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모두까기 Chapter 2
예전에 ‘시크릿’류의 자기계발서들이 한창 인기를 끌 때도 있었다. ‘꿈꾸는 다락방’류의 유사 서적들도 넘쳐났었다.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이 팩트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채 엮여졌고,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열렬히 불어 넣으며 일종의 솔루션으로 자기 암시법을 제안했다. ‘온 우주가 너를 돕는다’는 뉴에이지적 사상도 끌어들였다.
맙소사, 온 우주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려면 우리의 우주는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21년 4월, YTN에서 청년 고독사에 관한 뉴스가 보도됐다. 청년들이 고독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의 논점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현재 삶이 상당히 위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보도 스케치 영상 속에 문득 고인이된 청년의 책상 사방에 빼곡히 붙어 있던 수많은 자기 암시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각오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한때 마약 같은 자기 계발서에 열광한 적이 있어봤기에 너무 잘 알고 있던 익숙한 모습이었다.
빽빽히 붙어있는 포스트잇 만큼이나 그 청년의 삶에 대한 처절했던 몸부림이 느껴져 오랫동안 마음이 아렸다. 하여, 자기 암시가 대단한 솔루션인양 종용했던 그 저자는 이 뉴스를 보고 어떤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지 궁금해졌다.
자기계발서로 유명했던 저자들 중에 본인 글에 영향을 받은 독자들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실질적인 후속 지원을 실행했던 거의 유일했던 분이 있다. 바로 '구본형 변화경영 사상가'이다. 이 분은 본인의 이름을 건 ‘구본형의 변화경영연구소’를 설립하고 매해 꾸준히 본인의 제자들을 양성하는 등 저자로서 그의 글과 가르침을 아끼던 독자들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헌신했다.
변경(변화경영연구소)은 매 기수별로 1년의 과정을 거쳐 저자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다. 기수를 선발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일정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내야 한다. 이 자소서 심사 예선 단계를 통과하면 다음으로 본선 단계로 4주간 4권의 책이 주 단위별 과제로 주어진다. 일주일 단위로 과제 책을 요령 없이 꼼꼼히 읽어내야 하는데 그냥 읽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다가 인상 깊은 구절을 적고, 페이지 넘버를 적고, 왜 해당 구절이 나에게 인상 깊었는지 이유를 남기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무찔러 들어오는 한 줄과 그 이유, 그리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당시 과제로 주어졌던 책이 ‘동서문화사 솔로몬 탈무드’, ‘동서문화사 몽테스키외의 법의정신’, ‘실천문학사 닥터 노먼 베쑨’, ‘한님성서연구소 빅터 프랭클린의 무의식의 신’ 이었다. 매주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정해진 마감 시간을 넘겨 과제를 업로드하면 그대로 탈락이었기에 예비 원구원들의 원고는 늘 마감일 자정이 다 되어서야 허겁지겁 올라왔다.
원고 마감은 출산과 부모님의 장례식 외에는 어떤 예외도 허용되지 않았다. 해외 출장을 가도 시차 상관없이 시간은 엄수되어야 했다. 주 단위로 주어지는 책들의 두께도 두께지만 한 페이지도 그냥 읽기 힘든 ‘법의 정신’ 같은 책은 정말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꾸역 꾸역 마늘을 씹는 심정으로 읽어 나가야 했다.
결코 일상 생활을 영위하면서 가볍게 읽고 넘길 숙제 정도가 아닌 정말 죽기 살기로 읽어야 하는 독서 였다. 만일 지적인 분야의 '뇌지컬 100'이란 프로그램이 있다면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지옥 코스다.
안타깝게도 구본형 선생님은 내가 응시했던 해의 기수생들을 채 만나지 못하고 암으로 소천 하셨다. 비록 가르침을 사사 받을 기회는 없었지만 난 그때 체험했던 독서법을 본 따 MBA 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의학림(醫學林)’이라는 독서 모임을 만들고 깨어있는 청년 신앙인들과 함께 ‘CRF(Catholic Reading Forum)’를 만들며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책벗들과 함께 책을 읽어왔다.
변경을 실제로 수학했던 지인의 증언에 의하면 연구원들은 2주에 한번 책을 읽고 모여 다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데 한 사람씩 나와 본인의 읽은 책에 관한 후기를 시간 제한 없이 말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함께 경청하면서 모든 순서를 마치면 맨 마지막에 구본형 선생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최종 코멘트를 해주는 형태로 진행됐다고 했다.
그 시간이 장장 9시간을 넘긴 적도 있었는데 선생님은 모든 연구원들의 후기를 끝까지 듣고 남김없이 기억했다가 마치 고도의 침술사처럼 한명 한명 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포인트를 짚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변경의 연구원들은 구본형 선생님을 '사부님'이라고 불렀다.
변경 1년의 과정을 마칠 즈음엔 모든 연구원들이 스스로 어떤 저자가 될 지를 기획해야 했고 수료식엔 출판 관계자들을 초청해 그 앞에서 각자 출판할 책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시간도 갖는다고 했다. 저자가 마련해주는 쇼케이스였던 셈이다.
연구원들은 수료 후 실제로 책을 내야하는 게 숙명이었다. 변경 입학 단계에서 초판 인쇄의 종잣돈으로 쓰일 목돈을 보증금처럼 걸어두어 제자들이 반드시 저자로 데뷔하게끔 설계했기 때문이다.
내가 수학해보지도 않고 전해 들은 내용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구술하는 이유는 '돈'을 주제로 한 자기계발서로 돈 벌 궁리만 하는 사짜들이 부디 정신차리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적어도 구본형 선생님은 본인 글에 영향 받은 독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그들을 당신과 같은 저자로 만들어주기 위해 헌신하고 솔선수범했다. 당신 글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저자의 무게는 이와 같다.
솔선수범이 뒷받침되지 못한 글은 마약보다 더 악(惡)하다. 이런 책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그저 많이 팔린다고 부추기는 서점들은 더더욱 한심하다. 무슨 책이든 잘 팔리면 장땡이라면 서점하지 말고 차라리 다른 사업을 하라. 한 나라의 대표 서점의 수준은 국가의 지적 자존심 아니던가?
수도원 시절에 수도원장님과 수사들이 함께 한 자산가의 별장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배경 지식과 별장의 규모가 아니었다면 이 사람이 정말 자산가인가 싶을 정도로 소탈하고 검소했다. 그 분은 스스로의 부를 부끄러워했다. 그가 누리는 부가 다른 이들의 결핍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부를 누리기까지 상처 입히거나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생각하며 속죄하고 싶어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사회에 환원할 수 있을 지를 신중하게 고민했다.
진짜 자산가는 자신이 부를 쌓은 비결이라고 책까지 써가며 동네 방네 소문내지 않는다. 누군가 당신 주변에서 부를 과시하거나 부를 화제로 던지면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전청조'의 수법이 그랬다. 현재 출판 및 유통 구조라면 '전청조'가 그럴듯한 예명으로 가장하고 돈을 주제로 자기계발서를 쓰고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다한들 아무도 모를 것이다.
★ 본 원고는 세번째 출간 예정작인 <Mission, 카이로스의 시간>의 초고입니다. <Mission, 카이로스의 시간>은 <백년병원> 챕터 1의 심화 버전으로 기획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