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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새로 시작할 용기가 필요해요.

1-8

by 꾸니왕

오전 11시가 되면 별밤책방의 시계는 돌아간다.

11월이 다되었어도 책방문을 열면 후지근한 공기가 쓰나미처럼 덮쳤다.

"휴~~"

민호는 길게 숨을 한번 내쉬고는 양쪽 문을 열었다. 어제의 공기를 내보내고 오늘의 공기를 새롭게 맞이하기도 전에 여학생이 들어왔다.


"아저씨~ 너무 늦게 문 여는 것 아니에요?"

"11시도 안 됐는데요?"


민호는 별밤책방의 책장 위에 걸린 음악 CD판처럼 생긴 벽시계를 쳐다 보고 여학생을 쳐다봤다.

"아~ 미순 씨~~"

여학생은 민호를 쳐다보지도 않고 메뉴판이 적힌 칠판을 봤다. 잘 안 보였는지 한 발을 물러서 봤다.

"미순 씨는 우리 엄마고요. 저 그냥 아아 한잔 주세요."

"네~"

커피를 주문하고는 민호의 소설책을 들고 왔다.

"같이 계산해 주세요."

"어제 샀잖아요?"

"그거는 엄마 꺼고요. 그리고 어제는 제가 아저씨 입장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예의 없이 사진과 비교하는 행동을 해서 죄송했습니다."


여학생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과를 했다. 민호는 물론 사과까지 받을 정도의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 사과까지 할 정도는 아닌데? 왜 그래요?"

"그렇죠. 그렇게까지 예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죠?"

"네.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는데."

"근데요? 꾸니왕 아저씨?"

민호는 저 "근데요?"가 왠지 정겹게 들렸다.

"네. 말하세요."

"꾸니왕 아저씨~ 작가님~ 어떻게 어제 있었던 일을 토씨하나 안 바꾸고 블로그에 올려요?"

"네? 무슨?"

"아저씨가 어제 저랑 주고받았던 대화를 블로그에 올렸다면서요. 그리고 친절히 "미순 씨~" 이름도 이야기하고.."

"그게.."

민호는 '아차'싶었다.

"우리 엄마 "미순 씨"한테 혼났잖아요. 작가님한테 예의 없이 행동했다고."

"아~"

민호는 이 상황이 웃기는지 눈꼬리는 아래로 입꼬리는 위로 올라갔다.

"사과의 의미로 꾸니왕! 짝까님의 책도 한 권 구매하라고 하시네요. 우리 미쑨씨가."

"에이~ 책은 억지로 안 사도 돼요. 제가 미안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아아는 서비스드릴게요."

"아저씨! 장사 안되죠? 손님도 없잖아요?"

"그거는.."

"말 안 해도 이 동네 사람들 다 알아요. 그리고 요즘 누가 책방에서 책 사요? 인터넷으로 사지."

"...."

"계산해 주세요. 그리고 책에 사인해 주시고요. "to 미순 씨"아니고 "to 가을"로 해주세요."

"아~가을~ 지금 태어났나 봐요."

가을이는 민호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책장 앞에 섰다.

"커피는 먹고 갈 겁니다."

"네~"


가을이는 분명 민호의 책을 샀지만 다른 책을 꺼내서 여기 앉아 보고 저기 앉아 보고 했다. 쿠션이 편한 자리를 찾는 듯 보였다. 책장 앞에 쿠션이 마음에 들었는지 거기를 자리 잡았다. 우진이가 항상 앉는 자리였다. 어쩌면 우진이도 쿠션이 편해서 저 자리만 앉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민호는 했다.

"커피 나왔습니다."

가을이는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정적이 흐른 지 5분쯤 지났을까? 가을이의 책 덮는 소리가 났다. 가을이는 커피를 한 모금하고는 책을 들고 다시 책장 앞에 섰다. 5분쯤 읽은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꾸니왕 작가님~ 저 책 좀 골라주면 안돼요?"

"무슨책요?"

"제가 읽을만할 책이요. 책 좀 권해줘요."

민호는 가을이가 있는 책장 앞으로 갔다.

"저는 책을 우리가 입는 옷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을이는 민호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45도 숙인 채 민호를 쳐다보면서 계속 '말해보세요.'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게 그러니깐 가을 학생이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는지 제가 알 수도 없고 대화도 안 해 봤으니 제가 가을 학생에게 맞는 옷을 권할 수가 없잖아요. 만약 작거나 크면 안 되고, 어떤 색상을 좋아하는지도 알 수 없으니 "책을 이거 읽어보세요."라고 권할 수가 없네요."


가을이는 입을 모은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가을이는 빈 손으로 다시 자리 앉아 오른손으로 커피를 들고 마시며 왼손으로 핸들폰을 들고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민호는 괜히 어색한지 책장의 책을 한 권 뺐다가 다른 빈자리에 꼽았다.

"꾸니왕 작가님~ 생각보다 유명하네요. 검색하니 바로 나오네요. 근데 이 사진은.."

"하하 미안해요. 사진이 그것뿐이라.."

"그런데 책에 대한 서평이 별로 없네요. 읽었다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

가을이는 민호를 한 번 쳐다봤다. 민호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꾸니왕 작가님 스타일의 옷을 별로 사람들이 안 입고 안 좋아하나 봐요. 헤헤"

민호는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저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웃으며 당당하게 말하는 가을이를 피해 "하하하" 웃으며 주방 구석 자기의 자리로 들어왔다.

분명 가을이의 말은 민호의 가슴에 명중으로 꼽혔는데 민호는 아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처 다른 생각도 하기 전에 의자 빼는 소리와 함께 가을이가 계산대 앞에 왔다.

"책은 제 스타일을 못 찾아주셨는데, 커피는 딱 제 스타일이네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하하하"

"자주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가을이는 민호가슴에 뭔가가 꼽혔는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밝게 인사를 하고는 나갔다. 민호는 가을이가 앉은자리를 치우려 하는데 문이 "딸랑"하고는 열렸다.

가을이가 얼굴만 내밀고 말했다.

"꾸니왕 작가 아저씨~~ 오늘 일은 블로그에 올리면 안돼요."

"아~네~"

민호는 웃었다.

민호는 앞으로 별밤책방의 시계는 조금 더 빠르게 돌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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