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 감독, 야큐쇼 코지 주연의 ‘퍼펙트 데이즈’를 절반 정도 봤습니다. 유명 감독과 칸 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받은 주연의 합을 보고 싶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의 시적인 스토리텔링, 일상에서 심오한 감정을 잡아내는 안목을 좋아합니다. 상업영화가 가지는 화려함과 빠른 기승전결, 극도의 갈등 구조, 자극적인 장면과 사건 등을 외면하고도 일상의 아름다움과 심오함을 담아낼 수 있음에 매력을 느낍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감독의 유명세나 칸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궁금증을 부추겼습니다. 주인공 ‘히라야마’가 잠에서 깨어나 이불을 개고, 양치와 세수를 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화초에 물을 주고,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와 왼쪽 선반 위에 놓인 열쇠, 카메라, 동전 등을 주머니에 넣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옵니다. 자판기 음료를 뽑아 차에 탑니다. 한 모금 마시고 홀더에 캔을 놓고 시동을 겁니다. 카세트에서 팝송이 흘러나오고 차를 달려 일터로 향합니다.
일터는 공원의 화장실입니다. 작업복에 Tokyo toilet이라고 쓰인 것을 보아 주인공은 공중화장실을 관리하는 회사의 직원인가 봅니다.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자기 집 화장실을 청소해도 이 정도는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꼼꼼히 정성을 다합니다. 작은 거울을 가지고 변기 아래, 비데의 물분사기 아래까지도 살피며 닦습니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살펴봅니다. 변기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서 엄마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찾던 엄마는 주인공과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보며 한참을 찾았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러며 물휴지를 꺼내 아이의 손을 닦아줍니다. 화장실 청소원과 잡고 있는 아이의 손이 위생상 걱정됐나 봅니다. 엄마는 손을 닦아주고 아이의 손을 잡고 유모차를 끌며 제 갈 길을 갑니다.
아이를 찾는데 도움을 준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서 벗어나니 아이의 더러워진 손이 더 걱정됐나 봅니다. 상황이 바뀌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의 우선순위는 달라지나 봅니다. 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철이 없고, 생각이 짧아 보이는 젊은 동료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에게 떼쓰거나 일을 대충하는 모습에서 ‘별로인 친구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 젊은 친구의 귀를 한 아이가 뒤에서 만지며 즐거워하며 노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자신의 귀는 그 아이에게 근사한 장난감인 것을 인정합니다. 다른 신체는 그저 귀에 붙어 있을 뿐인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철없고, 대충 일하며, 놀고만 싶어 하는 친구도 누군가에는 즐거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나무가 많은 공원 벤치에서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사직을 찍습니다. 나뭇가지와 잎새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향해 카메라의 방향을 맞추고 찍습니다. 찍은 사진을 출력해 잘 찍힌 사진은 보관하고 나머지는 버립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은 대상을 매일 찍습니다. 영혼이 우리 몸과 의식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결과물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혼은 몸과 생각을 통해 삶의 경험을 쌓으며 쓸 수 없는 것은 버리고 쓸 수 있는 것만 수집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주인공의 일상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떠 오릅니다. "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모든 순간, 앞으로 겪을 모든 순간이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같은 일, 같은 사람, 같은 고통과 기쁨이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영원히."
똑같은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똑같음의 반복은 지루할 수도 있지만 삶의 모든 선택이 무거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진정으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고통과 기쁨을 모두 받아들이며 충만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나를 위한 삶에서 타인과의 공존을 위한 삶, 세상과 함께 발전하는 삶의 방향을 잃지 않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