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으면 고전한다. 그 과정에서 고전은 사유할 거리를 준다. 독서 모임에서 주기적으로 고전을 선정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고, 내용에 몰입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끝까지 읽어내면 고전이 왜 이렇게 여러 세대에 걸쳐서 살아남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최근의 모임에서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다뤘다. 좋았던 페이지에 인덱스 스티커를 붙인 것을 보고 참석하신 한 분이 "수능 공부하세요?"라고 물었는데, 그만큼 인상적인 문장이 많았던 책이었다. 아래 발췌는 민음사 버전을 활용했다.
1. 재해석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의견을 상대방이 얼마나 존중해 주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미치는 나의 힘을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싫어한다.' (p227)
'난 과거를 생각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영원한 현재뿐이지.' (p123)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p176)
얼핏 빠르게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첫 번째 문장이 좋아서 - 에 덧붙여 내 말 좀 잘 들으라는 의미로 - 남편에게 읽어줬더니, 한 번 듣고서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며, "왜 이렇게 말을 어렵게 썼을까?" 묻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그 문장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사유의 힘이 길러진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현재'라는 표현에서 영원과 현재가 굉장히 모순되는 말임에도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이며, 현재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기에 '살아있는 존재에게 현재는 무한하다는 말이 아닐까', 하는 나만의 해석을 할 수도 있다.
2. 통찰력
'한 인간의 마음 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음을 안다.' (p93)
'남의 그림을 논평할 때는 그처럼 정확하고 참신한 비평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말하는 사람이, 자기 그림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진부하고 통속적인 면에 대해서는 왜 그냥 그대로 만족해 버리고 마는 것일까.' (p108)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p229)
소설 속 인물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고, 때론 과장되어 있지만 우리 자신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들과 그 이유를 이런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달과 6펜스'는 1919년에 출간된 책임에도 그때나 지금의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고, 같은 고민을 했었다는 점에서 공감을 하게 된다. 나아가 이런 문장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자기반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3. 묘사
'바람 한 점 없이 날은 찌는 듯이 덥고, 밤이 되어도 지친 신경을 달래 줄 서늘한 기운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햇볕에 바짝 달구어진 거리가 하루 종일 받았던 열기를 다시 그대로 토해 내는 것 같았다.' (p188)
4. 유머
'그때만 해도 나는 여자들이 빠지기 쉬운 잘못, 그러니까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누구 하고나 자신의 사생활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p48)
'나의 또 하나의 결점은 아무리 돼먹지 않은 인간이라도 말로 맞수가 될 만한 사람과는 어울리기 좋아한다는 점이다.' (p216)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 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p304)
고전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 중에 두 가지.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묘사가 뛰어나고, 때로는 실소가 나오게 하는 유머 감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에 빠져들지 않으면 계속 읽지 못할 것이고, 유머가 없으면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민음사에서는 이 '달과 6펜스'가 2000년 초판이 발행되어 2022년까지 88쇄가 인쇄되었다. 독자들이 찾는 글, 계속 읽히는 글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6펜스의 삶을 살면서도 나는 매일 달을 올려다본다.
달과 6펜스. 둘 다 놓칠 수 없기에.
5.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
'달과 6펜스' 제목의 기원: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소설에 대한 '더 타임스' 논평 중에 주인공 필립 케리를'달을 동경하기에 바빠서 떨어진 6펜스도 보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에서 유래함. 달은 꿈과 이상의 세계, 6펜스는 물질세계의 안정된 삶을 비유 (민음사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