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땐 맹목적으로 매달렸을까
언제나 시간은 잘도 흘렀다.
스승님이 시점에서 벗어나라고 하셨다. 과거를 계속해서 디버깅하면서 무수한 선택과 결과에 따른 최고의 수를 찾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스스로 이미 결과가 나온 바둑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는 것과 같다. 어찌하면 가장 베스트였을까 하루에 수백 번 반복했다.
스스로 무의미하단걸 안다. 그런데 반복했다. 무의미한 거를 통해서라도 그를 기억하려고,
행여나 훗날 불안장애를 만들게 되지만 그 당시엔 혹시나 내가 놓친 게 있을까 봐. 과거를 보다 보면 놓쳤던 세세한 거까지 그와의 몇 안 되는 추억을 기억하게 되니깐.
잃는 걸 생각 안 하고 순수하게 얻는 거만 고려했다.
나와 가족을 제외하곤 학교에서 거의 아무도 그가 죽은 걸 몰랐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들 무난히 흘러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문득 내가 죽어도 이렇게 조용할까? 내가 죽으면 많은 이들이 추모해줬으면 한다. 공허는 너무 나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언젠가 내 기억 속에서 그도 사라지겠지. 그리곤 언제 죽었냐는 듯 나도 언젠가 내 삶을 살게 되겠지.
난 그에게 물려받은 유품이 없었다. 본인을 챙기기보다도 그도 가진 게 없고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였는데, 항상 챙겨줘야 할 사람이 많았기에 그들에게 주느라 바빴으니 까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게 자기 몸부터 챙기지. 뭐 하러. 왜 그의 주위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을까. 적다 생각해 보면 그의 생김새 그리고 정신력이란 유전자 가장 강한 걸 물려받었다. 혹은 유언 비슷한 약속과 추억정도, 결국 그의 가장 중요한 유품이 나인 것이다.
난 나만의 방식으로 조용하게 그를 떠나보냈다. 문득 생각을 해보았다. 그는 천국을 갔을까. 지옥을 갔을까. 아니면 구천을 떠돌고 있을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곤충과 미생물들이 분가루를 먹고 있을까. 화장을 할 때 뜨겁지 않았을까. 그렇게 죽음이란 존재가 두렵고 공포스러웠을까. 좀 더 이야기 많이 할걸. 포옹이나 악수라도 해볼걸. 솔직하게 내 감정을 드러내고 보낼걸. 그와의 대화 신체접촉 추억이 없다.
난 어머니께 후회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기계인 척해도 결국 사람이다.
그에게 사랑한다. 고마웠다. 두 마디를 못한 게 후회된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할 때 포근히 안아줄걸. 끝까지 그를 나약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해해 볼걸. 같이 무거운 짐을 나눠 들고 그에 삶에 좀 더 궁금해하고 이야기를 들을 걸.
어렸던 난 남에게 관심도 없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이 글을 어머니가 읽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에게 저 두 문장을 말해주고 싶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어보기도 때론 마을의 돌주먹이 되어보기도 하며 성인이 된 이후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회사에 취업하여 두 자식을 가진 아버지.
글을 쓰다 보니 치료가 되기보단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감정과 감성적인 모습이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모든 걸 분석하지 않고 감정을 바라보는 기분은 되게 묘하다.
분명 난데 내가 아닌 것 같다.
언젠부턴가 좋은 날이면 아침에 2번, 해 사진을 찍는다.
신호등에서 한번 버스정류장에서 한번. 아침마다 해 모양도 조금 다르고 사진도 다르게 나온다.
어쩔 땐 엄청 크게 어쩔 땐 되게 작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해만 보면 그와의 가치관 차이가 떠오른다.
그는 해를 보고 달리는 걸 좋아했다. 밝음을 향해 뛰어간다고.
난 이와 반대로 해를 등지고 뛰는 걸 좋아했다. 해가 날 응원하듯 든든하다고.
이번엔 너무 회상이 짙었다. 다음에 하는 걸로 하고 다시 고등학생 때의 글을 써볼까 한다.
내신도 잘 나왔다. 1.2 등급 정도였다. 학생수가 적었기에 경쟁률이 치열했다. 그런데 난 내신에 크게 관심은 없었다. 정시파이터를 추구했다. 혼자 독학으로 공부해서 수능을 잘 치고 뉴스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살다 보니 힘듦을 이겨내지 못하는 분들, 나와 같은 삶을 공유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 용기를 줄 생각이었다. 경험해 보니 썩 고통과 힘듦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신 1등급은 티비에 안 나오지만 수능 1등은 티비에 나오니깐. 정말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고 싶었다. 그럼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생각했다.
난 어느새 성공을 약속의 결과로 여겼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약속을 지킨 다음엔? 뭐 해야 하는 거야? 뭐 하지? 죽어야 하나. 생각했다. 사실 저 때 인지하고 있었다. 난 사는 목적이 없구나. 왜 산 거지? 그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는구나. 내 꿈은 뭐지? 뭘 하고 싶은 거지? 언젠가 그럼 자아혼란이 오겠구나 마음 한편에 미리 생각을 했다.
종종 애들과 미래 얘기하다 보면 난 정해진 게 없었다. 어릴 때 하고 싶었던 벽돌 쌓기와 굴착기 2개가 가장 하고 싶었다. 그럼 애들은 내가 장난치는 줄 알고 비웃었다. 난 진짜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었다. 의대 경찰대 사관학교 유명대학 크게 관심이 없었다. 명분상 약속 때문에 가려는 거지 큰 욕심이 없었다. 매번 같은 굴레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그러면서 결정도 나지 않는 질문.
결국 다 지킨 다음에 생각하자로 퉁치고 넘어갔다.
9월 모의고사를 쳤다. 결과는 내 맘에 들지 않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아직 고1이라서 의미가 없다는 둥, 나보다 더 대단한 성적의 분들이 계셨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겸손해야 했고 노력해야겠다. 조용히 차갑게 피드백을 했다. 백분위가 99.6이었다. 내심 막 자랑하고 싶었다. 어머니께 누나에게. 친구들에게. 하지만 침묵을 택했다.
아직 최종결과가 아니니깐 고작 이거에 기뻐하려고 공부한 게 아니니깐. 혼자 더 큰 계획이 있었고 이건 고작 일부였다.
학교에서 학우들은 모의고사 전교 1등을 찾는데 바빴다. 늘 선두에 들었던 얘들 중 아무도 1등이 없으니깐. 아무도 나란 생각은 안 했었다.
학교에서 나의 이미지는 이상했다.
맨날 수업시간에 졸고 헛소리를 마구마구 해대며, 여성분들을 혐오하고 미래 없이 인생을 막사는. 말 더듬고 하얗고 훈훈한 외모지만 담배와 피시방을 전전하는 이미지. 다들 왜 저렇게 태어나서 저렇게 살까 생각하는 아이. 그게 나였다.
누가 날 1등일 거라고 생각하겠나.
결국 스스로 커밍아웃했다. 아직도 처음 내 실력을 공개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내 경험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겪어보지 못하거나 주위에서 들어보지 못한 건 암묵적으로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설사 그게 사실일지라도 혹은 정말 불가능이라고 생각된다면. 절대 안 믿는다. 오히려. 실현가능한 소설을 믿지. 생각은 본인의 데이터로 추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1등이다. 99.6으로 1등이다.
네가? 다들 비웃었다. 고작 운동만 하던 네가 공부 얼마 하지도 않았으면서 99.6이라고? 그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는 아냐?
왜 안 믿는 거지? 다들 믿기를 거부했다. 그럼 뭐 하나 진짠데.
어차피 기숙사에서 성적순으로 자습실 자리를 정할 때 내 이름이 가장 먼저 불리더니 사건은 종결됐다.
그럼에도 믿지 않았다.
소문은 전학교 그리고 다른 학교 그리고 주변 학부모님들께 일파만파 퍼져갔다. 거품이 끼이기도 와전되기도 했지만 어느덧 난 무수한 관심에 취했다.
여학우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저런 걸 왜 가치로 매겼을까. 숫자일 뿐인데.
그러자 나와 친한 남학우들을 제외한 다른 남학우들한텐 시기와 질투를 받았다. 왜 날 싫어하는 거야, 너희들도 열심히 해서 성장하면 되는 거잖아. 나약한 놈들.
고등학생 때만큼 입시에 관심이 많을 나이는 없을 것이다. 친구들의 인강, 학원, 좋은 책, 등등 각자 공부방법이 달랐다. 뭐 난 돈도 없어서 저런 거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스스로 모든 걸 이루리 생각했다. 오히려 자존감이 솟구쳤다.
내가 만들어낸 가짜 자존감이었다. 이미 속은 곪았지만 애써 현실부정하며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있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올바르지 못한 자존감이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내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험난한 삶을 재밌다고 인지하며 이겨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