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잔치
3월 중순 어느 날,
'꽃샘추위'라며 차가운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더니 다음 날 아침에는 정말 거짓말처럼 한겨울에도 보기 힘든 함박눈이 세차게 내렸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봄이 온 것처럼 햇살도 환하고 기온도 제법 따스했는데 웬 심술인지 아직은 겨울이 잊혀지고 싶지 않은가 보다.
한 귀퉁이에서는 시린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새 성질 급한 봄꽃들이 푸른 싹을 틔우고 봄 향기를 전하는가 싶더니 잠시 스치는 여린 햇살에 속아 먼저 기지개 켜던 이른 꽃망울들이 갑작스러운 눈보라에 당황하며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었다.
며칠 후,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치듯 주변을 서성거리던 된바람도 이제는 모두 스러져 지나갔나 보다. 메마른 가지에 맺힌 작은 꽃망울들이 환하게 피어날 정도로 눈부시게 빛났고 따스한 날들이 계속 되었다.
나도 내내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그동안 미루어 왔던 '안부 전하기'나 '옷장 정리' 등 새로운 계절 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최근 날씨가 계속 심술을 부려 대서 주말에도 방구석에만 박혀 있느라 몸이 근질근질했었는데 우연히 ‘광양 매화마을’에 대해 안내하는 방송을 보았다. '축제는 이미 끝났으나 꽃샘추위 때문에 꽃들이 이제야 개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원래 우리 가족은 사람들이 많이 붐비거나 축제가 열리는 곳은 잘 찾아가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축제도 끝났다고 하니 오랜만에 콧바람도 쐴 겸 남편에게 ‘일요일에 광양 가자~~’라고 예고했었다.
수년 전에 애들 데리고 방문했던 기억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다시 가보니 아담한 마을과 탐스러운 꽃들이 어우러져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축제가 끝났다고 해도 오히려 지금이 축제인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질 정도로 끝도 안 보이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밀려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도 햇살 환한 매화 풍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셔틀버스를 타기위해 대기하는 줄 광양 매화마을 입구
최근 일주일 사이에 ‘준비~ 땅!’ 하고 봄꽃들이 시합하듯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린 것 같다.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셔틀버스를 이용했는데 기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더 웃겼다. "저번 주에는 까만 꽃몽우리만 있어서 손님들이 기사한테 불평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 주에는 꽃이 많이 피어서 다행이라며 당신도 많이 기쁘다”고 하셨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미풍에 팔랑팔랑 흩날리는 꽃비까지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금상첨화'이겠지만 나만의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다음에 오시는 분들께 양보하기로 했다.
푸른 섬진강 줄기를 따라 이산 저산 골짜기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을 보니 마음이 한결 푸근해지고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주변을 관심 있게 둘러보니 어느새 거리마다 형형색색 다양한 꽃들이 천지였다.
점점이 찍힌 하얀 목련들, 병아리 발자국을 찍어놓은 듯 한 앙증맞은 개나리꽃, 하늘의 별이 내려 앉아 수줍게 모여 있는 것 같은 노란 수선화 등... 어린 시절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은은한 향기로 내 발길을 사로잡던 천리향도 이미 활짝 피어 있었다. 내가 걸어 다니는 모든 거리가 바로 '꽃밭'이었고 온 사방이 말 그대로 '꽃들의 잔치'였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문구 하나 '꽃길만 걷자~!'
오늘 내가 가고, 추억하고, 향하는 모든 길이 꽃길이었다.
맑은 햇살과 자연의 꽃내음이 가득한 요즘, 발걸음도 가벼웁게 일부러라도 나가서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봄은 그렇게 소리없이 우리 곁에 조금씩 천천히 한 발자국씩 다가오고 있었나보다.
엊그제는 오랜만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사무실 앞 언덕에서 자란 올망졸망 키 작은 쑥을 한주먹이나 캤다. 오늘 저녁 밥상에는 봄 내음 진하고 부드러운 쑥국을 달콤하게 먹을 수 있겠다.
참 아름다운 봄날이다.
담장 밖으로 활짝 피어있는 천리향
p.s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산불이 하루빨리 진화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