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혹시나 프롤로그를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글은 저의 지난 삶을 담은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 안에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자분들 중 저와 과거를 함께 했던 분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떠오를 수 있고, 가슴 아픈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씩 수정하여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전소설의 형태로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특히 글 속에 등장하는 개인 정보들, 예를 들면 지역명, 학교 이름, 사람 이름 등은 최대한 수정하거나 가상의 설정으로 바꿔서 독자분들이 불편함 없이 읽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조정함으로써 글이 담고 있는 감정과 이야기의 흐름은 유지하되, 실제와는 조금 거리를 두어 보다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대구의 한 작은 동네 상가 2층에 위치한 산부인과에서 저는 점심 무렵에 태어났습니다. 그 시기는 IMF로 모두가 힘들어하던 서늘한 가을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 저희 가족은 해안가가 보이는 아름다운 아파트에 살았다고 합니다. 먼지가 쌓인 몇 장 없는 가족사진첩을 찾다 보면 바닷가가 보이는 뷰에서 행복하게 서있는 누나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결국 대구의 작은 마을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왜 하필 이곳으로 이사를 하였는지 궁금해집니다. 한 번씩 네이버 지도를 보며 ‘다양한 곳이 있는데 왜 이 마을을 선택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적고 있는데 그가 멀리 떠나기 전에 이런 사소한 거라도 물어볼걸이라는 자그마한 후회가 생깁니다. 이런 거라도 물어보며 이어지지 않는 대화라도 이어나갈걸 그가 떠난 지 10년이 지나서야 아쉬워하며 생각합니다. 그러면 조금 더 제 머릿속에 그와의 추억이나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을까요. 혹은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어머니는 제가 태어났을 때 남자아이라서 놀라셨다고 합니다. 태아의 움직임이 너무 작고 소극적이라 여자아이일 거라고 생각하셨고, 태몽도 여자아이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관습에 따라 할아버지께서 유명한 절을 가셔서 순한 성격을 지닌 여자아이의 이름을 미리 받아오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예상밖으로 남자아이로 태어나면서, 좀 더 강해 보이는 이름으로 변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마지막 한 글자만 바뀌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저희 친가는 돌림자를 쓰거든요. 그래도 지금 제 이름은 참 마음에 듭니다. 뭔가 강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줘서요.
가끔 한국영화에 등장하기도 하면 꼭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보면서 영화 속 제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어떤가 살펴보곤 합니다. 다들 다이내믹한 삶을 사신 걸로 묘사가 되면서 저도 저의 스토리가 영화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 저희 가족이 이사한 집은 2층집이었고, 저희는 2층에 세 들어 살았습니다. 1층에는 집주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집 전체가 저희 가족의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나무와 정원이 있었고, 나중에 돈을 많이 모으면 건축을 좋아하는 저이기에 지금까지 그려온 건축그림을 토대로 제 집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어릴 때 저에게 집주인이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배고프거나 심심할 때면 자연스럽게 1층으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똑똑똑"만 하면 집주인분이 들어오라는 말씀이 없으셔도 저는 그냥 들어갔다고 합니다. 들어가면 친아들처럼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과 놀이, 장난을 쳐주셨습니다. 옛날엔 제가 귀엽고 사랑스럽고 해서 스스럼없이 대해주셨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커보니 전 이걸 이웃 간에 정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지금 남의 아이가 내 집에 온다면 난 어떻게 대해줄까?" 이 질문을 적으면서 뭔가 낯설었습니다. 분명 남인 것은 맞는데 "남"이라는 단어가 괴리감이 든다랄까요. 전 그래서 남이지만 나이 상관없이 많은 지인들을 가끔 친구나 가족처럼 대하곤 합니다. 저를 키워주시고 발전시켜 주신 스승님들은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저랑 동거동락한 친구들은 형제처럼. 저보다 어리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배운 동생분들은 친동생처럼. 그러면서 가까워지는 게 좋았습니다.
물론 전 지금도 그렇고요.
많은 분들이 시대가 변해가면서 정을 챙기기보다는 본인을 챙기는 비중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자를 A라고 하고 후자를 B라고 하면, 요즘엔 두 가지를 제안하며 대부분 합이 꼭 100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던데, 이걸 조금만 달리해보면 A+B 는 꼭 100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특성이 다르니 수치화할 수 없는 걸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 혹은 남을 돕거나 챙기는 정인 A는 조금 증가하였지만 본인을 챙기는 B가 많이 증가했으니 요새 정이 많이 줄어든 거라고 인지하는 것 같습니다. 둘 다 증가했으나 상대적으로 B가 많이 증가했으니 많은 분들이 정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복지 쪽에 많은 관심이 있으십니다. 지금도 그쪽으로 일을 하고 계십니다. 몸이 불편하시거나 힘들게 사시는 분들 혹은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 도와드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예의를 중요시 여기셨습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인성과 예의는 꼭 있으시길 원하셨고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매번 많은 걸 알아도 인성 예의가 없는 것보단, 많은 걸 몰라도 인성예의가 바른 바보. 두 분은 바보를 선호하셨습니다.
제가 앞화에서 말씀드린 그 바보입니다.
제가 제 생각을 글이나 말로 잘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잘 전달은 못하지만, 정은 다른 분들의 힘듦이나 고통, 혹은 그들에게서 연민이나 동경 그런 거 없이 단순히 따뜻함과, 조금이라도 그들이 편하거나 행복해졌으면 하는 생각에서 나오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순수하게 그저 돕고픈 마음인 거라고.
저도 이것들을 구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도움을 받는 분들도 행여나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안 되기에 그렇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의 생각을 쓰고 싶지만 지금은 저의 과거 이야기가 중점이기에 나중에 저의 가치관 부분에서 더 깊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릴 적 시절의 따뜻함과 정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갑자기 떠오르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갓난아기일 때, 어머니는 젖이 잘 나오시지 않아서 힘들어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저를 위해 번갈아 가며 젖을 먹여주셨다고 하더군요. 소중한 아이가 잘 먹었으면 그리고 잘 컸으면 하기에 말이죠.
어릴 적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하고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일입니다. 사람들 간의 이런 마음과 행동이 바로 ‘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이란 무엇일까요?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정’을 따뜻함과 가까운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해석은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서로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순간들이 정이라고 느껴집니다.
물론 요즘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각자 살기 바빠서 서로 챙기기 힘든 시대라고들 하지만, 말 한마디라도 "오늘도 수고하셨어요"라거나 "좋은 저녁 보내세요" 같은 인사를 건네는 게 어떨까요? 생각보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진심이 담겨 있다면 말이죠. 하루를 마무리하며 저런 이쁜 말들을 들으면 오늘 하루가 얼마나 고되었는지에 떠나서 행복할 것 같거든요.
아마 어린 시절 경험했던 이런 따뜻한 정 때문에, 저는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비록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일지라도, 서로 무관심하고 냉정한 것보다는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제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따뜻한 정을 그리워하면서,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제 성향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작은 회사를 차리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되었죠. 지금은 그 꿈을 잠시 접어두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더 성장한 이후에 꼭 이룰까 합니다.
노력만 하면 안 되는 건 없으니깐요.
마저 이야기를 해보자면 유교적인 전통이 짙은 집안에서 어머니는 제 누나를 낳고 나서도 친가로부터 대를 이을 남자아이에 대한 기대와 압박을 많이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를 임신했을 때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행여나 여자아이였을까봐.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결혼을 생각하며 오래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는데, 저는 저희 둘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성별은 크게 상관없지만, 벌써 아이 이름을 "민둥"과 "순둥"이라고 지어두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의식의 흐름처럼 생각이 흘러가네요.
제가 20년 남짓 살았던 마을은 다들 이름을 들으면 "거기가 어디야?"라고 묻곤 합니다. 사진을 보여주면 흔히들 촌동네라고 말하죠. 저희 마을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졌습니다. 한쪽은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 일하는 산업단지입니다. 나중에 대학에 와서 보니, 나름 기계 쪽으로는 괜찮은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어릴 적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요.
또 다른 부분은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불리던 지역인데, 롯데리아를 기준으로 나뉘었습니다. 아랫마을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각각 하나씩 있었고, 윗마을에는 두 개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었습니다. 저희 마을엔 큰 논과 밭이 많아서, 봄이 되면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냉이를 캐러 가곤 했습니다. 그 냉이로 끓인 된장국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가끔 어머니를 뵈러 가지만 지금은 휑해진 거리를 보면 조금 슬프기도 합니다. 조금씩 돈을 모아가며 서울로 이사를 시킬 준비를 해나가고 있지만 정확히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젠 병으로 인해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많은 것들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들을 써서 남기곤 합니다. 언젠가는 소중한 기억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 선생님도 기억력이 빨리 약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저는 그 말에 두려움보다는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을 잃게 된다면 그들에게 상처를 줄 것만 같았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