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완벽의 역설

강박과 이름값

by 감자돌이

난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갔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학교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합법적인 ‘땡땡이’였다.

대학병원은 지루한 곳이었다. 혈액 검사, 뇌파 검사, 부정맥 검사, 각종 검사도 하고, 결과도 듣고. 반복되는 절차 속에서 내 이름은 차트 위에 익숙하게 남아 있었다.

매번 혈압체크와 심장박동 수 체크, 항상 내 심장은 60을 넘기지 않았다. 가끔씩 생각했다. 이랬던 내가 250을 넘겼다고? 심장이 아프고 고통스러울만했다.

고생했어 심장아 이제 아프지 않을 거야.


신기했던 점은 신경외과에 어린애는 나뿐이었다는 거였다. 다들 날 보며 저 나이에 왜 여기 있지? 그러셨다.


의사는 말했다.


뇌전증은 소위 간질이라고 부르는 병인데, 간혹 이유 없이 발병하는 뇌전증이 있다고.

검사결과는 극히 정상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린 이유에는 특별한 조건도, 명확한 원인도 없다고 했다. 단 하나, 피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나도 알고 모두 알고 있는 그러한 피해야 할 것들이었다. 술, 수면 부족, 과도한 스트레스. 누구나 조심해야 할 것들인데, 나에게는 더욱 철저한 금기였다.

쩌라는 건지 모르겠었다.

뭐 이유 없음이라고 병명이 적혔는데 진짜 어쩌라는 건지 생각하고 자포자기했다.

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그 시절, 내 어린 피와 강한 정신력, 튼튼한 신체를 믿었다.


진료실에 앉아 매번 의사와 논쟁을 벌이곤 했다. 상담이나 조언보다는, 새로운 뇌전증의 패러다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었다. 계속 약을 먹으며 경과를 지켜보자는 기약 없는 말은 난 듣기 싫었다.

의사는 약을 권했고, 나는 매번 약은 나약한 자가 먹는 거라고 줘도 안 먹는다고 했다. 가 과각성으로 끊었으니 다시 과각성으로 치료할 거라고 했다.


난 약 따위 필요 없다.


맛도 없었고, 무엇보다 복용 후 머리가 느려지는 느낌이 싫었다. 예민하고 반응 빠르던 나의 뇌가 무기력해지고, 부정적인 단어들이 자꾸 떠올랐다.의 부작용이었다. 무서웠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약을 먹으면 병은 조절되겠지만, 내가 가진 밝고 긍정적인 두뇌를 잃어야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약 먹는걸 스스로 포기했다.


약속지킴에 목숨을 걸던 나는 결국 약을 버렸다.

대신, 그 대가는 분명했다.

쓰러짐, 피, 골절, 근육통. 그리고 발작. 사라져 버린 며칠간의 기억 그리고 지식.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고통 속에서, 나는 점점 내가 그렸던 신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묘한 확신을 느꼈다.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신.


완벽했다.
완벽하기 전엔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 완벽해지고 나니까 두려웠다.


어디서 실수할까?
뭐가 틀어질까?


완벽해졌다는 것도 사실 편해지기 위한 지친 나의 속임인가?

다시 떨어지는 게 두려운 건가?

엄청 두려웠다. 혼자가 되기 싫었다.
속삭임과 동시에 완벽주의 강박이 찾아왔다.
스스로를 조이는 규율과 규칙을 만들었고, 그건 곧 스트레스가 됐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반비례하듯 어느새 난 이름을 알렸다.
학교, 어머니, 다른 지역 학교, 대구시 자체에서도.
나의 공부 방식, 루틴, 말투, 심지어 내가 하는 행동까지 유행처럼 번졌다.
처음엔 좋았다. 근데 그게 곧 안일함으로 이어졌다.

거품이 끼인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거품마저도 진짜인 줄 알았고 난 스스로 실력을 더 고평가 했다. 안일함에서 나오는 자만, 패착이었다. 그 생각은 점차 견고해졌다.
이미 시중의 문제집은 다 풀어봤고, 새로운 자극은 없었고. 슬슬 나사가 풀렸다.

이 시점에서 모든 게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이룰 수 있는 건 거의 이뤘는데. 심지어 나 스스로 이뤘는데 공허했다. 뒤늦게 온 사춘기였다.
공부보단 운동, 운동보단 게임, 게임보단 혼자 산책.
점점 무의미함을 추구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 무의미함을 해석함과 동시에 어딘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내가 누구지?


한창 나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다.


뭘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누구지?
뭘 하며 살아야 하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뭐였을까?


의심이 고개를 들었고, 동시에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늘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다 보면 그런 생각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주체를 빼앗긴 어느덧 약속 연연하며 자기를 성장해 왔던 난, 혼란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조언을 듣기 위해 많은 분들께 질문했다.

선생님, 스승님, 등,


제가 뭐 하러 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누군지도 잊어버린 것 같아요.


그들은 답했다.


더 공부를 열심히, 자기 발전을 더 열심히, 하나하나 얻다 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라고.


답은 없었다.

그들은 좋은 말을 해준 거지 옳은 말은 아니었다.

왜냐면 이젠 답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애.

자기애.


난 날 사랑하지 않았다. 나 한 몸쯤 버려도 좋다고 늘 생각했다. 나의 행복이 아니라. 아버지의 안식과 어머니 누나의 행복이 목표였다.

효자가 아니라 한심한 아이였다.


성적은 전교 10등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대나 사관학교를 염두에 두고 꾸준히 운동도 했다. 물론 불건강한 신체였지만, 뇌전증이라도 혹시나 혹시나 미래는 모르는 거니깐.
몸은 바빴지만, 머릿속은 늘 조용히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동아리 있는데요?


담임선생님은 좋은 분이셨다. 몇 안 되는,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스승님이자 어른이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우리를 좋은 길로 이끌고 싶어 하셨다.


우리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선을 넘는 말썽을 부린 적은 없지만, 종종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놀았다.

말로 풀긴 부끄럽지만 끄적여보면,

소화기로 장난치기.

완강기 타고 특수부대 따라 하기.

과학실에서 초콜릿 만들어 먹기.

기상음악 우리가 만든 노래로 바꾸기.

등 다양했다.

물론 술, 담배, 피시방은 함께였다.


그럴 때마다 교장선생님은 늘 속상해하셨다.


학생들의 불만, 선생님들의 요구. 점점 커지는 소란 끝에, 결국 우리는 담임선생님 밑에서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시작하게 됐다.


한적한 수요일이었다.
스파게티와 돈가스를 나눠 먹고, 정문이 아닌 ‘우리들만의 개구멍’으로 피시방에 가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웬걸. 담임선생님이

‘일루 와, 일루 와’ 하시며 우리를 붙잡으셨다.

선생님은 느닷없이 딜을 제안하셨다.

“나랑 오래 달리기 해서 이기면 피시방 보내줄게. 대신 계속 수요일은 달리기 해야 해.”


속으로 웃음이 났다.

선생님... 저, 선출이었어요. 스카우트 제의까지 온...

거만한 제자와 정체를 숨긴 스승.

그렇게 우리들은 아무 예고 없이, 뜬금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오후 1시.

지도에도 없는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3km는 괜찮았다.

익숙한 페이스였고, 예전엔 20km도 뛰어봤으니까.

하지만 ‘어디로 가는 걸까?’란 의문이 들 무렵, 친구들이 하나둘씩 뒤처지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수분이 부족했고,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계속 옆에서 스승님은 말을 거셨다. 처음엔 다 받아들였었는데 숨이 딸리기 시작했다.

"감자돌이 지쳤구나?"


각성을 켜서 사선을 넘기도 여하튼 열심히 뛰었다. 목표를 정하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루는 편이라 최선을 다했다.

뛰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후련했다.

분명 짜증 나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길.
조용했고, 편안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10년을 뛰었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편안해졌다, 무슨 여유일까?


그렇게 2시간을 더 뛰었다. 옷은 땀범벅이었고 침 도나 오지 않고 목말라서 고통스러웠다.
여긴 어디고, 지금 몇 시일까.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

오늘 피시방가긴 글렀네. 바로 졸도할 것 같은데


내 입에서 졸도라니, 매번 밤에 고통스러워하며 잠 못 이루고 수면제에 의존해서 자려하고 결국 자는데 실패해서 조용한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는 내가, 졸도라니 신기했다.


생각은 생각대로 흘러가고,
어느새 나도 뒤처졌다.
선생님은


“알아서 돌아오되, 늦게 오면 결석 처리할 거다”


그러시고 가셨다.

걷다가, 다시 뛰다가.

일단 직진했다.

선생님이 ‘터닝포인트를 표시해 놨다’고 하셨으니, 믿기로 했다.


슬슬 어두워졌다.

10명이 함께 시작한 길엔 이제 세 명만 남아 있었다.

다들 어디 간 걸까.


“우리 큰일 난 거 아니냐?”“폰도 없고, 불빛도 없고...”


그러면서도 웃었다.

내 베스트 프렌즈이 옆에 있었으니까.

랑 함께라면 못 이겨낼 게 뭐 있겠어.


바람이 산들거렸다.

강물 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

전자파 하나 없는, 조용한 길.

비포장도로를 지나, 이제는 길조차 없었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선생님 험담도 했다.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많은 대화를 했다.

너무 더워서 아무도 없겠다 싶어, 웃으며 상의를 벗고, 하의도 벗었다.


그땐 몰랐다.

왜 그런 미션을 주셨는지.

그리고, 왜 굳이 우리였는지.


글이 길어짐에 따라 다음 화에 이어 쓰도록 하겠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