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3 힐링을 느껴요.

3-3

by 꾸니왕

민호는 예상질문지를 받기는 받았으나 그 질문에 맞는 답을 적지 못했다. 예상질문지의 질문들은 뻔한 질문들이었다. 그 뻔한 질문에 뻔한 답을 몇 자만 적어도 될 것을 민호는 쉽게 답을 적지 못했다.

'1) 왜? 책방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까?

2) 왜? 맥주를 파는 책방을 열게 되었습니까?

3)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까?

4) 책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죠?

5) 앞으로 별밤책방이 어떤 책방이 되기를 바랍니까?

6)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추후 작품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예상 질문인지? 단지 제아와 봉우가 궁금해해서 묻는지 모르지만 어떤 인터뷰도 기본적으로 하는 질문인 듯했다. 이런 질문에도 민호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1년 가까운 시간이 민호의 답안지를 바꿔 놓은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에이~ 그냥 즐기자. 묻는 말에 떠오르는 말 하자. 못하면 못하는 거지.'

민호는 머릿속에 가득 찬 먹구름을 '그냥 하자.' 하면서 흔들어서 내 보냈다.

"천아~ 오늘도 별밤책방을 위해서 파이팅"


"딸~~~~ 랑"

경종 소리가 길었다. 민호는 벽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우진이가 올 시간이 아니었다. 별밤책방의 벽시계는 멈추었다가 민호가 보자 급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서 오... 어 미순 씨"

"안녕하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아저씨"

가을이가 미순이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다.

".... 가을아 어서 와..."

가을이는 미순이를 뒤에서 안고는 민호에게 손을 흔들고 나갔다. 민호는 어색하게 인사하다가 말고 손을 흔들었다.

민호는 미순이 편하게 있을 수 있게 넓은 자리에 의자를 뺐다.

"설마 미순 씨 오늘 라디오 때문에 오신 겁니까?"

"하하 아니에요. 책 읽으려 왔어요."

"아닌 것 같은데요. 식사 안 했죠."

"네. 저 돈가스 하나 해주세요."

"네. 저도 돈가스 해서 점심 먹으려고 했어요. 같이 먹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미순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 위에 놓인 에코백에서 책을 꺼냈다. 별밤책방의 책냄새가 돈가스 냄새로 바뀌기 시작했다. 민호는 봉우가 직접 담근 피클을 맛을 보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자~ 돈가스 나왔습니다. 어~'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책이네요."

"네. 어제 모임에서 '다정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나니 안 읽고는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샀잖아요. 작가님이 직접 계산해 주셨잖아요."

"아~ 그랬나요. 술이 취했나 봐요. 하하"

민호는 자연스럽게 칼과 포크를 들고 돈가스를 먹기 좋게 잘랐다.

"잠시만요."

민호는 주류냉장고에서 맥주 두병을 꺼내서 미순이를 보고 흔들었다. 미순은 고개 숙여 웃음으로 답을 했다.

"한잔 받으세요. 돈가스 먹을 때는 맥주를 먹어줘야 해요."

"하하 괜찮겠어요. 오늘 라디오 인터뷰 있잖아요."

"봐봐. 인터뷰 때문에 걱정이 돼서 온 거죠."

"아니다니깐요. 하하"

"괜찮습니다. 한 두병은 오히려 약이죠."

"저는 책임 못 집니다."

"하하하"

민호는 미순이가 테이블옆에 놓은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책을 보고는 손뼉을 쳤다.

"맞다. 저 어제 깜짝 놀랐잖아요."

"왜요?"

"어제 가을이가 "다정한 사람은 엄마다."이랬잖아요. 그리고"엄마는 이긴다 그래서 다정한 사람은 이긴다." 그 말에 저 울컥했어요."

"왜요? 그냥 엉뚱한 답이잖아요."

"아니에요. 그게 왜 엉뚱해요. "엄마는 다정한 사람이다."라고 했을 때 미순 씨가 얼마나 가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줬는지 알 수 있었잖아요. 그리고 가을이도 느꼈고, 무엇보다 엄마는 다정한데 이긴다. 이 말은 "엄마는 강하다."이 말 아니겠어요. "미순 씨는 강하다." 이 말이겠죠. 저 어제 울 뻔했어요."

"에이~억지 해석이에요."

"아닙니다. 그게 왜 억지 해석이에요."

"그런데 작가님 괜찮아요? 많이 긴장한 얼굴인데요?"

"제가요? 제가 왜 긴장해요? 안 해요? 하하"

"에이~ 긴장되니깐 맥주 먹는 거잖아요."

"아닙니다. 저 원래 맥주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민호와 미순은 한두 잔씩 하다 보니 어느새 돈가스는 다 먹고 맥주는 이미 테이블 위에 5병이 놓여 있었다. 약간 취기가 민호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이미 라디오 인터뷰는 잊은 듯했다.

"어제 가을이가 그러던데 미순 씨 매일 일기를 쓰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일기장이 창고에 몇 박스가 된다고 하던데. 대단합니다. 멋집니다. 책도 많이 읽으시고 일기도 매일 쓰시고."

"왜 그래요? 작가님이 대단하시죠. 저 작가님 팬인 거 아시죠. 그리고 저 원래 책 읽는 거는 안 좋아했어요. 작가님 블로그에 올린 글들이 좋아서 소개하신 책을 한 권 한 권 읽다 보니.."

"그래요? 그럼 일기는 언제부터 썼어요?"

"일기요? 정확하게 기억해요. 꾸준히 쓴 거는 국민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부터였어요. 그때는 꼭 방학 때 일기 쓰기와 독후감 쓰기가 방학숙제로 있었잖아요. 저는 그냥 쓰는 게 좋았어요. 제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았고요. 근데 책을 읽고 독후감 쓰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독후감은 책 맨 뒤편 줄거리가 적힌 거 보고 옮겨서 제출했죠."

"그런데요?"

"그런데요. 세상에나 며칠 뒤에 선생님께서 저에게 독후감 상을 주는 거예요."

"와~ 옮겨 적었는데 상을 받았다고요."

"네. 그런데 상을 주면서 선생님이 제게 귓속말을 한 것이 아직 안 잊혔어요. "미순아 너의 일기는 최고였어. 일기상이 없어서 이렇게 독후감상으로 대신 주는 거야. 일기 계속 써." 이러는 거예요."

"우와~ 그때 선생님이 미순 씨의 글 쓰는 재능을 인정한 거네요."

"재능은 무슨? 아무튼 그때부터 웬만하면 일기를 써요."

"대단합니다. 그게 능력입니다. 거기다가 꾸준함이라는 노력까지. 왜 숨겼어요. 당장 책을 써도 되겠어요. 아니지 이미 책 몇십 권은 쓴 거잖아요."

"책은 무슨 그냥 끄적이는 일기예요. 약 올리지 마세요. 저는 작가님처럼 그렇게 글 쓰는 능력은 없어요."

"무슨 그런 말을 해요. 저도 당연히 그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도 이게 능력인지 어설픈 재능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거는 당연했고요. 그렇게 사십몇 년을 살아가다가 그냥 저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쓰다 보니 가끔 미순 씨처럼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작가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런데 이미 미순 씨는 일기를 우와~ 몇 년을 쓰신 거예요?"

"저는 작가님처럼 글을 잘 쓰지 못해요."

"미순 씨 저는 글을 잘 쓴다고 말하는 게 안 맞다고 봐요.그냥 나만의 글을 쓰면되죠. 글씨를 잘 쓴다고 말해야 맞는게 아닐가요. 물론 제 생각이지만요."

"....."

"우리 같이 써 봅시다. 서로 이게 아직은 능력인지 뭔지 모르지만 능력이라 믿어보고 꾸준함이란 노력을 더해 그냥 써봐요."

"..."


민호와 미순이가 글 쓰는 이야기로 맥주를 7병을 먹는 동안 배달일을 짧게 하고 온 봉우, 반차를 쓰고 온 제아, 김 씨 영감 오른손을 꼭 잡고 온 우진이, 연차까지 쓰고 회사를 안 간 연우, 그리고 쌍둥이 가을이, 겨울이 까지 어제 모였던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다시 앉아서 별밤책방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별밤책방의 시계는 4시에 멈췄다. 모두가 같은 표정을 하고 이어폰을 끼기 시작했다. 민호의 입술은 마치 사막의 땅이 갈라지듯 바짝 타들어가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민호는 시원한 생맥주를 거품 가득 차게 따라 한 잔을 마셨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뒷짐 지고 책장에 살짝 기대어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러나 뒷짐 진 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쥐었다 폈다만 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웃는 소리가 들리고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전화 연결을 해보겠습니다. 여보세요."

이소리와 함께 민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민호를 쳐다봤다. 민호는 길게 숨을 내쉬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안녕하세요. 여기는 케네네 라디오 "노래 하나 얘기 둘"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청취자들을 위해 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양산에서 별밤책방 책방지기 작가 꾸니왕이라고 합니다."

"아네~ 꾸니왕님! 반갑습니다. 근데 꾸니왕이라는 필명이 대개 특이한데요? 왜 꾸니왕인줄 여쭈어도 될까요?"

민호는 잠시 망설였다. 꾸니왕은 지은이가 애칭으로 연애할 때부터 붙여준 별명이었다.

"음~ 그러니깐 글 꾼, 이야기꾼, 그중에서 최고의 왕이 되고 싶어서..."

민호는 어설프게 대답을 했지만 디제이의 호응은 좋았다.

"그렇군요. 참 좋은 필명인데요. 이제는 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책 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소설이고요. 제목은 "그래서 사랑하나? 그래도 사랑한다!"입니다. 음 레트로 감성 가득한 성장 로맨스 소설입니다. 90년대 추억과 사랑을 소환하게 하는 가슴 시린 사랑 소설입니다."

"우와~ 안 읽었지만 왠지 그러지는데요."

"고맙습니다, "

"그럼 이번 소설이 데뷔작이신 거죠?"

"소설은 데뷔작이죠. 그전에 에세이집을 출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작가님의 90년대 추억과 사랑은 어땠나요?"

민호는 망설였다.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었다.

"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잠깐 생각해 보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미소가 지어진다. 멋진 답인 것 같습니다. 저도 잠시 생각해 보니 미소가 지어져 지는데요. 그럼 책 속의 사랑이야기는 아마도 우리들의 사랑이야기 같겠습니다."

"네. 그래서 몇몇 독자들에게 자전적 소설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목이 특이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나? 그래도 사랑한다!" 무슨 의미인가요?"

"제목 그대로입니다. 무슨 다른 의미를 두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책 마지막 페이지에 작가의 말에도 남겨놨는데요. 제가 제목을 '그래서 사랑하나? 그래도 사랑한다!'라고 정한 이유는 우리가 살다 보면 반드시 누군가와 인연의 끈에 매듭이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웃으며 "그래서 사랑하나?"라고 물으면 "그래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인연의 끈은 매듭 없이 끝까지 서로를 바라보며 잡고 있을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인연은 없습니다. 지금 라디오를 듣고 계시는 청취자분들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표현하세요. "그래서 사랑하나? 그래도 사랑한다!"라고요.

"와우~ 작가님 혹시 대본이 있습니까? 말씀을 너무 잘하시는데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안 읽어볼 수가 없네요. 꼭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은 지금 "그래서 사랑하나?"입니까 "그래도 사랑한다!"입니까?

민호는 자신이 쓴 책 제목의 질문에서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디제이는 그런 민호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마도 둘 다 이겠죠?"라고 물었다. 민호는 얼떨결에 "네"하고 넘겼다.

"이제 별밤책방이라는 특이한 곳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시죠? 맥주를 파는 책방이라고 들었는데요?"

"네. 맥주를 파는 책방, 책을 파는 호프집이죠."

"하하 그게 가능한가요? 책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게?"

"네.. 하하 가능합니다. 책이 잘 안 읽힐 때는 맥주만 마시면 되죠."

"그렇군요. 별밤책방 이름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대형 책방들도 폐업을 하는 곳이 종종 보이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책방을 오픈하실 생각을 했는지요?"

"사실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더라고요. 평생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해보고 후회하자.'라고 생각하고 했습니다."

"멋집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습니까? 설마 후회하시는 건 아니죠?"

"하하하 아닙니다.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책방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이 질문에 조용히 이어폰을 검지로 누르며 라디오를 듣고 있던 모두가 민호를 쳐다봤다. 사실 민호의 가족이야기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민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반대보다는 걱정이었죠."

"작가님이 생각하는 별밤책방은 어떤 곳입니까?"

"음~ 사실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어요.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힐링이네요. 힐링을 느끼는 곳."

""힐링을 느끼는 곳" 좋네요. 그럼 작가님이 앞으로 바라는 별밤책방은 어떤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혹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곳" 이렇게 답하시면 안 됩니다."

"하하 아... 네. 저는 별밤책방이 1호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는 증명될 수 없지만 책으로 치유할 수 있는 곳. 그렇니깐 '종이약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종이약국 1호점 별밤책방."

"작가님 너무 멋지신 거 아닙니까? 저도 가서 약 좀 받아야겠어요."

"네.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길게 하셔도 됩니다. 책 제목도 한번 더 말씀해 주시고요."

"네. 소설 "그래서 사랑하나? 그래도 사랑한다!"입니다. 많이 사랑해 주시고요. 양산시 동면에 있는 별밤책방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별밤책방에서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듣고 있는 김 씨 할아버지, 우리 우진이, 항상 든든한 봉우 그리고 미스코리아가 될 뻔하신 연우 씨,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강한 미순 씨 그 옆에 이쁜 쌍둥이 가을이, 겨울이 마지막으로 음 당황스럽지만 인터뷰를 하게 만든 당당하고 멋진 제아 씨 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옆에 든든한 팬들이 많네요."

"아~잠깐만요. 별밤책방을 지키고 있는 천이에게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천이는 누구죠?"

"네 제 친구입니다. 강아지입니다."

"하하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양산에 별밤지기 작가 꾸니왕님과 인터뷰였습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0화3-2. 힐링을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