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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얀 Apr 03. 2024

아프면 환자다. 청춘이 아니라.

Part I. 모두까기 Chapter 3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은 당신이 왜 실패를 거듭하고, 여전히 그 상태인지를 두루 나열하고 공감해 준 다음 나름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또는 저자 본인)의 성공 방정식을 규격화 하고 그대로 해보라고 제안하는 프로세스를 밟는다. 안타깝지만 그걸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성공이 나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삶은 유효한 루틴이나 매뉴얼화된 훈련법이 존재하는 운동 종목이 아니다.


지구촌 수십억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운명과 환경에서 태어나 수천억의 에피소드들을 만들어가며 살다 소멸한다. 개중에 몇 가지 에피소드만이 대중에 관심을 받을 뿐이지만 굳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다 세상을 떠나는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의 삶은 수두룩하다. 저마다 행복의 기준들도 모두 제각각이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드라마다. 지금 당신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신은 ‘당신’이라는 삶의 드라마를 애청하고 있고,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왜 태어났니’라는 장난스러운 생일 축하 노래는 실은 매우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이 지구라는 전 우주의 먼지만도 못하게 작은 행성에 수십억명 중의 한 사람으로 ‘존재’하게 됐는가? 이걸 한번도 궁금해하지 않고 지금 그저 부자 되는데 목숨 걸고 있거나 그냥 저냥 살고 있다면 큰일이다. 이미 당신은 죽어있다. 살았지만 이미 죽은 삶이다. 설령 천만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내일 아침 로또에 당첨됐다 해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온전한 나로 살아왔던 게 아니라 이미 돈이 나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3년 3월 20일, 유엔의 지속가능발전 해법 네트워크가 ‘국제 행복의 날’에 공개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10점만점에 5.9점을 기록해 세계 137개 나라 가운데 57위를 기록했다. 핀란드는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10위권에는 대부분 북유럽 국가들이었다. 매년 이런 뉴스를 듣는 것도 이렇게 쓰는 것도 지겹고 답답한데 조금만 더 살펴보자.


핀란드인들은 하루에 책을 읽는데 19분을 소비한다. 독서는 핀란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취미다. 2021년엔 서점 시장이 2,300만 유로 증가했다. 23년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Rämö의 동화로 33만권의 책이 판매됐다. 반면 우리나라 통계청의 23년 발표에 따르면 13세 인구 절반 이상은 1년 동안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다. 핀란드는 하루에 19분 읽는데 우리나라는 인구 절반 이상이 1년 동안 한권도 읽지 않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23년 한국의 베스트셀러는 예스24 발표 기준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1,000억대 자산가의 자기계발서다. 얼마나 팔렸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독서 뉴스' 19년도 기사에 따르면 적게는 4만부에서 많게는 20만부 정도 팔리면 연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두 다 책을 읽읍시다. 책 속에 답이 있으니, 책 읽고 행복해집시다! 라는 10년전에 잠깐 유행했던 식상한 얘길 다시 꺼낼 생각은 없다. 그때 준비되지 않은 저자가 일으킨 어설픈 인문 독서 유행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나라 서점에 '자기계발서'와 '돈'이 넘쳐나고 있다. 독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주창하던 그 저자도 또한 근래에 '돈'을 주제로 또 글을 썼던 걸 보고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긴 했지만...  


한 나라의 베스트셀러 순위는 그 나라가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는지를 상징한다. 그 나라 베스트 셀러가 특정 분야에 꽂혀 있다는 건 반대로 그 분야에 관해 지적, 심리적, 사회적 결핍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정을 먼저 바탕에 두고 지금 24년 3월 28일 기준, 교보 문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참고삼아 해석해보자.


1위 불변의 법칙 <돈의 심리학 저자>
2위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3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4위 파타 <96년생 여성 배우 작가의 에세이>
5위 세이노의 가르침 – <정체를 알수 없는 자산가의 돈 얘기>
6위 이처럼 사소한 것들 <해외 소설>
7위 모순 <모순된 사회상 속에 살아가는 민초들에 관한 양귀자 소설>
8위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행복한 삶에 관한 내용>
9위 주술회전 25 : 인외마경 신주쿠 결전 <일본 만화>
10위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들은 실제로나 심리적으로나 빈곤한 상태이다. 이러한 빈곤한 상태로 인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부를 열렬히 갈망하며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불혹(不惑)을 맞이해 한점 의혹 없이 인생 후반기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할 40대들은 여전히 많은 의혹에 시달리며 모순적인 사회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 역시 이 험악한 시대에 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지 심각히 고민하는 상황이다. 반면에 90년대 MZ들은 본인 세대만의 문법을 쓰는 또래 작가에 열렬한 지지를 표하는 중이며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로 대변되던 한 세대를 풍미하던 일본 만화는 ‘주술회전’으로 대체 되어진 상태다.


핀란드 최대 서점인 AKATEEMINEN의 베스트셀러 순위도 한번 살펴보자. 이 서점의  순위 집계 방식은 우리나라처럼 무슨 장르던간에 한번 잘 팔리는 건 계속 종합 순위에 때려박아 독서 편식을 유발하는 순위 집계 방식과는 다르다. 단행본, 논픽션, 소설, 아동 및 청소년 도서별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나눠 골고루 표시해준다. 단행본, 논픽션, 소설, 아동 및 청소년, 다시 한번 곱씹어도 장르 구분이 매우 깔끔하고 의미있다.


일단 논픽션 장르만 살펴보자. 우리나라와 똑같이 이 원고의 초고를 쓰고 있는 24년 3월 28일 기준이다.


1위. 경제와 인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이념적 뿌리에 관한 저자만의 관점)
2위. AI 혁명
3위. 화산의 그늘에서
     (러시아 침략 전쟁을 보며 격변하는 유럽의 정세 속에 개인의 역할에 관한 고민)
4위. 알렉스 (핀란드 총리 성장기)
5위. 사람들의 길을 위한 황금빛 모래 (핀란드 화가의 전기)
6위 폭로, 도핑 뉴스와 침묵을 원하는 기자 이야기  
7위 서로 형제처럼 (러시아가 소련으로 회귀하는 역사적 배경에 관한 고찰)
8위 핀란드에서 가장 비싼 변호사 (한 변호사의 돈과 권력의 배후에 관한 이야기)
9위 보이지 않는 왕국 (곰팡이 균사체에 관한 고찰)
10위 나는 당신을 본다. (심리학자의 감사의 힘에 관한 내용)


현재 핀란드의 최고 관심사는 ‘러시아’다. 논픽션 랭킹이 아닌 단행본 분야의 1위는 ‘러시아의 생각’이 차지했다. 러시아가 도대체 왜 저러는 지에 관해 온 국민이 나서서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전쟁에 관해 휴전 상태인 우리 나라를 뛰어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단순히 러시아를 공부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가 다시 소련으로 회귀하는 근본 원인에 관해 다같이 공부하며 혹시라도 일어날 전시 상황 속에서 핀란드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 지에 관해 고민한다. 넷플릭스의 스웨덴 영화 <블랙크랩> 역시 비슷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현직 정치가의 전기가 순위권에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정치 분야가 우리나라처럼 혐오의 대상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깨어 있는 언론가와 양심적 변호사의 이야기, 그리고 과학과 심리학등 매우 다채로운 분야에 관해 폭 넓은 대중들의 관심을 보여준다. 자기계발서는 10위권 밖에서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가 없고, 돈에 관한 내용은 더 그렇다. 그렇다고 핀란드가 석유가 펑펑 나오는 엄청나게 부유한 나라이던가?


국내 대표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 1,2,5,8,위가 자기계발서이고, 그 중에 돈 얘기가 1위와 5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현재 우리나라가 얼마나 양극화되어 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상태인지를 반증한다. 초중고,대학 교육까지 받았지만 마흔살이 되어서 쇼펜하우어를 다시 보고 있는 현실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초라한 민낯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숨만 나오는 위정자들의 몇번의 잘못된 정책 결정들로 인해 계층간 사다리는 일찌감치 붕괴되고 고착화되어 사회적 신분은 이미 계층화 되어 버렸다.


그나마 우리 시대의 미래인 청년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고 있고, 출산율은 다른 나라 학자가 더 걱정하는 헛헛한 웃음만 나오는 죽음과 절망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나혼자 산다’에서 김대호 아나운서가 애완용으로 키우던 새우가 새끼를 낳자 무척 좋아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얘네들은 살아가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되면 새끼를 낳아요.” 문득 이 나라 청춘들은 관상용 새우만도 못한 처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 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치료가 시급한 환자다. 아픈 환자에게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라 애 안 낳고 살려고 한다는 말 쉽게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기성 세대들은 청춘들에게 전세 사기를 가르치고 본인들이 직접 해치우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이젠 '돈' 에 관한 그럴듯한 교리를 설파하며 자기계발서 마저 팔아 치우고 있다. 내일 없이 미래를 먹어치우는 양심 없는 어른들아,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리자.


황금저금통을 쫓아 오로지 저만 살겠다고 아우성 치는 인간 군상들을 향해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할아버지가 이렇게 외쳤지 않았던가?


 "제발 그만들 좀 해, 이러다 정말 다 죽어."




[2020 원더키드]     


-이원길-


끝 모를 공동체의 이기는

생명을 더 빨리 폭멸케 한다.
  

생명의 빛이던 태양이

인간의 이기 속에

살기를 띈 파괴의 빛된 것처럼


 한없이 신나고 밝아야할 청춘의 손에

서로를 죽이라고 칼을 쥐어준 건

우리의 이기였다.


청춘의 박탈감을 논하기 전에

사형제의 부활을 말하고


청춘의 절망감을 고민해보기 전에

장갑차를 배치한다.


무량판 부실같은
이 사회의 무책임한 이기심은


새내기 교사를 목매게 하고

청춘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찬란하게 피어나야할 꽃을

2평 남짓 고시원으로 몰아가뒀다.


그래도 이 사회는

살아보겠다는 청춘을

폭염 속 4만보를 걷게 만들어

기어이 살해하고도

평소 지병을 숨겼다 억지한다.


카트 끌다 죽은 청춘은


몇년전

쇳물 붓다 죽은 청춘,

빵 만들다 죽은 청춘,

엘리베이터 수리하다 죽은 청춘,

지하철에 끼여 죽은 청춘이었다.


생존률을 고민해야하는 사회가

출생률을 말할 자격이 있나?


청춘의 지옥,

대한민국의 지옥같은 현실은

세계 잼버리 대회를 통해

전세계에 생방송 됐다.


허허벌판, 살인볕 속

그늘 하나 없는 새만금은

각종 지역 이기주의를

파묻어 만든 간척지였다.



★ 본 원고는 세번째 출간 예정작인 <Mission, 카이로스의 시간>의 초고입니다. <Mission, 카이로스의 시간><백년병원> 챕터 1의 심화 버전으로 기획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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