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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인터뷰는 생각보다 여파가 컸다. 별밤책방의 시계는 3일을 쉬지 않고 빨리 돌아가는 것 같았다.
별밤책방의 3일 매출은 한 달 매출을 넘었다. 민호의 소설책도 3일 동안 판매 부수가 출간 이후 지금까지 판매 부수보다 많았다. 모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제아와 봉우의 어깨는 한층 더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별밤책방의 시계가 거꾸로 가기 시작하였다.
라디오 인터뷰 4일째 되는 날부터 손님들의 발길은 끊어졌다. 민호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다시 돌아온 것뿐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별밤책방에 대해 들리지 말아야 할 것과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들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별밤책방에 판매되는 책들은 모두 오래된 책들이다."
"신간은 찾기 힘들다."
"그 흔한 베스트셀러도 없다."
"여태껏 안 팔린 책들을 파는 것 같다."
"커피맛이 영 별로다."
"주인의 감성이 늙었다."
"안주 종류가 너무 없다."
"돈이 아깝다."
별밤책방 대한 말과 글은 모두를 힘들게 하였다. 가을이와 겨울이는 일일이 댓글을 찾아 반대 댓글을 달기도 했다. 제아와 봉우의 어깨는 한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민호는 제아와 봉우의 어깨를 펴주기 바빴다.
그렇게 별밤책방의 시계는 서서히 이전대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사람들은 이제 민호의 소설책을 입에 올리고 손가락을 바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책이가?"
"내가 써도 이거보다 잘 쓰겠다."
"소설 맞나?"
"판타지 소설이야?"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
"내가 이걸 돈 주고 샀다 말인가?"
"종이가 아깝다."
"니도 작가냐?"
민호는 헛웃음을 지으며 "괜찮다. 나는 괜찮다."를 수십 번 말했다. 그리고 이미 민호는 자신의 소설책이 족쇄가 되어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채운적이 있었다. 민호는 쉽게 족쇄를 풀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족쇄는 생각보다 굵고 강력했다.
민호는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어차피 혹평은 예상했어. 호평이 있으면 혹평이 있는 거야.'
'인정할 거는 인정하자.'
'괜찮아.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
민호는 애썼다. 하지만 족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럴 거라 예상을 하고 박스 속에 꼭꼭 숨겨 놓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호는 500cc 생맥주 한잔을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어제보다 더욱 거센 한파 바람이 민호의 눈가에 살짝에 맺힌 눈물마저 얼게 만드는 것 같았다.
민호를 보고 천이는 앞다리를 쭈욱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고 나왔다.
"천아~ 춥다. 들어가."
천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민호의 발밑으로 들어와 몸을 기댔다. 민호는 천이를 안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천이는 민호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김사장. 안 춥나?"
김 씨 영감이 언제 왔는지 민호옆에 앉았다.
"김사장아~ 힘들면 힘들다고 해라. 울고 싶으면 울어라. 꾹~ 참고 있는 것처럼 바보스러운 게 없다. 내 김사장 보면 우리 아들 생각이 많이 난다. 김사장하고 많이 닮았는데.. 나이도 동갑이고.."
"아~ 죄송해요. 어르신 저 안 힘들어요. 괜찮습니다."
"안 힘들기는.. 내 연우한테 다 들었다. 그 뭐꼬? 인터넷인가 거기에 문디손들이 쓸데없는 글을 막 써서 올렸다카더만."
"괜찮습니다. 신경 안 써요."
"그런 거 다 샘이나서 그러는 거다. 김사장이 너무 잘나 보여서 그러는 거다. 왜 사람들은 자기들이 갖지 못한 거를 까내리려고 하거든."
"....."
"김사장~ 힘들면 다른 사람에게 기대기도 해. 별밤책방에는 기댈 사람도 많잖아. 다들 기대기를 원할 거야. 그들에게 좀 기대 봐. 그러면 그들의 인생에서 김사장에게 힘을 나눠줄 거야. 나도 너무 힘들었는데 연우한테 기대니깐 연우가 자기의 인생에서 힘을 좀 나눠주더구먼.."
"아...."
"김사장 나는 김사장이 최고야. 알지?"
"네.."
다섯 시가 조금 지났는데 별밤책방의 불빛은 밝아졌다.
연우는 멀리서 보이는 별밤책방의 불빛이 오늘따라 아련하게 보였다. 코트 양쪽 호주머니 깊숙이 넣은 손은 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하지? 민호 씨 불쌍해서 어쩌지? 과연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하지?'
연우는 별밤책방 앞에서 거울을 보며 입술을 아래위로 살짝 깨물고는 양쪽 보조개가 들어가도록 웃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민호는 인사를 하고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봤다.
"연우 씨 오늘 일찍 마쳤나 봐요?"
"네. 일찍 마쳤어요."
"금방 어르신이 우진이 데리고 갔는데."
"네. 알아요."
연우는 코트를 벗고 바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저 오늘도 여기 앉아도 되죠?"
"그럼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연우는 민호의 표정이'괜찮은 척을 하는 건지? 정말 괜찮은지?'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오늘도 종이컵에 맥주 한 병 드릴가요?"
"아니요. 하하 그냥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네."
연우는 민호가 커피를 내리는 뒷모습을 살펴봤다. "사람이 진짜 힘들면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 보인다."늘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어제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어깨가 조금 쳐진 것 같기도 하고, 슬펴 보이기도 하고, ' 연우는 혼자 알 수 없는 상상을 했다.
"커피 나왔습니다."
"고마워요. 나는 별밤책방 커피가 제일 맛있는데...."
"그렇죠.. 가을이도 저기 별다방보다 맛있다고 했어요."
"민호 씨? 괜찮아요? 사실 민호 씨가 걱정이 돼서 왔어요."
"괜찮습니다. 뭐? 혹평도 평이니깐요."
"그래요. 그런데 얼굴은 "아직 나 안 괜찮아!" 이러는 것 같은데요."
"아닌데. 자세히 봐봐요. "나 괜찮아."하고 있잖아요."
"민호 씨~ 제가 전에 우진이 때문에 힘들고 괴로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끊임없이 돌봐야 할 우진이가 있어서 버텼다고 했잖아요. 민호 씨도 끊임없이 돌봐야 할게 생겼네요."
"그렇네요."
"저는 힘들 때 우진이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진이는 엄마를 위로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럴수록 더 위로받고 싶어지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많이 울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참을 울고 있었는데 우진이가 뒤에서 안아주는 거예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안아주더라고요. 그게 얼마나 힘이 되던지.. 요즘도 괜히 우진이 앞에서 위로받고 싶어서 울기도 해요. 하하"
"...."
"민호 씨 우리가 위로해 줄게요."
"..."
"딸~~ 랑" 경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가을이가 미순이의 휠체어를 밀면서 들어왔다. 그 뒤를 봉우가 따라 들어왔다.
"어~ 연우아줌마 있었네요. 할아버지 하고 우진이는요?"
"갔어. 미순 씨~ 어서 와요. 춥죠."
연우는 미순이의 무릎담요를 한층 더 올려줬다. 민호는 '왜? 족쇄를 풀지 못하고 있는지?'초췌한 봉우의 얼굴을 보고 알았다. 민호의 소설책이라는 족쇄가 이번에는 왜 그렇게도 크고 단단한지를 알 것 같았다.
봉우와 제아가 가질 민호에 대한 미안함이 오히려 족쇄를 더욱 단단하게 하였던 것이다. 민호는 이 족쇄가 더 단단해지지 않게 빨리 풀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뽕우~~ 오늘 배달일 안 했지?"
"네~ 어.. 떻게 알.. 았어요?"
"내가 모르겠나? 그러면 오늘 같은 날 좀 일찍 나와서 책 좀 읽고 하지 뭐 했냐?"
"그.. 게.."
민호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다.
"회장님이 책을 안 읽으면 되겠나? 내일모레가 크리스마스인데. 모임책도 정하고 해야지? 안 그래?"
"네.. 오.. 늘.. 중으로 정할게요?"
가을이는 입을 꽉 깨물고 실눈으로 민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일부러 봉우 아저씨가 어색할까 봐 오버하는 거 표 나요."
"아닌데. 오버 안 했는데.. 그리고 가을이 너도 그래. 왜 봉우보고 봉우 아저씨라고 해? 아직 장가도 안 간 총각한테. 안 그래요 미순 씨?"
"봉우 아저씨를 봉우 아저씨라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봉우 오빠? 으흐흐 싫다."
미순은 옆에 있는 가을이의 허벅지를 살짝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