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6학년 담임이 되면 첫날부터 언급되는 단어이다.
"언제 가요?, "어디로 가요?", "버스 타고 갈 때 친한 친구랑 같이 앉아서 가도 돼요?", "같은 방 쓰는 친구들은 번호순으로 정해요? 아니면 같이 방 쓰고 싶은 사람들끼리 방 써도 돼요?"
주로 경상권에서 교사를 한 덕분에 빠지지 않는 질문이 몇 가지 더 있다.
"에버랜드 가요? 가서는 모둠을 어떻게 만들어서 다녀요? 혼자 다녀도 돼요? 친한 친구랑만 같이 다녀도 돼요? 다른 반 친구들이랑 같이 다녀도 돼요?" 신기하게도 이 많은 질문들은 매년 되풀이된다. 질문자들의 얼굴만 바뀔 뿐이다.
이번 수학여행은 5월이다. 거의 대부분 5월이었지만...아무튼 수학여행 규칙을 정하면서 아이들과의 밀당을 수도 없이 거치고, 운영담당교사로서 제법 많은 행정처리를 한 후에 드디어 출발 당일이 되었다.
2박 3일.
출발지는 부산. 목적지는 서울과 경기도.
첫째 날엔 경복궁, 서울의 박물관
둘째 날엔 에버랜드
셋째 날엔 독립기념관, 대전국립중앙과학관 그리고 학교로 복귀이다.
남부권 학교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동선과 장소는 대동소이하다.
오전에 경복궁을 제대로 보려면 6시에는 버스가 달리기 시작해야 한다. 새벽 5시 30분 즈음부터 모여든 동료교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한다.
고속도로의 버스.
15회의 수학여행 운영 경력을 가진 난 버스 운전사의 대각선 뒤에 앉아서 아이들의 안전벨트와 짓궂은 녀석들의 도촬, 흥분한 친구들의 큰 목소리를 신경 쓰면 자꾸 뒷자리를 힐끔거린다. 교사로서의 체면도 있으니 잠을 자면 안 된다. 스마트폰과 책을 번갈아 보고, 운전기사와 스몰토크도 나눈다. 껌도 씹어 본다. 앞으로 힘든 여정이 되겠지만 다행인 것은 성별이 다른 교감선생님은 경력 많으신 다른 반의 동성 선생님과 같이 차를 타고 가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보통 교감선생님은 운영책임자이므로 운영담당교사와 같은 차를 타시는데.... 약간 홀가분하기도....
버스가 출발한 지 1시간 정도 지나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습관적으로 먼저 내려 버스 앞문 앞에 선다. 아이들이 저마다 먹고 싶은 휴게소 음식 메뉴를 이야기하며 내리기 시작한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휴게소 건물로 들어갈 때쯤 여학생 A가 다가온다.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 저 바지에 조금 지렸어요....." 너무 부끄러워한다.
애써 당혹함을 감추고 물어본다. "똥?"
"네..."어쩔 줄 몰라 울먹인다.
순간 내가 해야 할 수십 가지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지나간다. '우째야 하지?'
본능적으로 A의 바지 뒷부분을 본다. 하필 흰색 바지를 입어 표시가 조금 났다.
'아... 남학생이면 데리고 가서 씻기면 되는데... 여자 아이라 난감하네... 이거 어쩌지?"라고 하는 그 순간 뒤에서 2명의 똘똘한 여학생 B와 C가 다가온다.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로 두 명 중 한 명인 B가 이야기한다.
"선생님! 저희가 도와줄게요"
자세한 설명은 생략 했다. 이미 어떤 일인지 다 알고 있는 눈빛들이었다.
"화장실 가서 씻고 옷 갈아입으면 돼요. 여기 화장실에서 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샤워하는 곳이 있는 것 같아요. 얼른 씻고 올게요. C야! 네가 A가방 열어서 바지랑 수건이랑 속옷하나 챙겨 와. 내가 저기 가서 같이 씻고 있을게!" 그러곤 자기가 입고 있던 가벼운 점퍼를 벗어 당황한 A의 허리에 둘러서 묶어 준다.
"선생님! 갔다 올게요!" 하곤 샤워실 쪽으로 직진한다. C는 마치 즐거운 일이라는 듯 콩콩콩 뛰어서 버스 쪽으로 가서 기사님에 뭐라 뭐라 말을 하고는 버스 하부의 짐칸 쪽으로 갔다. 기사님이 내려오셔서 문을 열어주시고, C는 가방을 뒤적여 B의 지시사항을 이행한다. 옷가지를 들고 활짝 웃으며 내 옆을 지나쳐 샤워실 쪽으로 갔다.
나같이 못난 선생에게서 어찌 저런 아이들이.... 10분여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하나둘 버스에 오르기 시작한다. 버스 문 앞에서 샤워실 쪽만 쳐다보기를 10분! 마침내 서로 손을 잡은 A와 B와 C가 돌아왔다. 아직도 당황한 A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B와 C. 갈아입은 옷가지를 넣은 봉지를 내게 건넨다. 단단히 묶어 버스 짐칸에 넣고 나도 버스에 올랐다.
다시 버스가 출발하고 '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이 남학생 D가 나에게 왔다.
"야! 왜 돌아다녀? 큰일 난다. 어서 앉아서 안전벨트 매야지"
"선생님... 똥 마려워요."
"뭐?"
휴게소에서 나온 지 5분도 안되었는데....
"기사님. 여기서 휴게소까지 얼마나 걸리지요?"
"휴게소요? 2-30분은 가야지요?"
"그 사이에 간이 휴게소도 없나요?
"네! 왜 그러세요?"
"아니... 아이가...."
D에게 물었다.
"급하니?"'
"네... 좀..."
"야. 넌 뭐 했니? 방금 전에 휴게소 화장실 안 갔니?"
"갔었는데... 그때는... 괜찮았는데..."
아차차... 배 아프다는 아이에게 짜증이라니....
"괜찮아. 조금만 참자. 20분 정도만 가면 된단다. 조금 참을 수 있겠나?"
"네... 참아 볼게요"
자리로 돌아간다.
계속 신경이 쓰인다. 기사님께 여쭤본다.
"혹시 갓길에 잠시 차 세우면 안 되나요? 학생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요"
"안됩니다. 그러다 큰일 납니다. 특히 버스는 더더욱 안됩니다. 조금만 참으라고 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D에게 설명하러 간다.
"D야. 지금 차를 못 세운데. 조금만 참아봐. 곧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선생님... 아... 선생님... 아..."
정체 모를 옅은 소리가 들리고 아이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바지를 입고 앉은 채로 그대로 실수를 다 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버스 안은 온통 냄새로 가득 찼다. 아이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누구라도 모를 수 없는 냄새다.
"조금만 기다릴 수 있겠어?"
거의 울다시피 D가 대답한다. "네..."
약 10분 뒤 다시 휴게소에 들렀다. 10분간 버스는 너무 조용하다.
웃음소리도. 떠드는 소리도. 싸우는 소리도. 장난치는 소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사로서 처음 겪어보는 고요함이다.
정차된 버스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15분간 휴식이다. 내려서는 휴게소 건물 안에 있고, 시간이 다 될 때까지는 절대 버스로 돌아와서는 안된다. 이제 내려라"
아이들이 서둘러 내린다.
다른 선생님들께 전화해서 대충 상황 설명을 마치고 버스에 D와 둘이 남았다.
"바지 벗어. 선생님이 치워줄게"
바지를 쭈뼛쭈뼛 벗는다. 너무 급했나 보다. 물티슈로 몇 번을 닦아낸다. 애들 둘을 키웠던 아빠여서인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바지와 속옷은 비닐봉지로 몇 번을 싸매고, D는 가방에서 꺼낸 여벌 바지와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정신없이 치우고 옷을 갈아입고 버스에서 내려 휴게소 건물 쪽으로 가보니 간이 샤워시설이 있었다. 아랫도리만 씻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아직 냄새가 다 빠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버스를 타고 2시간 이상을 더 달려 경복궁에 도착했다.
모두 웃고 있었다.
곤란한 일을 겪었던 A와 D도 웃고 있었다.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무도 2건의 사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수군대지도 않았다.
졸업하는 그날까지 이 이야기는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다.
7년 정도 시간이 지나 집 앞 커피숍에서 당시 버스를 같이 타고 있던 아이를 만났다. 이미 대학생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물어봤다. 그날의 침묵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우리 수학여행 가는 날.... 누가 버스에서 실례했잖아...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했니? 너희들 장난도 심하고... 혹시 너희들끼리 실수했던 아이들 놀리고 그랬니?
"아니요? 저희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너무 불쌍하잖아요? 우리끼리 있을 때도 이야기 안 했어요. 근데 선생님 말씀 듣고보니 진짜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네요...누구 한 명이라도 살짝이라도 장난칠 수도 있었는데...."
명심보감 성심편에 이르길 "남의 흉함을 불쌍하게 여기고, 남의 선함을 즐겁게 여기라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급한 사정을 알아주고, 구해주라. 또한 다른 사람의 위험함을 구원해 주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성편에는 "범사에 인정을 남겨두면 미래의 먼 훗날에 서로 좋게 다시 만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수학여행이라는 초등학생 인생에 가장 흥분되는 이벤트에 실수를 한 2명의 아이들.
그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2명의 어린이.
그리고 침묵으로 초등학교 도덕 수업시간에 익혔던 배려를 몸소 실천한 학생들.
별 것 아닌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끝까지 침묵으로 같은 반 친구를 배려해준 그 아이들은 모두 그 순간만큼은 그리고 졸업을 할 그 때까지는 명심보감과 논어에서 이르는 군자에 버금가는 인격체였다.
그 해에 함께했던 아이들을 유달리 많이 만나게 된다. 집 앞 커피숍에서, 근처 아울렛에서, 번화가 식당에서 그리고 맛집 앞에서 줄을 서다가. 그 해에 함께했던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이 남겨둔 인정때문인지 다른 제자들을 만날 때 보다 더 반갑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제자들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분명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난 그들의 배려가득한 침묵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