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부시다 못해 뜨기 어려울 정도로 날이 좋은 봄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5교시가 시작되었다.
2학년 아이들이 청소를 마치고 하교하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의 폭발적 에너지 분출로 야외 활동을 즐긴 교실 속 6학년 어린이들은 바쁘다.
제일 뒤에 앉은 사내아이는 수업시간 시작종이 울리기 몇 초 전에 교실 뒷문으로 터치다운하여 교과서를 꺼내지 못한 탓에....선생님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사물함으로 간다. 다른 녀석은 무엇을 하고 들어왔는지 알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부채질을 열심히 해도 얼굴은 불타오르고 땀은 줄줄 흘러내린다.
하필 5교시는 사회다.
괴로운 표정이 역력하다.
햇살, 봄, 운동, 땀, 사회...잠을 자야만 하는 구조다.
선생님인 나도 잠이 온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은 몽구는 턱을 괴고 밖을 바라보고 있다.
정확히 무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몽구는 다운증후군이다.
친구와 선생님이 "몽구~~~~"라고 이름을 불러주면 부끄러운 듯 고개를 45도 아래로 틀며 씨익 웃는다.
특수반에는 오전에 다녀와서 지금은 교실에서 수업을 시작하는 중이다.
점심시간에 어디에서 놀았는지 교실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땀도 흘리지 않는다.
'뭘하고 왔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점심식사를 마친 봄날의 사회시간. 버텨야 한다. 모두 잠과 지루함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몽구가 갑자기 소리친다.
"진옥아~~~~~~"약간은 뭉그러진 발음으로 또 소리친다. 활짝 웃으면서 소리친다.
"진옥아~~~~~~"이젠 손도 격하게 흔든다. 창문 밖을 향해서
수업하다가 나도 한 번 쓰윽 창문밖을 쳐다봤다. 몽구 동생 진옥이가 하교를 하고 있었다.
중앙현관에서 교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몽구는 진옥이를 사랑한다. 동생 진옥이는 몽구의 그 사랑을 알고 있다. 멀리서 작은 팔을 흔들어 반가움으로 답해준다.
"몽구~~~~~~수업시간에는 조용히 해야지~~~"타일러 본다.
아랑곳하지 않는다.
"진옥아~~~~~~"또 소리친다. 아이들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비웃음이 아니다. 그냥 환한 웃음이다. 봄날의 따뜻한 교실처럼 따뜻한 웃음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다. 수업해야 한다.
"어허! 몽구! 조용히 해야지. 이러면 안 되지."
조금은 큰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몽구. 약간의 분노가 서린 얼굴이다. 나를 노려본다. 귀엽다. 그런데....
"ㅅㅂ~!"
욕을 날렸다. 그러고는 안 그래도 동그란 두 눈을 더 동그랗게 치켜뜬다. 놀란 것이다. 욕을 해 놓고는 놀란 것이다. 나도 놀랐다. 착한 우리 몽구가 욕을 했다니.....
"어....!"라고 당황하는 사이 몽구가 도망간다. 뒷문을 잽싸게 열고 복도를 뛰어서 계단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야! 몽구!" 아이들이 잡을 틈도 주지 않고 빠른 동작이다. 잡아야 한다. 어디에 숨어버리거나 교문 밖으로 뛰쳐나가면 안 된다. 학교가 도로와 바로 붙어있다. 지난번에도 한 번 쉬는 시간에 사라져서 학교가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화장실에 숨어있어서 큰 일은 없었지만. 이번에도 어딘가에 숨는다면... 또 아이를 찾아다녀야 한다. 잡아야 한다.
앞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우리 반 아이들은 놀라서 쳐다보고 있다.
몽구가 옆반을 뛰어서 지나가고 선생님인 내가 얼마 뒤 옆반을 뛰어서 지나가니 옆반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 부끄럽다.
제법 빠른 몽구. 계단을 뛰어내려 가서 학교 우측문을 나섰다. 조금만 가면 잡는다. 기다려라 몽구.
뒤를 돌아본다.
"몽구 괜찮아. 선생님 화 안 났어"
알아들은 것일까? 계속 달린다. 곧 잡는다. 잡히기 일보직전이다. 그때 몽구 입에서 튀어나온 말.
"진옥아~~~~!"
저 멀리서 진옥이가 웃고 있었다.
뜀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몽구는 달려가서 진옥이를 안고 볼을 비볐다.
몽구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볼을 비빈다. 아침에 교문 앞에서 같이 등교한 엄마와 헤어지기 전에. 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같이 걷는 특수선생님에게. 가끔 간식을 쥐어주시는 교감선생님에게 기습적으로. 그리고 늘 웃음 지어주는 동생에게도.
자신도 모르게 어디서 주워들은 욕을 내뱉고 도망치다가 동생이 생각났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하교하는 동생에게 가려고 했던 것일까? 그 둘을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뭉클했다.
따뜻한 봄 햇살 속에서 잠시 동안 서로 토닥이던 남매는 헤어졌다. 장애를 가진 오빠보다 어른스러운 2학년 진옥이가 오빠에게 "선생님에게 가!"라고 한 것이다.
배시시 웃으며 몽구가 나에게 왔다.
몽구 손을 잡고 교실로 올라간다.
"몽구! 진옥이 좋아?"라고 물었다. 둘의 모습이 너무 좋아보여서.
"녜"
순간 멍청한 질문을 한다. "왜?"
몽구이 대답은 단순명료했지만 무엇보다 현명하다.
"동섕"
그래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동생인데.
논어 위정 편에 누군가 공자에게 정치를, 벼슬을 왜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공자는 "오로지 효도에 힘쓰라. 그리고 형제 간에 우애 있게 하라. 그러면 그 안에 정치가 있을 것이다"라는 서경의 말을 인용하며 "어떻게 정치가 곧 벼슬하는 것과 같은 것인가?"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대학도 그러하고 소학도 그러하며, 논어 또한 그러하다. 어려운 말들로 가득하지만 유학은 입신양명의 학문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가장 기초단계가 입신. 나의 몸을 바로 새우는 것인데... 입신의 핵심은 효도와 우애라고 보는 것 같다.
몽구의 경상도식 그 대답. "동섕"
동생을 사랑하는 이유는 동생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나는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나에게 형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둘 씩이나.
그리고 그 형들을 어릴 때에는 누구보다 좋아하고 따랐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다.
형들도 어릴 때 나를 지독히도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와 비슷해진 것 같다.
물론 모두가 결혼을 하여 각자의 가족과 가정이 생겼으니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몽구와 진옥이에겐 과연 당연한 일일까?
40년전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었을까?
오늘 형들에게 탄생 순서대로 전화 한 통씩을 넣어볼 작정이다.
어색하게 "잘 있어?"라고 물어볼 생각이다.
아직 살아계시는 어머니와 나의 입신을 위해. 그리고 형들을 위해. 그리고 22년전 몽구와 진옥이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그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기도하며 그렇게 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