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는 몸, 꺼지지 않는 마음, 약속은 약속이다
아버지의 1주기였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조용한 제사를 지냈다.
근처 강가에 나가, 그가 좋아했던 막걸리 한 병과 오징어 땅콩 과자를 놓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그리움을 꺼내 놓았다.
말없이 술만 마시기엔 그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듯, 한편으로 그에게 보고하듯 자문자답을 이어갔다.
"나 잘 가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어."
"괜찮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약속은 어기지 않고 있어."
"어쩜 내가 모든 걸 좋게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그를 보러 가는 날엔 왠지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 1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1년 만에, 어머니가 학교를 통해 내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진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장남을 잃은 슬픔으로 외출도 삼가고 식사도 거르시다 결국 건강이 악화되셨다고 했다.
그 소식은 아버지의 죽음만큼이나 묘하게 복잡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2년 전, 추석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전체의 싸움 속에서의 경찰 출동, 실종신고, 폭력, 응급실, 피, 그리고 울부짖음과 절규 속에서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의 싸움을 봤다.
그때 할머니는 아버지의 편을 들었고, 어머니와 격하게 대립하셨다. 그 이후로는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런 할머니의 부고 소식이었다.
서운함과 슬픔, 얽힌 기억들까지 모두 말없이 가슴 한구석을 두드렸다.
나는 장례식장에 잠시 들렀다. 장남의 아들이자 장남이었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어머니셨으니 예의를 갖춰 작별을 고한 뒤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눈을 감고 날 바라봤다. 몸은 많이 망가져 있었다. 3년간 일들이 많았기에 살기 위해 지나치게 각성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이었다.
할머니의 부고가 전해진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느 평화로운 아침, 친구들과 게임 이야기로 웃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눈을 떴을 땐, 3일이 지나 있었다.
나는 혀를 깨물고, 피를 토하며, 발작을 일으켜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친구들이 놀라 119와 선생님을 불렀고 나는 그대로 실려갔다.
내 곁을 지킨 사람들에 따르면 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 누구에게든
욕설과 막말을 쏟아냈다고 한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있었다.
그리고,
나는 3일 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했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고.
가장 큰 불효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이라던데, 아버지는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떴고, 이번엔 내가 그 길을 따라갈까 봐 어머니는 두려웠다고 했다.
심장에서 피가 새고 있었다. 진정제를 계속 맞았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평소엔 달리기를 했기에 심박수가 1분에 40~50을 넘기지 않던 내가 그때는 200을 넘어 거의 250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살고 싶었나 보다.
뇌는 잠들지 못했다. 신경은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폭주했고 나는 긴 꿈을 꾸었다. 죽음의 경계선이었을까? 평화롭고 아름다운,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내려놓고 싶었다.
수억, 수십억 개의 가능성 속에서 그를 가장 오래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과거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끊임없이 터지는 불안.
마치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가 제어를 잃고 멘붕 하듯, 내 신경과 뇌는 마구 뒤엉켜 터져 나갔다.
자면서 몇 번의 발작, 몇 번의 경련, 피를 쏟고 나서야, 어머니의 울음과 "괜찮아"라는 한 마디의 말이 내 무너진 자아를 겨우 붙들었다고 한다. 그제야 신경은 안정되었다.
너무 지치고 피곤했고 힘들었기에 아무도 아닌 어머니한테 고생했다, 괜찮다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깨어났다.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지?"
"여긴 어디고, 이불에 뭍은 이 많은 피는 누구 거고, 내 가슴팍엔 왜 피가 있고, 엄마는 왜 내 앞에 있는 거지?" 내심 어머니를 본 게 반가웠다.
마치 포맷된 기계처럼 나는 천천히 부팅되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려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뇌는 "돌려"라고 명령했는데 몸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신경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미한 전기신호처럼.
갑작스러운 두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입은 바싹 말랐고 배는 고픔을 넘어서 쑤시고, 저리고, 울렁거렸다.
나는 쉬도 3일간 자면서 눴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팔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몸은 뒤척이지도 못했고, 신경은 마치 굳어버린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감각만 있는, 무게만 있는, 그냥 하나의 물체였다.
어머니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어머니의 눈은 붓고 피곤함에 젖어 있었고, 마치 1년 전 내가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를 남기고 곁을 떠났을 때처럼 나를 바라보며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하셨다.
감동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 몸이 살만해지니 바로 약속의 이행의무와 과각성이 발현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신경이 끊겼다고. 웃겼다. 스스로 강하다고 믿었는데 고작 그 정도인가라고. 그 말을 듣고 난 두 가지를 배웠다.
첫 번째, 사람은 참 신기하다는 것.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치 기계의 오류처럼, 시스템은 멈추고, 머리는 현실을 거부한다.
심지어 아무도 원망할 수 없는 일에도, 억지로 ‘누구 탓’을 만들고 싶어지는 본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두 번째, 나는 정말 미쳤구나 싶었다.
그 약속 하나 지키겠다고,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줄이야. 재밌는 놈이라고 느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내 말도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머니 앞에서만큼은 난 강해야 했다. 나약하지 않다고, 괜찮다고, 내가 누군지 잊었냐고 되려 어머니를 돌려보냈다.
"신경 끊김."
무서운 단어였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게 내 인생이 망했다는 말처럼 들렸으니까.
아니, 난 이렇게 끝낼 게 아니라 이제 약속의 출발점에 선 것뿐이라고 믿고 싶었다. 이제서 1등급이었고 더 높이 올라가야 했다. 그래야 두 모녀, 어머니와 누나를 행복하게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 소리쳤다. 절대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운동을 10년 넘게 했기에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사실은 ‘과각성’ 덕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죽일 뻔한 과각성이 또 나를 살려냈다.
의사는 휴학을 권유했고, 이대로 가면 후회는 물론 건강도 장담 못 한다고 했다. 정신과도 같이 다녀보라고 많은 이들이 조언했다. 하지만 난 다 무시했다. 그리고 등교했다.
왜냐면?
나는 그의 아들이었고, 감자돌이였고, 그냥 재미로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