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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는 것

<멋진 신세계>를 읽고

by 다크호수 Mar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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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다"

현대 사회를 돌아보면,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이며, 강력한 탄소포집 기술이며, 과학 기술은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그만큼 우울증과 불안도 증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풍족함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유토피아는 이상적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을 의미한다. 슬픔과 불공정이 존재하지 않는 낙원을 만들기 위해 인류는 노력해 왔다. 반면 디스토피아는 인류가 원하지 않은 미래로, 지구 온난화로 멸망한 세계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작품 속 세계에서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인공 배양을 통해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라는 계급으로 나뉜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며 살아가도록 수면학습과 세뇌를 통해 조정된다. 그리고 부작용 없는 마약인 '소마'로 모든 우울함과 불만족을 제거한다. 겉으로 보면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사회이다.

야만인 지역에서 자란 존은 이 완벽해 보이는 세계에 처음에는 놀라움을 느끼지만, 곧 그곳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깨닫는다. "1그램으로 10가지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소마는 슬픔을 잊게 하지만, 인간이 불행과 고통을 극복하며 느끼는 성취감과 성장의 기회를 빼앗는다..

태어날 때부터 내 인생이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조선 시대의 계급사회 같은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면 답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는 불행을 느낄 기회조차 사라진다. 사람들은 모두 "나는 행복하다"라고 믿고, 슬픔이 찾아오면 소마를 복용하며 고통을 즉시 덮어버린다.

중학생인 나도 삶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걸 이미 안다. 어렸을 때는 "유치원 가라" 하면 가고, "놀아라" 하면 놀고, "자라" 하면 잤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안 된다. (숙제랑 시험이 있으니까...) 클수록 자율성이 커지지만 더 많은 선택과 책임이 나에게 달려있다. 물론 이런 선택의 자유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멋진 신세계는 편리한 사회가 반드시 행복한 사회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불행을 느끼지 못하고, 도전할 목표도 없고, 삶의 고난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존이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원한다"라고 외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편리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멋진 신세계는 우리가 사회의 발전에 매달리느라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본다.

옛날에 읽은 걸리버 여행기가 생각난다. 3부의 라퓨타 사람들은 지식이 훌륭한 지식인들이지만, 엉뚱한 것만 연구해서 백성들의 삶이 힘들어진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리고 걸리버 이야기에서 라퓨타 부분을 읽으며 과학자는 과학만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장래희망은 과학자이지만 과학적 진보가 의미 있으려면 윤리와 철학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유토피아가 실현 가능한가 떠나서 인간이 "유토피아"에서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과학 기술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며 우리의 일상을 뒤바꾸는 이 시대에 정말 가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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