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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Aug 09. 2024

독서 모임의 이유  

그것은 여행의 이유와도 같다. 

독서 모임을 가기 전,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오늘은 어떤 분들이 오실까?',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등의 걱정이 설렘보다 조금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순간이다.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고 했던가. 두려움을 기꺼이 즐겨보려 하는데도 가끔, 아니 자주 잘 되지 않는다. 


독서 모임 당일에 몸이 좋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대자연의 날이 불청객처럼 빨리 오기도 하는데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자주 오시던 분께 진행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해 볼까?'라는 생각이 독서 모임을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들었다. 하지만 당일에 갑작스럽게 약속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몸을 이끌고 나갔다.


먼저 도착해 계신 분께서 모임 장소의 와이파이 ID와 PW를 채팅창에 공유해 주셨는데, '친절하시네.'라는 생각보다는 '왜 이렇게 빨리 오셨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던 것을 보면 짜증이 이미 몸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약해 놓은 커뮤니티룸의 책상을 닦고, 준비해 간 책과 노트를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독서 모임 시작 전의 루틴에 들어가니 몸은 내가 앞으로 두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조금씩 편안해졌다.  


자기소개를 하고, 책의 선정 이유를 이야기한다. 뇌는 생각을 많이 거치지 않고, 그저 솔직하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속이거나 꾸며내려고 하지 않을 때의 나는 현존하는 내가 되고, 그 어떤 것을 말해도 부끄럽지 않다. 모임 초반에는 나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참석하신 분들께 질문을 하는 순서로 진행한다. 어느 순간 화자에서 청자로, 진행자에서 모임의 구성원으로 장면이 전환되며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는 순간이 좋다. 모임을 방문한 이방인들이 경계를 푸는 순간을 위해서 나는 그렇게도 질문을 준비했나 보다. 


말을 잘하려면 잘 들어야 하기에 독서 모임에서 경청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방금 전에 했던 말이나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보다는 과거, 미래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청은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다. 좋은 대화를 위해서도 내가 다음에 할 말을 신경 쓰기보다는 상대에게 눈을 맞추고 최선을 다해 집중해야 한다. 경청은 곧 몰입의 순간으로 이어지는데, 몰입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바로 여행의 이유와도 같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라고 했다. 경청을 하면 거기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걸리고,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지 못했기에 질문을 받았을 때 머뭇거리게 되기도 하지만, 더 진실된 말을 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독서 모임이라는 두 시간 안에서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난다. 그것이 내가 한 달에 두 번, 독서 모임이라는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2024.08.08.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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