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은퇴이민 생활기
해마다 추운 겨울을 필리핀에서 보내고 3월 경에 한국에 들어오면 다시 일자리를 찾아본다. 모텔 청소일 뿐만 아니라 도청이나 시청에서 채용하는 기간제 일자리도 두루 찾아보고 올해 할 일을 정하게 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매번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보지만 최종 선택은 모텔청소 쪽으로 향하게 된다.
어느 날은 정신없이 바쁘게 청소를 하고 있는데 1주일간 장기 숙박을 위해 입실하신 건설현장 인부께서 점심을 드시고 들어오며 커피를 두 캔 사다 주셨다. 처음 보는 분들인데도 우리에게 수고가 많으시다고 인사를 하시며 주셔서 너무 감사하게 받았다. 이런 소소한 배려가 우리를 정말 기쁘게 하고 힘이 솟아나게 해 준다.
얼마 전 TV 특종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98세 되신 노인께서 매일같이 지하철 역에서 동냥을 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동냥노인이라고 불리는 그분은 경기도 부천에 있는 한 빌라에 사시는데 택시를 타고 서울까지 가셔서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 역에서 동냥을 하셨다.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니 한 달 수입이 많게는 60~70만 원 되고, 적을 때는 40~50만 원 정도 된다는데 막상 돈이 필요해서 동냥을 하는 게 아니라 98세에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저 연세에도 집안에 가만히 있기보다는 뭔가 일을 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서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건강이 허락된다면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정부 차원에서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모텔 청소일을 시작한 지도 4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이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머리를 크게 쓰지 않고 몸만 잘 움직이면 되니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니 어느 정도 숙달이 되면 일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규칙적으로 일을 함으로써 신체적으로도 건강해짐을 느낀다.
둘째,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고정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할 일이 없어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에 비해 노후에도 의욕을 가지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는 게 정신건강에도 훨씬 좋을 것이다.
셋째, 이 일을 함으로써 직업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쉬운 일만 찾거나 힘들다고 회피하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다 보면 그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어느 고령의 철학가가 TV 방송에 나와서 "60세~75세가 인생의 전성기이며 황금기이다"라고 하며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무언가를 배우려는 공부를 계속하고 일을 멈추지 말라고 하였다. 그것이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의 균형을 잡아주어 노후에도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모두 파이팅 하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