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방문 첫 집에서 장롱 속의 소주를 맥주컵으로 몇 잔 연거푸 들이켜고는 더 이상 가정방문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학교 숙직실로 가서 잠들었다.
새벽에 깨서 조용한 학교 운동장으로 나아가 시골 마을의 밤하늘을 바라본 것은 교직 최고의 순간이었다.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과 누군가를 위해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그 해 가정방문은 여러모로 나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들과 경험을 주었다.
오늘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다.
수업도 해야하고....아침에 학교 앞 국밥집에서 국밥을 한 그릇 먹었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가정방문 길에 나선다.
오늘은 정우네 집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정우는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이다.
정우는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리기 일쑤였다.
모둠활동을 하다가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복도에 줄을 서다가도 분노와 울음을 터트렸다. 매일.
한 번 울기 시작하면 괴성을 질러대며 복도에 드러누었다. 어떨 땐 복도 벽에 머리를 대고 2시간 이상 고집을 부리며 서 있기도 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러는지....그 이유는 당연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가정방문을 하는 김에 정우네 집으로 가서 학부모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마음먹었다.
정우가 앞장서서 걷고 있다.
학교 교문을 나와 직선으로 쭈~~욱 걸어서 작은 시골 도로를 지났다.
논이 펼쳐지고 군데군데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정우는 뭐가 신났는지 노래도 흥얼거리고 폴짝폭짝 뛰기도 한다.
정우네 집에 도착했다.
'이런.....'
집이 반파 상태이다. 반은 집이 남아있고, 부엌으로 사용하는 반은 벽이 부서진 상태에 천막을 쳐서 가려놓았다. 그 아래 가스버너와 간단한 수납장, 수도가 있었다. 누군가가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작은 의자와 함께.
수줍게 웃으며 정우가 말한다.
"할머니는 병원 갔다가 일하러 가셨을 거예요."
"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니?"
"아니요! 무릎 때문에 약 받으러 가셨어요. 매일 가요. 그리고 시장에 나물 팔러 가실 거예요. 할머니께 가보실래요?"
"그래? 집에 다른 분은 안 계시니?"
"아빠가계세요.....그런데...." 정우가 힐끗 문이 닫힌 방을 바라봤다.
'어? 아버지께서 집에 계셔?...그래도 선생님이 왔는데 나와보시지도 않는다...고?'
"잠깐만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널브러진 소주병이 보인다. 사람의 발도 본 것 같다.
문이 닫히고 조용한 대화소리가 들려온다. 뭐라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엿듣기는 싫다. 그래서도 안될 것 같다.
이윽고 나온 정우.
"아빠가 안 나오신데요. 그냥 가시래요"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우가 웃고 있었다. 왜 웃는 걸까? 무슨 의미로 웃는 것일까? 미안함? 부끄러움? 아무 생각 없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다. 중학생인 정우의 누나이다.
누나가 가방을 재빨리 내려놓고 천막 부엌을 돌아나가더니 유리컵에 주황색 물을 떠 왔다.
"선생님....냉차라도 드실래요?"
냉차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40년 전 학교 앞에서 팔던 것이다. 리어카의 큰 물통에 담아서 팔던...
큰 물통에 물을 담고, 오렌지향 가루를 물에 풀고 대충 얼음을 던져 넣은 후...
50원에 한 컵씩 담아주던...불량식품.
중학생 아이에게서 나온 그 말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그 반응이 슬프게 느껴졌다.
"그래. 마시자"
냉차를 들고 반파된 집 앞의 흙더미에 정우와 누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가 그거 팔아요"
냉차를 보면서 정우의 누나가 이야기한다.
어머님의 행방. 아빠의 일거리와 알코올 중독. 할머니의 고생.
어른스러운 누나가 담담하게 동생의 담임선생님에게 누나의 책임을 읊어 내려갔다.
남매의 가슴 아린 이야기를 듣던 중 나도 모르게 정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어본다.
"괜찮니?"
"괜찮아요! 뭐가 어때서요?"
누나는 피식거리고. 정우는 활짝 웃었다.
냉차를 쭉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괜찮으면 됐다. 내일 보자."
이렇게 이야기 한 까닭은 두 아이의 얼굴이 진심으로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부끄러워 할 것도 없고, 탓할 것도 없다. 나의 마음과 나의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라고 말한 에픽테토스와 같은 달관자들의 얼굴이었다.
다음 날 정우는 또, 여지없이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가정방문 전날까지 이유 없는 고집과 난동이라 생각했던 나는 정우를 골치 아파했다. 혼내기도 하고, 구슬리기도하면서....
'아....내가 왜 이 반을 골라서 이 고생인가?' 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정우의 행동과 말들이 이유 없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학생 지도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고, 아동 관리와 지도에 대한 책도 사봤으며....선배 교사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진심으로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지금껏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양분을 마련해 준 아이일지도 모른다.
정우도 지금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른스러운 누나가 항상 지켜줄 것이고, 아픈 무릎으로 나물장사를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려던 할머니가 계셨으니까.
무엇보다 무슨 일이든 괜찮다고 생각하고 말했던 그 태도가 남아있을 테니까.
항상 사고를 치고, 고집을 부리면서 나와 대치를 하던 녀석은....항상 웃고 있었던 것 같다.
젊은 시절 나에게...그 아이의 웃음은....불쾌함 그 자체였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선....내가 하는 이야기와 수업을 들으면서....쉬는 시간에 친구들을 보면서 웃어?
50이 되어 생각하니 그 아이의 그 웃음은....'괜찮다'라는 말을 혼자 되뇌고 있었던 것 같다.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으니.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