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남편과 함께 들었던 동아리에서 다같이 캠핑을 갔을 때다. 지금처럼 간단하게 쳐지는 텐트가 아니라 무게가 좀 나가는 쇠파이프를 텐트에 끼워 일일이 연결하고 말뚝을 박아 끈으로 고정해서 세우는데 맞은편에서 텐트와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어떻게 하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서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네 저걸 왜 모르지? 의아했었다.
조부모에 다섯 남매, 아홉 식구가 한 집에 살았던 남편이 성장기 내내 가족 여행이란 걸 가본 적이 없었다는 걸 하안참 후에 알게 되었다. 친척집에 얹혀서 방학 때 몇 번 놀러가 본 게 다라며, 그래서 그런지 지금이라도 가족끼리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주말이나 여름휴가 때 멀리로 가까이로 놀러다닌 적이 꽤 많았다. 주말엔 코펠과 버너를 챙겨 동네 산 깊은 데라도 다녀왔고 아부지가 중고로 사서 어지간한 고장은 알아서 고쳐가며 몰던 베스타에 짐을 싣고 동해의 위쪽부터 아래 쪽까지 어지간히 이름 있는 해수욕장에서 텐트를 치고 2박3일, 3박4일 지내다 오는 일은 꽤 오래 계속되었었다.
홍천강엔가, 사촌들까지 함께 했던 여행 중 텐트를 치고 잠들었던 한밤에 비가 쏟아져 갑자기 불어난 물을 피하느라 급하게 텐트를 둥둥 걷고 바깥에 내놓았던 과일이며 집기들은 몽땅 떠내려가고 난리도 아니었던 어느 여름날. 그 때를 떠올리며 세 집의 조카들까지 데리고 간 휴가였는데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쩔 뻔 했느냐고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듯 말하곤 했다.
휴가지에서 최대한 비용을 아끼느라 식재료와 버너, 나중에는 부르스타, 코펠과 그 외 식기들, 압력밥솥까지 챙겨가 끼니며 간식이며를 끊임없이 내어놓는 역할은 그가 맡았다. 준비부터 돌아와 뒷정리까지 우리 식구만 해도 군일이 많았을 그 연례행사를 시집의 고만고만 머리 큰 사내조카들까지 선뜻 맡아 여행을 떠날 맘이 났던 그와 나는 많이 닮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갓 들어갈 나이의 시가 쪽 조카와 꽤 긴 시간을 한 집에서 산 걸 보면 또 엇비슷이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잔정이 많거나 세심히 챙기기보다 하려니 하면 그냥 하는 것. 앞뒤 재가며 뭐가 이로울까 따지기보다 해야 하는 일이니 하는 것. 일단 하기로 하면 군말 않고 묵묵히 하는 것. 아마도 그런 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