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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Oct 25. 2024

죽음을 생각할 때 따라오는 것들

사유와 질문을 함께하는 독서 모임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책을 모임에서 다루면서 첫 질문으로 준비한 것은 이것이었다. "당신은 죽음을 생각하나요?"


대답은

"종종 생각한다", "항상 생각하기에는 그럴 시간이 없다." "최근에 지인의 죽음을 겪으며 생각해 보았다." 등이었다. 역시 사람은 같을 수 없고,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독서 모임에서의 희열을 느낀다.


나는 죽음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그제도 뜻밖에 마주친 어두운 찻길에서 정면으로 돌진하는 차들을 보며 '저 차가 조금만 핸들을 꺾으면 내가 여기서 비명횡사할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죽으면 누가 제일 슬퍼할까? 그 사람은 지금 내가 소중히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이상하게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렵지 않게 일어난다. 처음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은 아주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야 할 시간이 되면 동생과 나는 바닥에 누워서 손을 꼭 잡고 "우리도 언젠가는 죽겠지?"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는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로 끝이 나곤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죽음을 생각해서인지 그것이 더 이상 내게 피로나 스트레스를 안겨주지 않는다. 다만 내가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인생의 모토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때에 하자'가 된 것도 죽음을 꾸준히 생각해 왔기 때문인 듯하다.


'과연 죽음의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보낸 중학생 시절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라는 책이 해답을 주었다.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해답.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내용은 다르지만 마무리가 비슷했다. 밝은 빛... 아직 우리가 죽음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지만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수용)와 원하는 것을 지금 하는 것(행동력)을 갖춘다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렇게 아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게 삶을 보낸 사람들이 더 젊은 시절로 돌아가길 원치 않듯이 매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대하면 눈을 감는 순간에 오히려 평온하지 않을까. 매일 아침 일어나서 마주하는 밝은 빛과 새소리가 소중하기에 나는 곧잘 죽음을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나를 온전한 나로 살게 하는 힘이 된다.


"내 평생의 삶이 정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면?"이라는 톨스토이의 질문이 그렇게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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