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봉우는 아침부터 설렜다. 오늘은 배달일을 안 하기로 했다. 혹시나 오늘같이 설레는 날에 '배달을 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나?' 괜한 걱정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매미가 되어 "엥~엥~" 거렸다. 오늘은 쉬고 일찍 별밤책방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자 매미는 사라졌다.
봉우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염색도 하고 종일 "안녕하세요. 저는 한봉우입니다."를 또박또박 연습을 했다.
봉우는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들어다 보고 닫고를 반복했다. 그동안 잘 잠자고 있던 조바심이 초조함으로 바뀌어 강박장애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봉우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봉우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길게 내쉬었다. 조금은 안정이 되는 듯 느낌을 받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초조함 때문에 집을 나왔다.
"딸랑" 봉우는 경종소리가 길게 울리지 않게 문을 열고 경종을 잡고는 살짝 닫는다.
"안.. 녕.. 하세요."
"어~ 뽕우~ 왜?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냥 오늘 배... 달일 안.. 하려고요, 집에 있기 그래서 일찍 나왔어요. 책방이 더 편하기도 하고..."
"그래 그럼 편하게 있어. 뭐 하지 마!"
"네..."
봉우의 초조함은 책들이 품어내는 편안함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민호는 한참을 봉우를 쳐다보다가 다가가서 봉우의 등을 쓰다듬고는 신간매대에 책을 정리했다.
봉우는 별밤책방의 벽시계를 쳐다보고는 '오늘따라 참 늦게 간다.'라고 생각했다. 봉우의 생각을 알아차린 별밤책방의 벽시계는 봉우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돌아갔다.
"딸~~ 랑"경종소리가 뜸을 들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저씨~"
우진이의 배꼽인사를 받은 민호는 통창을 통해 김 씨 영감님이 같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김 씨 영감님은 항상 테라스에 있는 천이와 먼저 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민호 씨~ 어? 봉우 씨도 일찍 왔네요."
우진이가 배꼽인사를 하고 책장 앞으로 갈 때쯤 연우가 들어왔다.
"네. 어서 오세요. 연우 씨~ 잘 지냈죠?"
민호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자리로 안내했다. 테이블을 세 개를 붙여서 단체석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오늘이 바로 B(BOOK)&B(BEER)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첫날이다. 연우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민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책 '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를 가리켰다.
"어? 연우 씨 그 책? 샀네요? 잘했어요? 재미있어요?"
"네 민호 씨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기에 샀어요. 반쯤 읽었어요. 고마워요."
민호는 괜히 어깨를 풀면서 "아니에요"라면서 손시레를 쳤다.
"멍~ 멍~" 테라스에서 천이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제아가 온 것이다. 제아는 김 씨 영감님이랑 잠시 천이를 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우와~ 이렇게 테이블을 또 붙여놓으니깐 너무 근사한데요. 연회장 분위기가 나는데요."
제아는 자리에 앉으며 연우랑 눈인사를 하고는 어색한지 괜한 말을 했다.
"딸~~ 랑" 경종소리가 요란하지만 밝았다.
"아~~ 저~~ 씨 저 왔어요." 가을이다.
가을이의 인사소리에 반사적으로 우진이는 가을 앞에 가서 배꼽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 자기 옆자리에 앉혔다. 이제는 가을이도 제법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우진이의 손을 잡고 우진이가 정한 자리에 앉는다.
민호는 가을이가 들어오면서 열어놓은 출입문을 주시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휠체어를 밀고 들어 온 겨울이의 목소리도 요란하지만 밝았다.
"안녕하세요. 꾸니왕 작가님~"
미순은 민호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별밤책방은 처음 방문했지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꾸니왕의 블로그를 통해 본 그대였다. 민호는 일어나서 미순 씨가 편하게 있을 수 있게 의자를 하나 빼고는 미순이의 겨울이가 잡고 있던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밀면서 테이블 가장자리로 안내했다.
"어서 오세요. 미순 씨~"
민호는 조곤조곤하게 아무도 안 들리게 미순이에게 귓속말로 인사했다. 별밤책방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미순이의 다리 위에 놓인 담요를 쳐다보지 않았다.
민호는 별밤책방에 모인 자신을 포함한 아홉 명을 보니 문뜩 리안 모리아티의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서로가 완벽한 타인들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책처럼 힐링이 되는 아홉 명의 모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자~ 다 모인 것 같습니다. 박수 짝짝짝"
"짝짝짝"
뜬금없는 민호의 박수에 우진이만 호응을 하며 손뼉을 쳤다.
"자자~'B&B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별밤책방 책방지기 김민호입니다."
우진이를 제외한 일곱 명의 사람들이 민호를 쳐다보며 소리 없는 박수를 쳤다.
"아저씨~ 약장수 같아요?"
"하하하"
가을이의 한마디에 다들 민호의 인사 때보다 더 큰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그렇게 조금씩 어색함의 공기도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면 김사장이 모임 회장해. 난 찬성."
"저는 못합니다. 봐주세요. 저는 할 일이 많습니다."
"하하하 그럼 누가 할 거야. 말들 해봐~"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하실 분이 없으시면 제가 추천을 해도 될까요?"
"누구?"
민호는 8명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저는 한 봉 우를 추천합니다." 말하면서 봉우를 등을 쓰다듬었다.
"저.. 저요? 저.. 못해요."
"아니야 네가 딱이야."
모두가 봉우를 쳐다보자 봉우는 민호를 보며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숙이고 저었다.
"그래요. 봉우 씨가 해요."
연우의 한마디에 봉우는 고개를 들어서 민호를 다시 쳐다봤다.
"봉우야~ 너밖에 없어."
"제..가 왜요? 어..떻게?"
"에이~ 잘 봐 봉우! 너는 누구보다도 BOOK을 좋아하고 많이 읽잖아.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네가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BEER를 제일 잘 마시잖아."
"하하하 맞네. 봉우가 해 봉우가 딱이다."
"봉우 씨가 하세요."
"아저씨~파이팅"
모두가 봉우를 'B&B를 사랑하는 사람들'모임의 회장님 자리에 앉혔다. 봉우는 이쁘게 염색까지 한 머리를 긁으면서 일어섰다.
"안 녕하세요. 저는 한봉우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분명 조금 느리지만 더듬지 않았다. 봉우는 스스로 만족했다. 밤새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봉우는 자신감이 붙은 듯 가끔은 더듬고, 조금 느려도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봉우의 진행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쪽부터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제아는 검지를 자기 쪽을 가리키며 자기부터인지를 확인하듯 묻고는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아입니다. 나이는 42세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어쩜 이렇게 이뻐요?"
연우는 제아를 쳐다보고는 "이뻐요."를 한번 더이야기하고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고는 일어섰다.
"반가워요. 저 지금 너무 설레고 행복하네요. 이런 좋은 자리에 있게 해 주신 민호 씨에게 고맙네요. 저는 우진이 엄마 이연우입니다. 49세입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짝짝짝"
봉우의 박수 소리가 울렸다. 민호는 뒤늦게 박수를 쳤다.
"저도 49이에요. 반가워요. 연우 씨"
"그래요 반가워요. 너무 좋네요."
미순이와 연우는 테이블 중앙을 기준으로 서로 손을 잡고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음~ 나는 그냥 김 씨 할아버지라고 불러~ 나이는 모르겠어."
"하하하"
"할아버지 그게 뭐예요?"
김 씨 영감님의 소개에 겨울이 와 가을이는 할아버지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음은 우진이 차례 우진이 일어서서 소개해야지?"
우진이는 일어서서 손뼉을 크게 두 번 치고는 "우진이 우진이 13세 13세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앉았다.
"우진아 그렇게 말고 무슨 우진인지 성을 붙이고 또박또박 인사 다시 해봐."
우진이 옆에 앉은 가을이가 우진이 손을 잡고 다시 인사를 시켰다. 우진이는 가을이를 한번 쳐다봤다.
"우진이 우진이 장우진 13세 13세 안녕하세요."
"우진이! 장우진이 아니고 이우진이라고 할아비가 말했지. 다시 해봐."
김 씨 영감님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연우는 김 씨 영감님에게 그만하시라고 말렸다.
우진이 옆에 앉아있던 가을이는 우진이가 안 놀라게 안아주고는 등을 두드려줬다.
"근데요~ 우진이가 이우진이가 된 거는 연우아줌마 성으로 바꾼 거예요?"
가을이는 연우를 보고 물었다.
"네. 이번에 바꿨어요. 그런데 아직 우진이가 익숙하지 않나 봐요."
"근데요~"
민호는 불안하기 시작했다. 가을이의 "근데요~"다음의 질문이 불안했다.
"근데요~ 왜 할아버지는 김 씨 할아버지고 아줌마는 이연우이시고. 우진이는 전에는 장우진이고."
가을이의 질문에 모두가 당황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연우는 당황할 만도 했는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사정이 있어요. 다음에 이야기해 줄게요. 가을 양~"
"네~ 죄송해요. 그냥 궁금해서 물었어요. 제 소개 차례네요."
가을이가 일어서서 인사를 하려고 하니깐 옆에 앉은 겨울이가 따라 일어났다. 둘은 씩씩하게 일어서서 우렁차고 밝게 인사를 했다.
"저는 25살 오~가을, 저는 오~겨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양손을 브이자를 하고 흔들면서 서로를 보며 앉았다.
미순은 자기 차례가 다가오자 최대한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잘 부탁드려요. 저는 여기 쌍둥이 엄마 정미순입니다. 나이는 저기 연우 씨하고 동갑입니다."
"짝짝짝"
민호가 격렬하게 박수를 쳤다.
"저기 오늘은 제가 좀 진행을 하겠습니다."
"그려~ 오늘은 김사장이 혀. 봉우는 잘 보고 다음부터 혀."
김 씨 영감의 허락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B&B를 사랑하는 모임인 만큼 일단 'BOOK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되지 않겠어요."
민호의 말에 모두가 고개만 다시 끄덕일 뿐 아무 대답이 없다, 민호는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독서모임을 해보신 분 있습니까?"
이번에는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제가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독서모임은 책을 지정해서 다들 읽고 책의 내용에 대해서 토론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모임은 우리랑 안 맞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럼 어떻게?"
미순이가 조용히 손을 들고 물었다.
"네. 이거는 단지 저의 의견입니다. 이렇게 진행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입니다."
민호는 신간매대에 가서 책을 한 권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모두의 시선은 민호의 움직임을 감지하듯 따라갔다.
"자! 이 책은 이해인 님의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입니다. 읽어 보신 분도 있을 것이고, 들어는 봤지만 읽지는 않으신 분도 있을 것이고, 아예 모른다는 분도 있을 겁니다."
"나! 나는 처음 봐~"
"아버지 좀~가만히 계셔봐요."
"하하하"
"그래요. 아마도 어르신은 처음 들어봤을 겁니다. 그런데 상관없어요. 우리 모임은 책을 읽었던, 안 읽었던, 심지어 처음 들어봐도 상관없어요. 다른 독서모임처럼 "이 책을 다 읽고 다음에 만났을 때 우리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합시다."이러면 아마도 몇몇 분은 다음에 안 나올 겁니다. 숙제를 못해서 못 나오는 거죠."
"우와~ 아저씨 작가가 아니고 이번에는 종교 단체 "도를 아십니까?" 같아요."
겨울은 끼어들어 이야기하다가 미순이에게 등짝을 한 대 맞았다.
"하하~ 그쪽으로 나갈까? 그러니깐 우리는 책을 읽는 거는 자유에 맡기고 우리는 이 책 제목에 대해 토론을 해보자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이 책이 궁금해서 읽게 될 수도 있으니깐요."
"아~ 이해했어요."
미순은 금방 이해를 했다. 민호의 의도도 파악이 끝났다. 참 신선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럼. 오늘은 이해인 님의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책 제목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시다."
민호의 말이 끝나자 김 씨 영감이 이야기를 했다.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음~ 못 이겨. 다정한 사람은 못 이겨. 살다 보면 다정한 사람은 호구 잡히기 딱이지. 다정한 사람은 목소리가 고분고분하잖아. 그러면 못 이겨. 목소리 큰 놈이 이겨."
"하하 우와 어르신 말씀에도 일리가 있어요."
민호는 김 씨 영감님을 향해 소리 없는 박수를 두 번 쳤다.
"다정에 다는 많을 다 이겠죠. 정은 정 정 자이겠고요. 그러면 정이 많다 인데, 저도 아버지처럼 정이 많은 사람은 약해서 못 이길 것 같은데요."
봉우가 연우의 이야기가 끝나자 "저.. 도 연우 누.. 나처럼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손을 들고 이야기했다.
"누나?"
"누나요?"
봉우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봉우가 연우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에 불만을 토했다.
"봉우 씨~ 저는 왜 제아 씨라고 부르고 연우언니는 왜? 연우 누나라고 불러요. 제가 봉우 씨를 더 빨리 알았잖아욧."
"맞아요. 그리고 봉우아저씨~ 누나라고 부르는 건 좀.. 두 분이 혹시?"
"아,, 아.. 아.. 니야."
"하하 봉우 아저씨 얼굴 빨개졌어요."
"봉우는 봉우고 다음에 누가 좀 이야기해봐요."
민호는 가을이를 쳐다봤다. 가을이는 입이 또 튀어나왔다. 못 이기는 척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다정한 사람은 이긴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다정한 사람 하면 모두가 '엄마'부터 생각하잖아요. 엄마들은 항상 이기잖아요. 강하고.. 그래서 저는 '다정한 사람은 이긴다.'라고 생각합니다."
"짱짱짱 멋져!"
가을이가 앉자 겨울이는 양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미순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렸다.
제아가 손을 들었다.
"저는 가을 양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네요. 다정한 사람은 '엄마'라는 말은 안 맞아요. 아닌 엄마도 있으니깐요. 그러니깐 가을 양은 엄마 앞에 울 자를 붙여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깐 다정한 사람은 울 엄마이고 울 엄마는 우리를 이긴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저 괜찮아요. 괜히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세요. 하하"
"나 이책읽고 싶어요."
"저도 읽고 싶네요. 봉우씨 갈 때 좀 가을양꺼랑 저꺼 2권 계산해서 챙겨주세요."
연우는 봉우에게 카드를 건넸다.
그렇게 완벽하게 타인은 아니지만 아홉명은 '다정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 이제 BEER를 사랑해야죠.짝짝짝"
"네네 짝짝짝. 좋지. 맥주 맥주 엄마 맥주 좋아 좋아."
9명이 각자 이야기했지만 "좋다."는 표현으로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