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10

by 포근한 바람

많은 이들이 자식 낳아 기르면서 비로소 부모 맘이 이해가 되더라는 말을 하곤 한다. 부모가 되어 보니 부모 입장을 알겠더라는 무수한 말들과 달리 나는 딸을 낳아 기르면서 내가 자라는 동안 겪었던 그의 태도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낳으면서부터 내내 아이가 이리 이쁜데 엄마는 내가 왜 그리도 못마땅했을까. 아이가 이쁜 짓을 하든 이런 저런 실수를 하든 무언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든 아이는 그저 아이라서 이해가 되고 무작정 이쁘기도 하고 때론 그저 무탈하게 자라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기만 하던데.


그러다가 남들이 했다는 그 부모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는 시점이 내게도 오기는 했다. 엄마는 내가 나의 아이에게 주는 이 마음을 몽땅 그의 유일한 아들에게 준 것이었구나!


서른이 되기 전에 홀몸이 되어 딸 셋을 키우며 자식들 끼니 안 굶기고 온갖 세파에서 지켜내느라 부단히 애썼을 외할머니에게서 자란 그에게 외할머니는 살갑고 자상한 애정을 주는 모친은 아니었다. 그 때 그 시절 농사 지으며 그럭저럭 살아가던 집안에서 갑자기 남자 어른이 사라졌다는 게 여자 넷이 살아가는 동안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 후에 그가 그의 아들을 그다지도 귀하디 귀하게 대하던 시간들도 납득이 되었다.


딸들에게 주지 않은 애정을 담뿍 부어준 그의 아들은 태어난 순간 아들이었단 사실만으로도 자식으로서 할 모든 일을 그의 엄마에게 다 하고야 만 것이었을 거란 짐작도 하게 되었다. 내게, 나의 아이가 이리 예쁜데 심지어 그 집에 없어 곤란했던 아들을 자신이 낳았으니 그 자식이 존재한단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장하고 마음 가득 기쁨을 주었겠는가.


어릴 적엔 이해가 가지 않아 늘 분노했던 그의 딸 아들에 대한 명료한 구분과 차별이, 그의 삶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법칙이었을 거란 추측을 하는 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기나긴 사춘기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나는 나의 삶에 집중하며 엄마와 만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는 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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