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소주병 그리고 有子

by 논스키

2002 월드컵의 여운이 조금 남아있던 2003년 봄이었다.

근무하던 학교가....시골도 아니고...도시도 아니었다.


학교에 큰 사고가 터졌다.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하여 경찰이 출동했다. 조사해 보니 문제는 생각보다 더 컸다. 가족 간 성폭력 문제도 겹쳐 있었다.

벌 받을 사람은 체포되고, 피해 학생은 분리 조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교육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슬픈 사건이었다. 담임선생님이 피해학생 때문에 펑펑 울기까지 했다. 너무 안타까웠다.

사건 발행 후 교장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의 안전도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들에게 학생 생활을 면밀히 살피라고 주문을 하곤....학급에 가정 폭력이 의심될만한 학생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 그리고 꾸준히 관찰해 볼만한 학생들을 골라서 가정방문을 실시하라는 지시를 남겼다.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선생님들의 표정이 무거웠다. 며칠 동안 가정방문 할 아이들을 추린 후 가정방문에 나섰다.


첫날 기범이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 반 기범이. 첫인상은 눈매가 날카롭고 잘 생긴 남자아이였다.

기범이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장에 다니셨는데 3교대 근무를 하셔서 많이 바쁘셨다.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많이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기범이는 종종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다. 오랫동안 pc방에 머물러 경찰에 실종 신고가 된 적도 있었고, 폭력적이어서 다른 아이들을 때리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상담을 하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울었다. 가식적인 울음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반성하였지만 잘못을 되풀이하는 아이이기도 했다.

선생님 생활을 하다 보면 문제를 일으키지만 왠지 정이 가는 아이가 있다. 기범이가 그랬다. 그런 기범이가 가정형편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가정방문을 하기로 하였다.


약속된 시간에 학교 교문 앞 큰 나무 밑에서 기범이를 만났다.

약간은 쑥스러운 기범이가 앞장서 걸었다. 학교 담장 뒤를 돌아 나무 사이로 난 길을 아무 말없이 걸었다. 왠지 신나 보이는 뒷모습이 기억난다. 조그만 아파트에 도착하여 1층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어? 가정방문인데 아무도 없으면 우짜지?' 라고 당황하는 순간


신발을 벗은 기범이는 거실 안쪽의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문을 열고 방문 앞에서 나에게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요 위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앉으셔서 허리를 연신 굽히셨다.

"아이고! 선생님 오셨습니까? 아이고...참...아이고....집에 아들은 없고, 제가...아이고 죄송해서 우야노. 앉으이소. 앉으이소."

"아이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기다리셨다는 듯 할아버지께서 딱한 사정들을 이야기하신다. 기범이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이유. 누나들의 행방. 아빠의 어려움. 그 와중에도 대견하다는 손자의 자랑도 곁들이신다.

무릎 꿇은 선생님을 발견하고 편하게 앉으시라고....관절염이 너무 심한 당신은 이렇게 앉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마중을 나가지 못하셨단다. 선생님과 할아버지 모두 "아이고"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예를 차리고 있다. 기범이는 아마 방 밖 방문 옆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 같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일어서서 다음 친구 집으로 가정방문을 가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그래도 여~까지 오셨는데 뭘 잡수코가시야지...가마히 있어 보이소"라고는 팔로 땅을 밀며 앉은채로 힘겹게 이동하셔서 장롱으로 다가가 문을 여신다.

문을 열자마자 큼지막한 소주 됫병이 보인다.

그걸 꺼내시고는 기범이에게 "기범아 컵 가온나"라고 소리쳐 말씀하신다. 방 밖에서 조용히 기다리던 기범이의 콩콩콩 발소리가 들리고, 맥주잔을 든 기범이가 방으로 왔다. 컵을 받아 든 할아버지께서 소주를 콸콸 부으신다. 그리고 나에게 주신다.


"쭉~ 한 잔 하이소. 날도 덥은데 시원하게 한 잔 드시고 가이소. 고생하시는데..." 안 먹을 수 없는 표정과 분위기이다.

'에라 모르겠다' 한 잔 쭈욱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이제 가볼게요"라는 나의 말과 동시에


"아이고, 우리 선생님 잘 드시네. 고마 한 잔 더 잡수이소" 라며 한 잔 더 주신다. '이미 망했다. 모르겠다' 한 잔 더 마신다.

할아버지 얼굴이 흐뭇하시다. 나도 덩달아 좋다. '술 때문인가?'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할아버지께서 팔을 펴고 기범이를 바라보셨다.

익숙한 듯 기범이는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끌면서 나를 따라 나왔다. 방문턱을 힘겹게 넘어 신발장까지 따라오신다.

"아이고~~할아버지 괜찮습니다. 그냥 방에 계셔도 돼요"

"그래도 우째 가만히 있습니까?" 기어이 신발장 앞까지 따라오셔서 앉으신 채로 허리를 연신 굽히신다.

나도 따라 인사한다.


신을 신고 허리를 펴는 순간 눈에 눈물이 맺혔다.

기범이가 할아버지의 목을 감고 안으면서 할아버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있었다.


한 숨에 들이킨....장롱 속에 꼭꼭 숨겨두시고 답답하실 때, 힘겨우실 때, 즐거우실 때, 가요무대를 보실 때...아마도 그러실 때마다 드시던 소중한 두 컵의 소주와 집의 누릿한 공기와 할아버지의 웃음과 기범이의 따뜻하고 작은 등이 나를 울리려고 하였다.


서둘러 집 밖으로 나왔다. 기범이가 따라 나오며 인사했다. 덜 닫힌 문 사이로 할아버지의 인사는 반복되고 있었다.


논어에서 유자(有子-공자의 제자 유약)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경스러우면서 윗사람 헤치기를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사람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하고, 근본이 있는 사람이다. 근본이 있으면 올바른 도리가 생겨난다. 효도와 공경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다소 폭력적이고 문제를 일으키던 기범이는 이 후에도 몇 가지의 사고를 더 치고, 잘못도 저질렀다. 하지만 난 그 아이를 걱정하지 않았다. 미워하지도 않았다. 늘 그 아이를 보면 할아버지를 안고 있는 그 작은 등이 떠올랐다. 기범이는 지금 3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유자가 말한 것처럼 기범이는 효도의 근본이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고 기범이처럼 나도 사소한 효도를 진심을 다해 하고 싶을 뿐이다.

오늘 저녁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20년 전에도.

그리고 오늘도 기범이가 나에게 효도를 되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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