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회장님과 친해질 줄이야
새로운 장소로 발령을 받으면 인사 잘하는 것이 기본이란다. 나의 부면장 발령 소식을 들으신 부모님은 나의 성격을 아시고는 다른 건 못해도 인사는 잘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나는 의자에 엉덩이 붙일 새 없이 면사무소를 찾아오시는 주민들의 취향을 물어 커피도 타고, 녹차도 타고, 생수도 드리면서 열심히 인사를 했다. 평소 싹싹한 팀 막내가 면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어느 단체에 어떤 직위인지, 어느 마을 사람인지 귓속말로 설명을 해주어 나는 사람 이름을 빨리 외우는 부면장이 되어 갔다.
면사무소에 근무하고 제일 낯설었던 건 '회장님'이라는 호칭이었다. 내가 아는 유일한 회장은 텔레비전에서나 볼 법한 유명 대기업 회장이 다인데, 여기는 회장님이 아주 많다. 단체가 30여 개정도 있으니 각 단체별로 30여 명의 회장님이 있는 것이다.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을 틈에서 나는 과연 부면장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사람들을 기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회원명부에 사진과 인적사항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죄다 젋었을때 사진이라 누구인지 분간이 가지 않고, 설령 최신 사진이래도 그 많은 사람을 종이에서 일일이 찾으면서 부를 수도 없다. 누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회장님한테 회장님이라고 부르고, 회장님이 아닌 사람한테도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나의 면사무소 근무는 두 번째인 이다. 처음 면사무소에 근무할 때는 민원서류 발급이 주 업무라서 면 주민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말단 9급은 회장님과 대화할 기회조차 없는 게 맞았다. 그래서 나는 면에 이렇게나 많은 회장님이 계시는 줄 미처 몰랐다. 면사무소 2주 정도 지나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회장님인지 아닌지 대략 알 수 있었다.
높은 직위인 회장님과의 구두 인사가 끝나면 이어지는 어색한 악수타임이 있다. 악수라고 하면, 유명 정치인이 선거 운동할 때나 봤던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말로 인사도 하고 손으로 한번 더 인사를 한다. 단체 회의가 면사무소 회의실에서 잡히는 날은 회의시작 전에 우르르 몰려오는 20여 명의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다. 인사만 잘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는 악수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을까.
두 사람이 마주친다. 인사를 해야 한다. 눈을 마주치면 누구든 먼저 말로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좁혀진다. 가까워진 사이 가운데 두 사람의 악수하는 손이 겹쳐지며 흔들리고 한번 더 눈을 마주친다. ㄱ렇게 나는 인사를 통해 회장님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회장님,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