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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머리앤 Apr 09. 2024

맞다, 여보는 T 지.

-초보가 물을 좀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냐?

아들이 어디서 MBTI를 주워듣고 와서는

제 대답이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엄만 T야?"

자꾸 이러길래

"그만해라."

"그만해라. "

하다가 빽 소리를 질렀어요.

"그만하자!!!!!!!!!!!!"


그렇지만 좋은 점도 있었어요.

아들 덕분에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너 T야?"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거든요.

객관적 판단을 중시하는 T와

감정을 중시하는 F.


수영을 배운 지 한 달이 되었어요.

말이 한 달이지

반은 음파만 했고

반은 감기로 못 갔습니다.


새로운 달이 되니

초보 반이라 사람들이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요,     

새로 오신 분들이 저보다 훨씬 잘하시더라고요.     

자꾸 비교하게 되고.. 위축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라고 하는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의 수영실력에도 차이가 없다라고요.     

아... 진짜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수영장 락스물을 코로 입으로 한 뭉텅이 먹고 집에 오는 게 일상이었어요.     

어느 날, 20년 수영쟁이 남편이 그러더군요.     

"물을 먹어? 그걸 먹을 일이 있나?"     

???????    

나도 먹고 싶지 않다고요.

물맛이 아주 괴상하거든요.

사실 이물질도 막 떠다닐 때도 있어요. 

생각하면 진짜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아요.ㅠㅠㅠ

오엑.

              

수영을 한 날에는 온몸이 욱신거려요.     

나도 모르게 절뚝거리면서 걷더라고요. 

"여보 나 수영을 해서 그런지 허벅지도 아프고 허리도 너무 아픈 것 같아."

"아플 일이 있나. 난 하나도 안 아픈데. 자세가 안 좋은가 보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는 말

"내가 자유수영 가서 수영 가르쳐 줄게."

'............'

'말한 내가 잘못이지. 수영 얘길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기분 나빠하다가 아들이 말한 게 생각났어요.

"여보 T 지?"

"그게 뭐야?"

설명해 주었더니 남편이 듣자마자

"맞아, 나 극 T야."


덕분에

남편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남편이 하는 말로 덜 기분 나빠하기로 했습니다. ㅎㅎ


그나저나 수영은 진짜 저에게 매일매일 극기더라고요.     

안 느니깐 재미없고      

재미없으니깐 안 늘고     

난 맨날 꼴찌에 줄 서고....     

난 출발도 안 했는데 첫 번째 사람이 자꾸 내 뒤에 붙는 마법..     

나 출발도 안 했다고요.......ㅠㅠㅠ     


(참고로, 수영을 배운 지 1년이 다 되었건만

남편은 아직도 저에게 수영 레슨을 해 준 사실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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