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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힐링을 느껴요

3-6

by 꾸니왕

별밤책방의 시계가 잠시 멈췄다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아는 양손을 가슴에 모은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연아는 아무 말 없이 그런 제아의 등에 손을 가볍게 올려놓고 있었다.

"제아 씨 고개 좀 들어봐요? 무슨 죄 지었어요. 저 괜찮아요."

"언니 고개 좀 들어요."

"그래요. 제아 씨~ 제아 씨 잘못 없어요."

제아는 사람들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금세 또 울었는지 눈가에 눈물자국이 번져서 화장까지 번졌다. 민호는 제아와 눈을 마주치고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자 다들 일단 제가 못난 글을 써서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민호가 일어서 "꾸벅" 90도 인사를 했다. 그러자 제아는 다시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으흐흐 아니에요. 민호 씨 글은 좋아요. 책도 너무 재미있었고요. 근데 괜히 제가 라디오에 글을 올려서.. 으흐.. 미안해요.."

"아.. 니.. 예요. 제아 씨는 잘.. 못 없어요. 제.. 가 글 올려 보자고 했어요. 미안해요. 형.. 님."

"다들 왜 그래요. 나 아무렇지도 않다니깐요. 그리고 그 정도 혹평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호~~ 우리 아저씨 멋진데요. 그렇지 엄마?"

"조용히 좀 해. 촬싹~"

"하하하 왜 그래요 가을이 말이 맞는데요. 음~ 저 진짜 괜찮습니다. 제아 씨하고 봉우 덕분에 우리 매출도 많이 올랐잖아요.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 제대로 한번 하죠. 그리고 모두들 고맙습니다. 별밤책방 식구들의 위로가 정말 힘이 되더라고요. 제아 씨~ 고개 들어요. 봉우도 울지 말고. 하하. 제가 많이 생각해 봤는데요. 제 책에 대해 어느 누가 욕을 해도 상관없어요. 하라면 하라죠. 난 소중히 여길 겁니다. 저는 이 책을 쓸 때가 제일 행복했었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여러분 앞에 저를 있게 만든 책이잖아요."

"우와~~ 역시! 우리 아저씨"

"작가님~ 최고~"

"민호 씨 멋져요."

제아는 고개를 들고 오른손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자~ 봉우야!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어떻게 할 거야?"

봉우는 민호를 쳐다보고는 오른손 손등으로 콧물을 닦았다.


"딸~랑~"경종소리가 낯설게 울려 퍼졌다.

"어. 서.. 오세요, "

봉우는 일어서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낯선 여자 목소리에 모두가 출입문쪽을 쳐다봤다. 민호도 모두의 시선을 따라갔다.

"어? 지은아~"

"오빠~"

"네가 어떻게 여기를...."

지은이는 아무 대답도 안 했다. 그저 책방을 돌아봤다. 책장의 책들이 익숙했다. 방 하나에 셋방살이를 하더니 이렇게 책방에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책들을 보니 짠한 느낌이 들었다. 민호는 지은이 옆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있다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민호는 주문하지도 않은 밀크티를 한잔 들고는 지은이 옆에 다시 섰다.

"지은아~ 여기 앉아. 그리고 밀크티 네가 좋아하잖아."

"...."

"그런데 지은아~ 어떻게 알고 왔어?"

"오빠! 내가 바보야? 왜? 모를 거라 생각했어? '꾸미왕' 내가 10년을 넘게 부르던 애칭인데.... 내가 왜 모를 거라 생각했어?"

"그렇구나. 생각은 했어.. 미안해.. 내가 필명을 바꿨어야 했는데."

"그 말이 아니잖아. 휴~"

지은이는 길게 숨을 내뱉고는 별밤책방의 식구들이 앉아 있는 곳을 쳐다보자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오빠! 괜찮아? 괜찮아서 이러고 있는 거야?"

"이러고 있는 거는 또 무슨 말이야?"

"아니.. 내 말은 안 힘들냐고? 괜찮냐고? 아이씨~ 모르겠다. 그냥 오빠 걱정이 돼서 안 찾아올 수가 없었어."

"지은아~ 미안해... 네까지 힘들게 했구나."

"또? 내 말은 그 말이 아니고. 됐다."

"....."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밀크티가 바닥이다고 알리는 소리에 지은이는 컵을 놓고는 민호에게 좀 더 다가가서 민호를 쳐다봤다.

"오빠~ 안 괜찮네. 눈가가 아직도 촉촉하네."

"아니야. 괜찮아. 괜히 너 봐서 반가워서 그래."

"이혼한 마누라가 반가워? 말 같은 소리를 해라."

"...."

"나 사실 오빠 블로그 오래전부터 봤어, 그리고 책도 샀어."

"...."

"처음에는 오빠가 점점 잘하고 있는 게 싫었어. 왜? 잘하지? 잘하면 안 되는데? 너무 보기 싫었어. 그래도 블로그 글을 읽고 있더라. 그리고 차츰차츰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거야. 어느 순간부터 오빠를 응원하게 되더라고, "

"그랬어. 연락을 하지 그랬어?"

"무슨 연락? 우리 이혼했잖아."

"그건... 그거고..."

"또 저렇게 흐리멍덩하게 답한다. 그러니깐 악플에 당하고 있지."

"악플도 봤어?"

"그럼 보지 안보냐?"

"내가 쓴다고 썼는데 독자들의 눈에는....."

지은이는 안경 사이로 검지를 넣어 눈가 주변을 털어냈다.

"오빠~ 정말 괜찮지?"

"응. 괜찮아..."

"라디오도 들었어. 잘하더라."

민호는 잊고 있었다. 지은이는 항상 라디오를 틀어 놓고 일을 했었다. 차를 타도 99.9 부산방송을 맞춰 놓았다. 지은이가 들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민호는 '꾸니왕'이라는 필명에 대한 거짓 답을 한 것이 생각이 났다.

"미안해.. 차마.. 애칭이다는 말을 못 했어?"

"됐어. 그게 중요해? '종이약국 1호점 별밤책방' 참 좋은 생각이야. 듣고 있는데 오빠가 부럽더라. 나는 점점 작아지고,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왜 그렇게 내가 불안하고 눈물이 나던지....."

"....."

"혹시나 오빠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돼서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미안해.."

"뭐가 자꾸 미안해?"

"...."


"오빠 기억나? 학원 학부모 한 명이 이상한 소문 퍼트려서 원생들 한 명도 안 남고 다 나갔을 때 오빠가 한 말 기억나?"

"...."

"오빠가 그랬잖아 물고기를 잡아서 바닥에 놓으면 그때가 제일 높게 치고 오른다고, 바닥인 것을 알고 바닥을 짚고 힘껏 치고 오른다고, 사람도 마찬가지다고..."

"아~ 맞다. 학원은 잘 되지? 애들 많지?"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 됐어. 나 갈래. 괜찮은 것 같네."

지은이는 카운트 쪽으로 걸어갔다.

"얼마야?"

"무슨?"

"자~ 받아. 그래야 약국에 약을 사놓던가 하지?"

"그래 그러면 40만 원 결제한다."

"맞다. 잠깐만"

지은이는 가방에서 민호 책을 꺼내서 첫 페이지를 넘기고 볼펜을 민호에게 건넸다.

"사인해줘"

민호는 지은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볼펜을 들어 사인을 하다가 멈춰 버렸다. 그만 습관적으로 '사랑하는 지은이에게'를 써버렸다. 민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사인을 끝냈다. '꾸니왕'사인이 아니라'김민호'로 사인을 했다. 지은이는 입술을 다물고 민호를 쳐다봤다.

"오빠~ 혹시 종이약국에서 치료할 약이 없어서 힘들면 언제든지 와. 거기에서 항상 기다릴게."

"... 지은아... 고마워"

"그럼 간다."


크리스마스다. 눈이 올거라는 기상청의 말과 달리 하늘의 햇살은 봄 햇살을 하고 있었다. 연우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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