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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크 환자의 나날 Apr 21. 2024

향일암

등용문



  여수에는 향일암이 있다. 금오산에 있는 작은 사찰로, 많은 사람들이 여수에 오면 그곳을 올라간다. 상당히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대부분 사찰의 특징처럼 그곳 또한 주변이 조용하고 차분해지는 분위기가 있는데, 초입에서 많은 갓김치 가게들과 흥정하는 상인들, 높은 산길을 보고 걱정하며 수군거리는 관광객들, 즐겁게 웃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들이 땅 밑으로 꺼진 듯, 아주 작은 소리로 나무들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거기에 살짝 얹혀 있는 불경소리만 들린다.


 나는 몇 살 때였을까, 이 사찰을 처음 올랐던 적이. 그땐 돌계단의 단차가 너무 높다 생각하며 몇 칸 오르다 벤치에 앉아 쉬고, 먼저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다. 관광객들의 연령대는 의외로 다양했는데, 어린 친구들은 한 번에 두세 개씩 계단을 건너뛰며 앞서 간 다음 뒤돌아 엉금엉금 한 계단씩 오르는 어른들을 보며 지루해하며 쉬고 있거나, 다시 뛰어 내려가 자신이 엄청 빠르게 오를 수 있음을 자랑하곤 했다. 그 말을 듣는 어른들은 지친 목소리로 아유 참 대단하다 하며 맥 빠지는 소리로 칭찬하고 혹시 다칠 수도 있으니 뛰지 말고 조심히 올라가라는 당부의 말로 어린 친구들의 등을 토닥여준다. 그러면 신난 아이들은 또 두세 계단씩 올라간다.


 어르신들은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오른다. 보통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지만 보통은 예전엔 한달음에 올라갔는데 지금은 무릎이 아프다거나 아니면 중간중간 쉬어가야 한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그리곤 작은 벤치에 세네 명이서 최대한 엉덩이를 붙여 앉아 어떻게든 일행들을 앉히려 노력한다. 괜스레 서있기라도 하면 팔로 끌고 와 자기 무릎에 앉아보라며 방금 전까지 계단을 오르느라 쑤시고 아팠던 무릎을 쓱 내민다. 그럼 멋쩍어하며 무릎에 살짝 대보곤 서로들 민망하여 깔깔 웃곤 다시 에휴 가야지 하며 올라간다. 그 사이 아이들은 저 멀리 점처럼 보일 지경까지 올라가 있다. 그 서성거리는 작은 점들이 지쳐 계단에 앉을 때에도 어르신들은 올라가는 산길의 풍경을 보며 감탄하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어멈이 죽었다거나, 큰 병에 걸려 아프다는 화제로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오른다.


 젊은 연인들도 향일암을 오른다. 여수 10 경이라 소문이 나서인지 아니면 정말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젊은 친구들은 산길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멋있는 옷들을 입고 오른다. 게 중에는 심지어 구두를 신고 오르는 여성도 있었다. 정말 불편해 보였지만 그녀의 등을 살짝 밀어주며 살짝 뒤따라 오르는 남자친구는 등 뒤로 비상용 운동화를 들고 있다. 스트레이트의 불편한 바지차림에도 그는 웃는 미소로 여자친구의 뒤를 밀어주며, 서로 가뿐 숨을 최대한 숨기고는 이따금씩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을 보고 감탄한다.  잠시 멈춰서 보는 그 풍경이 지금 불편한 착장을 하고 오르는 그들에게 최대한의 보상이자, 향일암에 도착해 더 멀고 아름다운 바다를 보기 위한 등반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듯했다.


 조금 의외의 관광객도 있었는데 바로 아기들의 부모였다. 아기띠에 안겨 있는 아이들은 한 계단마다 팔다리를 덩실거리며 재미있는 듯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르르하며 웃지만, 아기를 안고 있는 부모들의 눈은 약간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전투적이었다. 그들은 대충 묶은 머리와 편한 티 셔츠와 운동화를 신고 있어도 여길 오르는 그 누구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듯 보였다. 그들의 회색 운동복이 점점 젖어 진회색이 될 때쯤, 중턱 전망대에 도착하게 된다. 그럼 부부는 말없이 서서 바다를 본다. 그리고 역시 좋았다며 소곤거리고 아기들에게 바다를 어떻게든 보여주려 몸을 이리저리 틀어보지만 아기들은 아무래도 자기 부모들의 헉헉대며 말하는 모습이 더 즐거운지 손가락을 쫙 펴고 팔을 흔들면서 부모의 볼을 탁탁 치고 까르르 웃는다. 한숨을 돌리고 그들은 다시 오른다.


 이렇게 올라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데, 같이 온 어머니가 내 다리를 툭툭 치신다. 다 쉬었으니 다시 올라가자는 신호였다.


 향일암을 오르다 보면 가파른 길을 위로해주듯 등용문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문이 있다. 그곳엔 용이 여의주를 감싸고 있는 석상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곳에 서서 한 번씩 사진을 찍고 올라간다. 나와 어머니도 거기에 서서 여의주를 한 번 쓱 쓰다듬고는 하는 일이 다 잘 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빌었다.


 운동 부족에 비만으로 헉헉 거리는 나와 이제는 무릎이 아파 몇 걸음마다 쉬셔야 하는 어머니 이렇게 우리 느림보 모자는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여러 잉어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고 어차피 좁은 길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끙끙거리시는 어머니의 뒤에서 허리를 밀어주며 올라가게 되었다.

 문득 옛날이 생각났다. 시간이 지나 풍화되고 왜곡된 점도 있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혼자서도 장롱을 번쩍 들어 옮기곤 하셨고, 지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와서도 기분이 답답하시면 새벽까지 방 인테리어를 바꾸시며 이리저리 책을 옮기고 청소하으며, 언덕 위의 집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면 저 아래에서부터 몇 걸음만에 정상까지 올라오셨다. 어머니의 허리 높이만큼 자랐었던 어린 시절의 나의 눈엔 그 모습이 어디 신화 속에 나오는 세상을 떠받치는 거인 같아 보였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여행도 많이 다니셨는데, 일이 끝나고 새벽 기차를 타고 갔다가 아침, 점심 내 관광을 하고 저녁에 돌아온 다음 바로 일을 나가시기도 하였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랐던 터라, 지금 무릎이 아프다는 말도 처음엔 그저 가끔씩 찾아오는 환절기 때 걸리는 잔병인 줄 알았더랬다. 그래서 나는 손사래 치는 어머니를 올라가면 좋을 것이라고 무턱대고 떠밀며 올라갔다.

 삼십 계단인가를 올라가시곤 벤치에 앉아 무릎이 벌써 안 좋다고 큰 돌 위에 앉아서 쉬고 계셨다. 나는 아직 그런 것이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 무리가 된 것인 줄만 알았고, 또 출발한 지점에서 멀지 않았기에 올라오며 쳐다보는 사람들이 부끄러워 살짝 어머니의 팔을 잡아챘다. 앞서 가는 어머니의 등을 보고 있으니 예전 어린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고작 조금 더 흰머리가 늘고 조금 더 피부가 탄력이 없어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도가니가 아프다 하시며 펭귄처럼 걸어 올라가셨다. 몇 번은 다리의 힘이 풀려 크게 기우뚱했다.

 언제나 내게 젊게만 보였던 분이 이제는 이 등산로의 다른 어르신들처럼 무릎을 짚고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구나.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두 번째로 쉬었을 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정해진 것 마냥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올라가고 나면 오르는 인적이 조금 뜸하다가 다시 우르르 올라오곤 했다. 아마 밑에 있는 주차장에 버스가 주기적으로 도착해서 그런 것 같다. 나와 어머니는 벤치에 앉아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좋다고 말했다. 바람은 올라 갈수록 조금 거세졌기에 땀이 나도 금방 식고 오히려 조금 춥기까지 했다. 끊임없이 가라고 등 떠미는 바람을 못 이겨 어찌 되었건 여기까지 왔으니 정상이라도 보고 가자고, 아픈 무릎을 툭툭 두드리시며 일어나는 어머니와 그 모습이 내심 억지 부려 미안하고 안타까운 아들은 입으로 영차영차 외치며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간다.

 열심히 바쁘게 헤엄치는 잉어들 사이로 우리 또한 천천히, 물살에 잠기고 무리에 섞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옮기는 바람소리 분다. 우리는 몰래 이야기를 듣는 길 가의 대나무들처럼 고개 숙인 채, 속으로 내심 등용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며 말없이 한 걸음씩 올랐다. 느리게 가는 우리를 지나쳐 올라가는 많은 사람들의 등들이 보이고 서로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마치 질서 정연하게 대오를 이뤄 행군하는 군인들처럼 보였다. 진군이라면 어디로 진군하는 것일까. 그 끝에서는 과연 목적한 바를 다들 얻을 수 있을까.


 등산로의 거의 끝무렵에는 작은 카페건물과 전망대 데크가 있었다. 전망을 위해 데크 앞에는 키 큰 나무들이 없지만, 주변의 나무들이 살짝 굽어 있기에 조금 뒤에 서서 바다를 보면 마치 그림의 액자처럼 보였다. 자연이 만든 고풍스러운 풍경을 보자면 그저 와-하고 감탄만 나온다. 푸른색의 바다와 그 위에 노란 햇빛 내리며, 파도의 출렁임에 자연스럽게 부서지며 산란하고, 저 수평선에서는 구름마저 바다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 밑으로 작게 보이는 거북머리가 바다 쪽으로 삐쭉 튀어나와 있다. 어머니와 나는 지명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하고 전망대 난간에 기대 바람을 쐬고 있었다.

 옆에 있는 아이들은 우와 하면서 역시나 처음처럼 뛰어다니고 있었고, 어르신들은 무릎을 통통 치지만 그래도 옹기종기 모여 웃는 표정으로 활기차게 대화한다. 사실 전망대까지 오는 내내 전혀 만날 일 없는 가정들의 숨겨진 비사들을 들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아까 보았던 젊은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이 없거나 둘만 들을 수 있는 정도로만 속닥거렸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무언가 재빨랐다. 재빠르게 사진을 찍고,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젊은 부부들은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는 표정으로 큰 숨을 내뱉었다. 아기는 언제나 표정이 방긋방긋 이었다. 여하튼 수많은 잉어들이 격류를 헤엄치다 어렵사리 찾은 물 웅덩이를 찾아 숨을 돌리는 모습처럼 조금은 여유롭게 움직였다.

 나는 또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등용은 참으로 어렵다.

 좋은지 나쁜지 알 수는 없지만 향일암으로의 길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어려웠다. 등용의 고행 앞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튀어나오는 온갖 표현들이, 표정들이 나에게는 재미있었다. 살짝 전망대 뒤로 물러나 사람들을 봤다. 각각 행동은 다 달라도 모두들 웃는 얼굴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걸음이 힘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올라가면 아마 맞이할 부처님도 머쓱하지 않을까. 내가 이런 상상을 하며 딴짓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사진을 다 찍고 천천히 나를 부른다.


 이제 다시 올라갈 시간이다. 용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고행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이윽고 바람소리도 시시껄렁한 이야기 소리도 뚝 끊기고 오로지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와 감탄만 들려올 때, 무거운 고개를 들고 보니 시선 끝, 등용의 길은 바위의 좁은 틈 사이로 이어져 있었다.  

 그 틈의 이름은 해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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