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9

by 포근한 바람

아마도 내가 열 살이 되기 얼마 전부터였을 것이다. 그와 아부지의 다툼이 잦아졌던 시기가. 내가 10대였을 때부터 결혼할 무렵까지 나의 부모는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부부 사이가 나빠지기 전에는 가난했어도 남편으로부터 꽤 대우 받고 살았다며 그는 아부지가 그에게 어떤 일까지 해주었는지 이따금 말하곤 했다. 신혼 초에 나들이를 한 번 갈라치면

"아빠가 양손에 짐을 들고 너까지 업고서 엄마는 외출복 떨쳐입게 하고 앞서 걷게 했다."

며 뿌듯한 표정으로 당시를 회상하곤 했다.


가난했지만 그렇게 떠받들던 아내와 멀어지게 된 건 순전히 형제들에 대한 아부지의 애착 때문이었다.

형들에게 치이고 젊은 날 자신이 번 돈까지 형들 치닥거리로 들어갔어도 군말 없이 자기 책임을 다하며 살던 아부지는 형제들 중에 가장 먼저 자신의 힘으로 집을 장만하고 넘치지는 않을지언정 부족하지는 않는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형제들과 장성한 그들의 자식들이 하나둘씩 그 몰래 아부지를 찾아와 얼마만, 얼마만 부탁을 하곤 했고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아부지가 그에게 말하지 않고 얼만큼 얼만큼 해준 돈이 결국 그에게 들통이 나고. 금전적으로 친정 도움은 몇 차례 받았어도 시집 덕은 본 적 없었던 그때 그는 아부지 형제들의 행태가 못마땅했을 테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아무 말 하지 않은 남편에 대한 커진 원망을 참지 않았을 테고.


살만해지면 그때부터 악운이 든다는 게 우리 집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나타났다. 부부 간 금슬에 금이 가고 툭 하면 부부가 다투고 그러다가 둘 중 하나가 아프고 그러다가 그가 큰 병이 들어 병원 신세를 지고.


이제 와 아부지는 그 때 그 일들을 회상하며 형제들 탓을 하기도 하지만, 10대 후반 무렵에 기나긴 부부 간 다툼의 연유를 이따금 들으며 이 사연 저 사연을 얽어낼 수 있게 된 나는 이미 원가족과의 경계를 잘 지키지 못한 아부지 탓도 상당히 크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찌감치 형제들이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해롭기까지 할 수 있으며, 부부 간에 특히 돈 문제에 관한한 일방적인 결정이나 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갖게 되었다.


이 두 기준은 꽤나 강력해서 아이는 낳아도 하나만, 용돈 수준 이상의 지출에 관해서는 부부가 서로 의논을 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고 그 방식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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