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달이 낮이 되면 해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2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11월 모의고사까지 치르고 나니, 어느새 1학년의 끝이 보였다.
나는 분명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변화가 내가 바라던 방향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였다.
그게 나를 지탱하는 기준이었다.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 집은 이제 너무 조용했고, 그녀를 다시 마주하면 마음이 흔들릴 게 뻔했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았다.
가끔 주위 어른들을 뵐 때마다 “어머니 잘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저는 잘 지내고 있고, 곧 돌아가겠다”라고 덧붙였다.
그저, 그동안 잘 부탁드린다는 말만 남길 뿐이었다.
방학 내내 생각이 많았다.
마침 수면제도 다 떨어져 병원에 가볼까 고민했지만, 결국 가지 않았다.
사실, 효과도 없던 약이었는데 어느새 습관처럼 기대고 있었다.
무의미한 의존이란 걸 알면서도, 끊지 못했다.
정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푹 자는 게 소원이 되어 있었다.
놀러 가자.
“어디 갈까?”
이월드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가자고 했다.
그 무렵, 나는 이름조차 예뻤던 선배와 어떻게든 잘 만나고 있었다.
가족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나를 진심으로 아껴준 사람이었다고, 지금도 그렇게 느낀다.
그땐 그냥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 돌이켜보면 정말, 미치도록 사랑했었다.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우린 커플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내 친구 중에도 나처럼 동아리 선배와 사귀는 친구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더블데이트가 됐다.
그 친구는 나와 달리 한없이 밝고 애교 많은 연하였고, 연애에도 능숙했다.
반면 나는 아버지를 닮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늘 진지했다.
아마 그 누나는 내가 세상의 따뜻함을 조금이라도 알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더블데이트를 제안했던 걸지도 모른다.
전날 밤, 어떤 옷을 입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겨울이었으니 검은 모자, 후드티, 편한 바지가 좋겠다 싶어 그대로 잠들었다.
놀랍게도, 내겐 그게 ‘꾸민’ 거였다.
다음 날, 우리는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누나, 그리고 친구 커플과 함께.
나는 쭈뼛쭈뼛 어색했고, 누나가 옆에 있는 걸 인지하는 순간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화장품 냄새, 손끝이 닿을 듯한 거리, 모든 게 낯설고 떨렸다.
누나는 친구 커플이 팔짱을 끼고 손을 잡는 걸 보며, 내심 부러웠던 것 같다.
“우리도 손잡을까?” 조심스레 묻던 그 말.
하지만 나는 “손에 땀이 많아서”라는 어설픈 핑계로 피했다.
우리는, 참 다른 사람이었다. 극과 극 커플
글을 쓰다 보니, 이번 화는 온전히 그 누나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버스 안,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나는 창밖만 바라봤다.
누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낯선 분위기를 덜어보려 헛소리를 늘어놓기도 했고, 조심스럽게 누나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누나는 단아한 사람이었다.
나는, 누나를 볼 때마다 ‘달’을 닮은 햄스터가 떠올랐다.
볼도 빵빵하고 은은하면서도 언제나 따뜻한 사람.
지하철을 타고 이월드로 향하는 동안, 우린 조금 더 가까워졌다.
아무리 차갑고 무딘 나라도, 누나의 다정한 노력 앞에서는 조금씩 바뀌어갔다.
웃고, 먼저 말을 걸고, 서툴게나마 마음을 내보이게 됐다.
이월드는 커플들로 붐볐다.
예전엔 여자친구와 이런 데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사진 찍는 걸 유난히 싫어했던 나였지만, 그날만은 달랐다.
넷이서 사진도 찍고, 놀이기구도 타고, 진심 섞인 이야기들도 나눴다.
밤이 되자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아름다웠다.
누나에게 고마웠다.
문득,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사랑해 줄까.
그 순간, 나 스스로를 의심했다.
행복이 조금씩 다가오려 하면, 꼭 누군가가 컴퓨터에서 바이러스를 지우듯 감정을 지우고, 차가움을 덧씌웠다.
그건 마치 오래전부터 내 안에 각인된 자기 방어기제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다가올수록, 더 멀어지고 싶어지는.
다시금 무뚝뚝해진 나를 보는 누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분명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짧은 시간 사이,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으니까.
그럼에도 누나는, 그 모든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줬다.
자아가 흔들리든, 슬퍼하든, 기뻐하든 어떤 모습이어도 내 편이 되어주었다.
아마 그래서일까.
벌써 10년도 훌쩍 지났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선명하다.
누나는 내 마음속에 아주 작은 씨앗을 심어주고 떠났다.
그날 밤,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평온한 꿈을 꿨다.
그 씨앗은 결국 나를 아프게 했다.
차갑고 단단했던, 감정 하나 허용하지 않던 기계 같은 나에게 그 감정의 씨앗은 아주 천천히, 아주 깊숙이 침투해 내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다.
기계는 서툴게나마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낯설어했지만 그 자체가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태초부터 ‘약속을 지키도록’ 설계된 기계였다.
느끼고 흔들리고 싶어도, 그 본질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이 밝았다.
정해진 대로 움직였다.
기상, 운동, 아침 식사, 자습, 피시방, 담배, 운동, 공부.
그저 또 하나의 반복이었다.
어느덧 2학년이 되었다.
늘 나를 혼내거나, 때로는 아껴주셨던 선배들은 모두 졸업했다.
그 자리에 새로운 신입생들이 들어섰고, 나도 이제 누군가의 선배가 되어 있었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밤이 되자 신입생 환영회를 열고 익숙한 농담과 약간의 겁주기, 그리고
어설픈 권위라는 이름의 '꼰대 짓'도 따라 했다.
그들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밟으며 어느새 나도,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어른인 척'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신의 장난 같았다. 1학년 때 사귀었던, 전 여자친구와 또다시 같은 반이 된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차분해지려 했다.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1주기가 다가왔다.
시간은 흐른 듯했지만, 그날의 충격은 여전히 내 안에 날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 몸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 신호들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