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말하는 건 자신이 없어서 듣는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말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고 부면장까지 하니, 부모님은 기특해하신다.
부면장으로 발령을 받고 제일 걱정했던 일은 각종 회의에서 사회를 보는 일이었다. 평소 3명 이상 모이면 말수가 부쩍 적어지는 내가 회의에서 사회를 봐야 하다니. 인사발령일 기준 10일 뒤에 회의가 잡혀 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 나는 부랴부랴 근처 스피치학원에 개인 교습을 신청했다.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학원을 찾아갔다. 원장 선생님은 지방 방송의 아나운서 출신으로 아나운서 특유의 목소리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 앞에서 준비해 간 시나리오를 읽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큰일이다.'
선생님은 나의 간절함을 아시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셨다. 스피치 학원은 아이들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다양한 직종의 어른들이 온다는 것. 특히 관리자급으로 진급한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우로 많이 온다고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학원에 온 것만으로 일단 용기가 있다는 칭찬해 주셨다.
사회를 보기까지 총 4번의 연습을 했다. 나의 떨리는 목소리는 호흡 부족이라는 원인을 진단받고 말하기 전에 호흡을 크게 들이쉬며 한 호흡에 한 문장씩 내뱉는 연습을 계속했다. 집에서는 노래방 무선마이크를 들고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 연습을 했다. 각자에서 내빈역할을 부여하고 진지하게 국민의례부터 진행했다. 아이들이 진행을 하고 내가 회의 참석자가 되어보기도 하며 역할도 계속 바꾸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사회자가 되어 시나리오를 떠듬떠듬 읽는 귀여운 모습은 나중에 실제 회의 날, 나의 긴장을 덜어주는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그렇게 결전의 날, 나는 청심환을 가방에 챙겨서 결심에 찬 얼굴로 아이들과 남편에게 인사를 하고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에 출근했다. 회의 1시간 전, 청심환을 씹어먹으며 몸속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와서 홀짝홀짝 마실까도 생각했으나, 평소 소주를 즐겨 마시는 나는 소량으로는 긴장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고, 많이 마시다보면 발음이 꼬일거 같아서 청심환에 의지하기로 했다.
청중을 둘러볼 여유 없이 빠르게 진행된 회의가 끝나고 나는 긴장이 풀렸다. 다행히 목소리는 떨리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만족이다. 얼른 퇴근해서 그동안 나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지켜본 가족들과 거하게 회식을 해야겠다.
첫 번째 회의가 끝나고 며칠 뒤에 다른 회의가 또 잡혔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세상의 가장 힘든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었다. 그러나 면에서는 매월 최소 2번의 회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 청심환 어디 싸게 팔아? 많이 사다 놔야겠어. 이왕이면 약효 쎈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