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26

by 포근한 바람

"엄마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밥을 했어."

쌀에 물을 부어 박박 문대다가 헹구고 나서 조리로 걸러 솥에 담은 후 손을 넣어 물을 맞추고 나서 연탄불로 때는 부뚜막에 밥솥을 안치고 불문을 열었다 막았다 하며, 부지깽이로 불과의 간격을 조정하여 밥하는 법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내게 가르치며 그가 한 말이다.


맏딸이니 당연히 그가 보기에 내가 할 일이 많았으나 모녀를 불행하게 했던 나의 특성 중 하나는 그가 원하는, 딸이 해줘야 하는 집안일에 내가 통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그래도 그에게서 정식으로 배운 연탄불에 밥하기는 제법 잘 했던 것 같은데 수년 후 도시가스가 동네에 설치되면서 첨으로 가스불에 밥을 하며 그 화력 차이를 깨닫지 못해 연탄불에 밥하듯이 하여 홀라당 밥을 태운 후 나는 더욱 더 집안일을 '돕는 데'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딸이라면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자기 일로 알고 해야 하는 일을, 그의 맏딸은 심지어 옆에 두고 일일이 가르쳐도 모르쇠하거나 이름을 소리 높여 불러 뭔가를 시키려도 들은 척 만 척이었으니,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집안 일이며 밭 일이며를 온 식구가 다 같이 하며 살았던 그의 입장에선 어쩌다 저런 애가 내 속에서 나왔을꼬 싶기도 했을 게다.


그에겐 당연했던 맏이의 역할, 딸의 역할에 대해 늘 왜 나만? 이라 묻던 아이. 그는 꼭 뭘 시키려면 못 들은 척 한다 했으나 그가 세트로 들여놓은 책들을 탐독하느라 진짜로 아뭇소리도 못 들은 나의 억울함. 그와 유사한 일들이 줄곧, 줄곧 모녀 사이의 길고 높은 벽을 만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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