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짧은 지문이었고, 더운 여름날 하기 싫은 공부를 하는 와중이어서 그랬을까.
여름날이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언어 영역 비문학으로 신채호의 역사관이 지문으로 나왔었다. 아 속의 비아, 비아 속의 아라는 개념을 가지고 혼란한 세계 속 정세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역사관과 태도를 말하는 지문이었는데, 문제를 풀면서 무척이나 나의 가슴에 단어들이 콱하고 박혔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말들을 되뇐다.
아 속의 비아.
물론 역사에 관한 개념으로서 나에게 남은 것은 아니지만, '아'라는 나와 '비아'라는 나 이외의 것들이 혼재되어 서로 갈등과 다툼이 큰 줄기의 역사로만 나타는 것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의 살아감에도 적용되는 느낌에 감명받은 것이다. 어쩌면 신채호의 그냥 말만 가져다 쓰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와 내 속의 내가 아닌 것이 싸우고 있는 것을.
그것을 자아분열이라 하기엔 너무나 거창하기도 하고, 또 우유부단이라고 말하기엔 적절치 않았다.
어떤 문제를 앞에 두면 확실히 드러나는 것이 아와 비아의 갈등이다. 유혹이라 말할 수도 있고, 욕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내 안에 있어 나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유혹하는 것이, 가끔은 옳은 일일 때도 있었고, 어쩌면 나를 위하는 일인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 속의 비아가 내가 아닌 다른 나이고 온갖 감정과 유혹과 욕망과 도덕과 절제가 섞여 있는 것이라면, 그 비아의 반대인 아는 과연 무엇인가. 나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 여름날, 나는 그 말을 듣고 가끔 비아가 무엇인지 궁금해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자신을 자각하고 비아와 마주 선 주체이고, 스스로 자성을 가지고 있으며 고유성을 지키려는 항성과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변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아는 소아와 대아로 나누어져 있다는 지문의 내용만으론 충분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짧은 지문이었고, 더운 여름날 하기 싫은 공부를 하는 와중이어서 그랬을까 그저 고등학생인 나는 읽고 문제만 풀 수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완벽히 이해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여름날, 나는 다시 한번 그때처럼 비아와 아를 생각해 본다. 어찌 되었던 아가 있는 순간 비아가 성립되고 등등의 긴 문장은 세세히 기억이 나지 않아도, 무척이나 강렬하게 의식을 집어삼킨다. 아, 그것이 무엇일까. 나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을 때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열심히 이야기를 해도 정답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더군다나 누군가에게 간단히 나를 소개한다면 몰라도, 비아를 두고 아를 말했을 때 순수한 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주차장에 쭈그려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생각한다. 멍하게 풍경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과연 순수한 나로서의 즐거움일까 아니면 저런 것을 즐길 수 있게 된 상대적인 비아가 내 귀에 속삭인 즐거움인가. 하긴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땐 김치가 끔찍하게 싫었는데 지금은 그냥저냥 먹는다. 아무 생각이 없다.
어렸을 땐, 그랬는데-.
수많은 것이 바뀌고, 세상도 바뀌고 같이 살 던 가족은 떨어졌다가 다시 붙었다가 결혼을 하기도 하고, 반려동물도 생기고 다시 건물과 가게가 바뀌고 예전의 모습들은 점점 멀어져 간다. 비아와 아의 아주 작은 투쟁에서부터 사회 규모까지 확장된 투쟁 속에서 결국 '나의 나됨'은 무엇일까.
담뱃재를 툭툭 턴다.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쭈그려 있던 몸을 활짝 편다. 갑자기 솟아 오른 알 수 없는 게으름. 들어가서 눕고 싶은 이 감정이 순수한 나일까. 나는 과연 어느 손을 들어주면서 또 다른 투쟁을 맞이해야 할까.
복잡하고도 복잡한 짧은 시간이 지났다. 노을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