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12

by 포근한 바람

그의 자랑 중 하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간식거리는 끊이지 않게 해주었다는 것이었다. 부침이나 도너츠, 과자같은 것들을 그는 직접 만들어서 주곤 하였을 터인데 집 안에 먹을거리가 풍성했다는 식의 기억이 내게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먹을거리에 대한 기억이 많지 까닭은 아마 우리 집에서 내가 음식에 대해 가장 심상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음식은 배가 고프면 먹는 것, 밥을 굶을래 잠을 안 잘래 선택하라면 끼니를 굶고 잠을 자는 쪽이 더 좋았으니까.


결혼하고 나서 친정에 다녀오면 나는 늘 속이 거북했는데, 끼니를 먹고 나면 그만인 나에 비해 그는 아침 먹고 과일, 점심 먹고 또다른 간식, 저녁 먹고 또 무언가를 계속 내놓아 나오는 음식마다 조금씩이라도 먹다 보면 나로서는 소화시키기 어려울 만큼의 양이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 자체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며 불평하듯 말하면 그는 숟가락 가득 밥을 떠먹으며 나는 밥맛이 그렇게 좋더라, 하곤 했다. 밥 먹는 게 좋고 뭐든 맛있게 먹는 식성이 변하지 않고 계속되어서 엄마는 병치레는 해도 오래는 사시겠다,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었다.


먹는 것에 관해서 아주 명확히 기억나는 한 가지.

나는 먹을거리에 관심이 크지 않았지만 우리 집에는 그가 만든 것이든 사놓은 것이든 과자, 음료수, 과일 같은 주전부리가 늘 있었다. 나는 먹지 않아도 싱크대 가장 오른 쪽 아래 칸에 언제나 간식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간식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남동생이 입대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진 먹을거리들은 내내 채워지지 않았다.


여자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겪는다는, 말하기는 치사스럽고 그냥 넘어가자니 서러운 먹을거리로 당하는 차별의 명확한 실체를 스물이 넘어서 텅 빈 싱크대를 보며 환기했던 거다. 물론 그 이전에 그가 아들만 너무너무너무 예뻐해서 겪었던 수많은 차별이자, 그에게는 아무 의심없이 당연했던 딸 아들 다르게 대우하기에 비하면 아주아주 작은 일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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