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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머리앤 Apr 06. 2024

그런 걸 왜 봐?

-형광이니까 보이지.

'언제까지 해야 하나..'


유아풀에서 음파랑 발차기만 하면요.

재미가 없고 힘들잖아요.

그래서 수영을 하면서 보는 게 딱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 옆사람

둘째, 시계

셋째, 선생님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발차기 연습을 할 때요.

유아풀에서 발차기 연습을 했거든요.

성인풀이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수평으로 몸을 띄운 다음

얼굴만 넣고 음파음파를 하는 거예요.


초보라 호흡도 짧아서 오래 못하는데

자꾸 혼자만 쉬면 민망하니깐

옆사람이 쉬나 안 쉬나 이따금씩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시계를 쳐다보는 건 

'도대체 언제 끝나나'

확인하고 싶어서 보고요.


선생님을 왜 보냐면

선생님이 초보반 레일에 계시다가

우리 쪽으로 오시면

'새로운 거 알려주시려나?'

하는 기대감 때문에 자꾸 쳐다보게 돼요.


네, 솔직히 말하면 재미가 없어서 집중이 안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눈이 나빠서요.

선생님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수영 선생님이 젊어서 그런지

슈트를 입지 않고

형광빛이 나는 삼각수영복을 몇 벌을 돌려 입는 것 같았어요.

상체에 근육도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상체에 근육이 좀 있고, 형광색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걸어오면

선생님인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아닐 때가 많더라고요.


수영을 시작한 지 20분 정도 지나기 전까지 

몇몇의 남자분들이 꾸준히 오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분들 수영복이 다들 형광색이라

제가 선생님인가 싶어서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다들 몸도 좋았거든요.


몇  번 그런 일을 겪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늦게 올 거면 왜 오는 거지?

제 생각엔 이상하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이유를 알죠.

대부분 늦게라도 오시는 분들은 중 상급반이고,

그분들은 30분만 수영을 해도 

운동량이 워낙 많으니 안 오는 것보다 오시는 게 훨씬 나은 거죠.


그렇게 지나가는 남자들 몇 분을 보다가 깨달았어요.

'수영을 잘할수록 남자 수영복은 화려하구나.'


문득 집에 있는 낡은 남편 수영복이 떠올랐어요.

남편 수영복은 진짜 낡았거든요.

어느 정도냐하면

몇 년째 같은 수영복인데요. 

브랜드가 없는 단색네이비 수영복인데

많이 입어서 보기에도 좀 너덜거려요.


사실 남편은 수영을 진짜 잘해요.

아마추어대회에도 나가서 상을 받기도 했고

나이가 40대이지만 

상급반에서 주로 선두로 출발하고

다른 사람들과 수영을 같이 돌아도 반바퀴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하루는 집에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여보, 상급반 남자들은 몸도 좋고 수영복도 다 형광색이더라."

"그런 걸 왜 봐?"

"아니, 내가 보고 싶어서 보나. 

눈이 나빠서 선생님인 줄 알고 본거지."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어요.


"여보도 수영복 하나 사.

이왕이면 화려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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