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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새로 시작할 용기가 필요해요.

1-7

by 꾸니왕

민호는 밤새 읽었다. 며칠 전 제아에게 권했던 책을 자기가 다시 읽었다.

비욘 나티코 린테블라드의 '내가 틀리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이다. 제목에 끌려서 읽었던 책이었다. 그 책을 제아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을 얼마 전 제아가 지금 민호에게 필요한 책 같다고 권했다.

민호는 읽었다. 그리고 되새겼다.

'그래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

민호는 족쇄라고 여겨 주방 한쪽 구석 박스에 가둬 놓았던 자신의 소설책을 별밤책방에 내어 놓기로 했다.

처음 출간 때의 설렘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는 두렵지가 않았다. 족쇄가 다시 조여 오더라도 민호에게는 사람들과 책이라는 만능 키를 쥐고 있었다. 언제든지 그 족쇄를 풀 수가 있었다.

민호는 결심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내가 틀렸습니다. 다시 바로 잡아 보겠습니다. 별밤책방으로 한잔하러 오세요.-

글과 함께 민호의 소설책 겉표지를 같이 올렸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카톡~카톡"알람이 왔다. 제아가 엄지 척을 하고 있는 파마머리에 파자마를 입은 못생긴 아줌마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민호는 책방문을 열고 신간매대 중간에 자신의 소설책을 진열했다. '얼마나 이 애들도 나오고 싶었을까?' 주인을 잘못 만나 원치 않은 박스에서 나오지도 못했으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틈사이로 낙엽 한 잎이 들어와 있었다. 누군가가 힘내라고 낙엽 뒷면에 글씨를 새겨 넣어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낙엽을 들고는 한참을 바라보다 혼자 고개를 흔들었다. 낙엽 뒷면에는 어떤 새의 흔적인지 모르지만 하얀 흔적이 있었다.

민호는 빗자루를 들고는 테라스로 나갔다. 빗질을 해도 테라스 방부목사이에 끼어있는 낙엽은 쓸리지 않아 결국은 줍기로 했다. 한참을 쭈그려 앉아 낙엽을 라면박스에 주여 담고 있을 때 봉우가 '양산 샐러드'라는 이쁜 글씨가 쓰인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작가님. 아침 또 안.. 드.. 셨죠? 이거 드세요. 그리고 멋.. 집니다."

"뭐가 멋져?"

"전.. 부,, 다 멋집니다."

"싱겁기는.. 근데 너는 먹었어? 나 혼자 먹어도 돼?"

"네 저는 먹.. 었어요. 그리고 이제 또 배.. 달하러 가야죠. 저녁에 올게요.."

봉우는 검은 헬멧을 쓰고 왼쪽손을 들고 흔들며 오토바이와 함께 사라졌다. 봉우는 매일 저녁에 별밤책방으로 왔다. 민호가 산책을 가면 혼자서 책방을 지킨다. 그 시간을 봉우는 즐겼다.

민호는 속으로 한번 외쳤다.

'그래 모든 것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 오늘도 파이팅 하자.'

오늘도 별밤책방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별밤책방의 시간은 점점 맞아갔다.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으면 우진이가 별밤책방으로 들어온다.

"아저씨. 아저씨. 안녕하세요."

우진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민호가 보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배꼽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어서 와~책 고르고 앉아~ 아저씨가 복숭아 쥬스 줄게"

"네. 네."

우진이가 책장 앞에서 박수를 치며 폴짝폴짝 뛰면서 책을 고를 때쯤 하얀 중절모를 쓰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김 씨 영감님이 문을 열고 들어 온다.

"어서 오세요. 어르신 앉으세요. 밀크티 한잔 드릴게요."

"나는 됐고, 자~ 김사장 이거 받아."

"이게 뭡니까? 웬 돈입니까?"

"뭔 돈은 뭔 돈? 우진이 복숭아 쥬스 값이지."

"아닙니다. 무슨 그냥 저 먹는 거 주는 건데. 무슨."

"그거는 공짜로 나오나? 이래서 장사하겠나? 그리고 주면 받아."

"아.. 네.."

"그러면 내 갔다 올게~"

"어디요?"

김 씨 영감은 두 번 접은 반듯한 5만 원권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는 오른쪽 손목을 힘들게 고스톱 치듯 손목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경로당에 고스톱 치러 간다는 뜻이다.

민호와 우진이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책 읽는 눈 굴러가는 소리만 별밤 책방에 들렀다.

"딸랑~" 경종소리가 밝고 경쾌하게 침묵의 시간을 깼다.

민호는 살짝 졸았던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나 문쪽으로 바라보며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를 했다. 이제 갓 스물 한 두살쯤 되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고개만 까닥하는 거에 비해 목소리는 밝고 컸다. 민호는 애써 눈웃음을 지으며 쳐다봤으나 여학생은 민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책방을 훑어보았다.

민호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힐끔힐끔 그 여학생의 행동을 지켜봤다. 한쪽 벽면에 놓인 손님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는 책장 앞에 서서는 이 책 저 책을 빼서 훑어보고는 다시 넣고를 반복했다. 다시 신간 매대로 가서는 책들의 표지를 한 권 한 권 정독하듯 읽고는 들었다 놓았다를 했다.

들고 있던 책을 놓고는 뭔가를 부정하고 싶은지 고개를 흔들면서 책 한 권을 들고 계산대 앞에 놓으면서 민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근데요? 아저씨."

"네."

민호는 대답을 하며 이제야 그 여학생과 눈을 마주쳤다. 크고 반짝 빛나는 눈을 하고는 입은 불만이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저런 표정을 지으려 해도 힘든 표정이었다. 그 힘든 표정을 지은 얼굴을 민호 얼굴 앞에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근데요? 아저씨."

"네. 왜요?"

"근데요? 아저씨."를 세 번째 들은 민호는 대답 대신 뭐든 말해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민호는 거울을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표정은 아마도 눈은 초승달을 하고 입고 어색하게 위로 올라가 있는 표정으로 여학생을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근데요? 아저씨~ 꾸니왕이 누구예요?"

민호는 순간 멍했다. 꾸니왕은 민호의 필명이다.

"제가 꾸니왕인데. 왜요?"

그 여학생은 민호의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제가"만 듣고는 신간 코너로 가서는 민호의 책을 들고 왔다. 표지를 넘기고 작가 프로필 사진을 한 번 보고 민호를 한 번 보고는 고개를 심하게 흔들었다.

"아저씨~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왜요?"

"사진이 사기잖아요. 이거는 범죄입니다."

"그렇죠. 사진이 잘못 나왔죠."

민호는 뻔뻔한 표정을 하면서 농담으로 넘겼다.

"아저씨. 아니에요. 두 권 계산해 주세요."

"네."

여학생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그래서 사랑하나? 그래도 사랑한다!'민호의 책을 계산했다.

계산이 끝난 민호의 책을 다시 민호 앞에 내밀었다.

"아저씨~ 꾸니왕 아저씨~ 사인도 해주세요."

"네. 아~ 그래요. 성함이?"

"미순 씨라고 적어줘요."

"미순 씨?"

"뭘 그렇게 봐요. 우리 엄마 이름이에요. 엄마가 사 오라고 해서 사는 겁니다."

"네."

여학생은 책 두 권이 든 봉투를 들고는 나가면서 문 앞에 멈춰 섰다.

"근데요. 아저씨. 아니에요."

뭔가를 말하려다 멈추고는 이 말만 남기고 가버렸다.

민호는 한동안 거울 한 번 보고 책 속의 민호를 한 번 보고를 반복했다.

'미순 씨는 또 누구지?'

민호는 책상 앞에 놓인 탁상 다이어리에 '미순 씨~'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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