골목, 옷이나 야채, 그릇 파는 골목 등 사람들에게 휩쓸려 정신없이 보다가 자칫 길을 잃을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깜짝 놀랐다. 점포수가 1500여개나 된다고 하니 한나절은 돌아다녀야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볼거리, 먹거리가 너무나 많았다. 특히 한복을 팔거나 개량복을 만들어 파는 가게도 많이 보여서 더욱 예스럽고 새롭게 느껴졌다.
비 온 뒤끝이라 날씨가 약간 쌀쌀해, 맛집이라고 소문 난 가게에서 뜨끈한 어묵 탕에 꼬마 김밥을 먹고 씨앗호떡으로 유명한 할매가게에서는 종류가 다른 호떡을 사서 나눠먹었다. 저녁에는 경산에서 딸을 만나기로 해서 짧게 구경하고 포항의 특산물인 과메기를 샀다. 다음에는 애들이랑 같이 가서 더 여유롭게 구경하고 남편이 먹고싶어 하던 고래고기와 식당에서 너무 비싸 고민만 하다가 먹지 못한 대게를 푸짐하게 한 상 차려놓고 배 터지게 먹자고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대형마트도 많고 로컬푸드를 판매하는 곳도 있어 일부러 재래시장을 찾아갈 이유는 없지만 오히려 나이를 먹으니 콧바람도 쐬고 사람 구경도 할 겸 재래시장을 더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 재래시장만의 시끌벅적한 풍경이며 한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들고 한 입씩 나눠 먹으며 부담없이 다닐 수 있는 거리, 또 지역마다 말투나 분위기가 다른 모습 등이 여전히 재래시장을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또 가끔씩 일부러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은 시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멀리 있어서 이제는 남편과 둘이서 오랜 추억을 곱씹으며 가볍게 움직인다.
다행히 우리 집 근처에도 작은 상설시장이 있다. 퇴근 후 찬거리가 필요할 경우에는 시간을 내어 일부러 장에 들른다. 오래전부터 시어머님을 많이 따라다녀서 단골 가게도 제법 생겼다. 특히, 야채나 고기, 생선을 살 경우에는 마트보다 일부러 시장을 이용한다. 별로 많이 사지 않았는데도 덤으로 한두 개씩 끼어주는 재미가 쏠쏠하고 콩나물 같은 경우에는 금액보다 양을 너무 많이 주기도 해서 더 자주 애용하기도 한다. 아마 사장님이 일찍 떨이하고 얼른 들어가고픈 마음에 듬뿍듬뿍 담아주시는 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내가 경험한 시장의 법칙?은 3천원이어도 한봉지, 4천원이어도 한봉지, 별로 차이가 없다는거~~!
결국 아무리 비슷한 가게가 많이 늘어서 있어도 많이 주고 맛있는 가게를 고르기 마련이지만 장을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낯선 사람들 소리와 따뜻한 정이 뒤섞인 설레임의 향기는 두고두고 함께 하고픈 재래시장만의 매력이다.
밀가루 냄새 폴폴 풍기는 국화빵부터 각종 튀김 냄새, 생선 냄새, 고향 냄새 등 코끝을 자극하는 추억의 향기가 한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