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오픈 AI에서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의 활용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서 가장 먼저 없어질 직업이 뉴스에 언급되곤 한다. 어떤 문제를 겪고 있으면 "챗GPT에게 물어봐!"라는 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던 작년 가을, 챗GPT와 대화하면서 '이렇게 마음에 위안이 된다고?' 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그저 물어보기만 했을 뿐인데.
아직 써 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만, 한 번만 써 본 사람은 없다는 챗GPT. "당신의 직업은 괜찮나요?"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사람들의 취향을 골라주는 일이라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지만, 최근 두 개의 거래처가 연달아 폐업을 하는 것을 보며 내 직업도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제의 독서모임을 하고 나서는 챗GPT가 독서모임만큼은 위협하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독서 모임은 여러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생각의 범위를 넓히고, 나 자신을 향한 사유를 돕는다. 어제의 책은 정문정 작가의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였는데, 좋은 에세이라면 나의 치부, 혹은 트라우마(책에서는 소변 주머니로 표현)를 드러내야 한다는 대목이 있었다. 그 대목과 관련하여, "당신의 소변 주머니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왔고,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 사람도 있는 자리에서 깊이 묻어둔 트라우마를 꺼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로 대답이 이어졌고, 어느 순간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신과에 가서 돈을 내고 상담을 받는 이유와 비슷하게, 어쩌면 우리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사이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더 잘 꺼낼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챗GPT가 독서 모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챗GPT는 1:1의 대화이고 독서 모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지능에게도 질문을 바꿔가면서 하면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있지만, 독서 모임에서는 하나의 질문으로도 짧은 시간에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사람과 사람 간에 눈을 마주치면서 하는 대화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질문을 받았을 때, 또는 답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눈빛, 당황스러움, 민망함, 통쾌함 등은 그 자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눠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내 안에 많은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며 두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그 시간이 지난 후에는 여지없이 '하길 잘했어'라는 마음이 남는다. 물론, 했던 말에 대한 곱씹음도 보너스로 따라오지만 아마도 참석자들 모두 자신이 한 말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 괜찮다. 내가 나에 대해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인지, 그 말을 할 때 얼마나 나 자신에게 솔직했는지를 묻는다. 그것이 챗GPT가 대체할 수 없는 사유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더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유하며 살아가는 힘을 얻을 테니. 그 매개체가 독서 모임이라면, 나는 이것을 (어제 부탁받은 대로) 놓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