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자전거 그리고 아우렐리우스

by 논스키

초등학교는 언제나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다.


학교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자녀들이 궁금한 학부모들과 별생각 없이 담벼락을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은 건물 안에서 나오는 리코더 소리와 떠들썩한 아이들의 목소리로 짐작만 할 수 있겠지만, 선생님으로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상을 보내보면 그 활기와 생동감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힘든 고등학교 공부로 예민해진 딸아이와 아침 식사 메뉴로 다투고 난 후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 녀석과 어제 마신 한 잔 술로 몸이 피곤할 때에도 교실에 들어서고 수업을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텐션이 올라가고 점점 생기와 밝음을 찾아간다.

그리고 1교시. 정확히 9시 30분 정도만 넘어서면 마비되어 있던 것처럼 느껴지던 뒤통수에도 피가 소용돌이쳐 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내 몸과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학교! 교실! 정말 활기찬 곳이다. 요즘 많은 선생님들이 별난 아이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투닥투닥 거리며 활기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적어도 나와 주변의 선생님들은 그렇다.

이렇게 활기찬 아이들을 위해 학교는 더욱 에너지 넘치는 활동들을 계획하여 학생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일상을 더욱 생동감 넘치게 만들곤 한다.


2015년 어느 봄날이었다.

그 당시 근무하던 학교는 강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 교문을 나서 조금만 걸어 나가서 강변도로를 하나 건너면 끊임없는 벚꽃길이 펼쳐지는 강변 산책로가 있었다. 그 해에도 학생들의 활기참과 에너지를 폭발시키기 위해 학교에서는 무언가를 계획하였다. 바로 전교생 마라톤 대회이다. 말이 마라톤이지 1-3학년 아이들은 500미터 정도? 4-6학년 아이들은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뛰거나 달리는...사실상 선생님과 함께하는 산책이었다. 날씨 좋은 봄날, 아름다운 벚꽃길을 아이들과 함께 달리고 사진도 찍으려고 계획한 행사였다. 그런데 대회는 대회이니까 상품이 걸려있었다. 자전거였다. 그것도 제법 좋은 자전거였다. 대회 1주일 전 방송조회를 통해 1등을 한 학생 1명에게 상품으로 자전거를 주겠다는 교장선생님의 우렁찬 예고가 있었다.


대회 날 아침에 되어 교실문을 나서 대회장인 벚꽃이 만발한 강변 산책로에 도착했다. 6학년 담임이던 나는 아이들과 함께 출발선에 섰다. 아이들의 눈과 표정을 스캔한다. 반드시 1등을 하겠다는 눈빛, 그냥 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지 않고 바깥에 나와있다는 것이 마냥 즐겁다는 눈빛, 안타깝게도 아무 생각도 없는 눈빛. 수많은 눈빛들이 저마다의 이유를 띄고 반짝이기도, 어둡기도 하였다. 하지만 날씨 하나만큼은 눈부셨다.

교장선생님의 호각소리로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힘찬 표정과 달리 “삐리릭” 삑사리 난 호각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와아~!” 소리치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기괴한 웃음소리로 오버페이스를 시작하는 아이. 100미터쯤 지나면서부터 힘이 빠져 걷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등위는 생각지 않는 모습이다. 당연히 탈락이다. 6학년 아이들이니 대다수가 묵묵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중에 우리 반 오영훈도 있었다. 아름다운 자세로 벚꽃길을 달렸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적당한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나도 같이 전력으로 달리고 싶었지만.... 난 선생님이다. 레이스에 뒤쳐진 아이들에게 맞춰서 달리다가 걷다가를 반복하였다.


시간이 제법 흘러 결승선에 다다를 수 있었다. 결승선 담당 체육전담선생님께서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시더니 “선생님! 영훈이가 1등 했어요.”라고 말씀하신다. 역시 영훈이다. 교실에서도 교실 밖에서도 심지어는 교내 마라톤 대회에서도 모범적이다. 시원한 얼굴,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성격. 또래 6학년 아이들이 입에 욕을 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늘 바른말을 사용하는...선생님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이이다. 그런데 달리기까지 1등 했다. 내가 기분이 너무 좋다. 아무에게나 막 자랑하고 싶다.


마라톤 대회를 정리하고 학교 강당에 전교생이 모였다. 교장선생님의 소개와 학생들의 박수 속에 영훈이는 1등 상장을 받았고, 자전거도 강당 무대에서 바로 받았다. 영웅이를 보면서 나의 어깨도 저절로 으쓱해진다. 내가 1등 한 것 마냥. 자전거를 들고 내려온 영훈이와 기념사진도 찍고 교실로 갔다. 자전거는 학교 앞 자전거 보관소에 체인으로 묶어놓고 오라고 했다.


교실로 복귀하고 학교에서 준비한 음료수와 간식으로 마라톤의 힘듦을 잠시 달래던 영훈이가 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더니 우리 반 친구인 선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전거 열쇠를 건네면서 속닥속닥 거렸다. 그러자 선호는 영훈이를 안고 고맙다고 좋아한다.

‘무슨 일이지...?’ 속으로 생각했다. 영훈이를 불렀다. “무슨 일이니?”


“선생님! 전 자전거가 필요 없어서 자전거 필요한 선호에게 줬어요. 선호는 집이 멀어서 학교까지 걸어오면 짜증 나서 학교에 오기 싫을 때도 있었데요. 전 그 정도는 아니라서 선호 줬어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


선호! 입학하면서부터 말썽을 일으키고,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이며, 선생님들과도 마찰이 있었던 아이다. 학교에서 유명한 아이였다. 가뜩이나 인기 없는 6학년 담임의 지원율을 더 떨어지게 만든 장본인이다. 담임이 되면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걱정거리가 생겨나게 만드는 아이였다. 6학년이 되어 영훈이가 그런 선호를 알고 옆에서 잘 챙겨주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선뜻 준 것이다. 영훈이의 말처럼 선호는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먼 편이었다. 그런데...영훈이도 선호만큼이나 집이 멀었다. 그리고 영훈이의 집도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고...더군다나 자전거를 싫어하는 6학년 남학생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교 적응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더군다나 마라톤 대회 1 등상이었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그의 마음가짐과, 다른 사람에게 더 필요할 것이라는 깊은 생각.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호에게 자전거를 주겠다는 생각으로 반드시 1등을 하겠다는 신념도 배어있었다. 어리지만 멋진 아이, 생각, 행동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웃과 친구, 주변사람을 사랑할지 고민만 하지 말고, 사랑의 행동을 바로 시작하라”

영훈이는 고민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자전거를 줄 생각으로 봄날의 벚꽃길을 달린 것이다.

영훈이는 아우렐리우스를 뛰어넘는 실천 중심의 어린 철학자이다.

10년이 지난 이 순간! 그가 지금도 로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보다 더 깊고 아름다운 어린이의 영혼을 유지하고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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