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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힐링을 느껴요.

3-4

by 꾸니왕

"오늘 이렇게 모인 김에 내가 김사장 라디오 방송 데뷔 기념으로 시원하게 맥주 한 잔씩 쏜다. 봉우야~ 맥주하고 안주 좀 줘봐라."

김 씨 영감은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아마도 우진이가 작년까지 입었던 노스페이스 파카 안주머니에서 군데군데 가죽이 벗겨진 지갑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네~ 오.. 늘은 특별한 안주.. 를 준.. 비해보겠습니다. 가.. 을이하고 겨.. 울이는 나 좀 도와줘."

"아니야. 내가 도와줄게 가을이하고 겨울이는 쉬고 있어."

연우가 일어나서 봉우를 돕겠다고 일어나자 봉우는 쭈뻣쭈뻣 거리면서 괜한 머리를 긁으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제아는 연신 민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양손 엄지를 추켜올렸다.

"여보세요. 라디오 들었나? 내 이름 들었어? 왜? 마지막에 이쁜 쌍둥이 가을이, 겨울이 그랬잖아."

가을이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옆에 딱 달라붙여 있는 우진이의 앞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고, 겨울이는 유튜브를 찾아 다시 듣기를 틀어 미순과 한쪽이 이어폰을 꽂고 다시 듣고 있었다.

민호는 긴장이 풀리면서 입과 눈 주변의 근육들이 굳었는지 표정이 어색해지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민호는 조용히 테라스로 나갔다. 천이도 라디오를 들었는지 꼬리를 빠르게 흔들며 민호에게 몸을 던졌다. 김 씨 영감은 언제 따라 나왔는지 민호의 손끝을 살짝 잡아주었다. 민호의 긴장도 그 손끝에서 전해오는 따뜻함에 녹아내려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꼬리는 내려왔다.


"자! 다들 앉아주세요. 곧 스페셜 안주가 나옵니다."

연우의 한마디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이야~ 이게 뭐야?"

"네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한봉우셰프님의 보조 이연우입니다. 우리의 셰프님께서 만드신 오늘의 안주는 오꼬노미야끼와 새우튀김, 그리고 나막스, 마지막으로 특별하게 소주를 즐기시는 아버지를 위해 타코고추냉이를 준비했습니다. 다들 박수~"

연우의 밝은 표정에 김 씨 영감은 괜히 눈가 주변을 검지로 '툭'털어냈다. 그 모습을 본 옆에 앉은 민호가 김 씨 영감의 손끝을 살며시 잡아줬다.

"자자~ 별밤책방을 위하여~"

"할아버지는 맨날 별밤책방을 위하여~래. 다른 멘트 좀 해요."

"그럼 가을이가 해봐라 할아비가 지켜보마."

가을이는 자신 있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다들 잔을 들어주시고요, 우진아 우진이도 들어. 음. 음. "우리의 꾸스타 님을 위하여~""

"하하하~~ 맞다 스타 스타."

"스타님 한잔하시죠."

"네. 네. 감사합니다. 다들 드시지요."

테이블 위에는 맥주병이 조금씩 늘어나고 옆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돌림노래처럼 들렸다. 제아의 한마디에 모두가 제아를 쳐다봤다.

"우리 이렇게 모였으니, 다음 모임은 다음 주가 크리스마스인데 그날로 하는 게 어때요? 회장님! 괜찮죠."

"네... 저.. 는 아무 때나."

봉우가 얼버무리면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을 했다.

"크리스마스날 좋죠? 민호 씨는 어때요?"

"저.. 는?"

민호는 대답을 회피하기도 전에 김 씨 영감이 소주를 한잔 마시고는 잔을 놓고 말했다,

"크리스마스날에는 우리는 안돼. 그날은.."

김 씨 영감이 마지막말을 흘렸다.

미순은 김 씨 영감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이야기했다.

"우리도 그날은 안될 것 같아요."

"다들 교회 다니시는구나."

제아의 한 마디에 연우와 미순은 살짝 미소를 보였다.

"제아언니~ 우리 교회 안 가고 크리스마스 때 절에 가요."

"가을아~ 크리스마스인데 절에 왜 가?"

제아는 정말 궁금했다. 가을이는 고개를 저었다. 겨울이는 가을이에게 그만 이야기하라고 가을이를 째려봤다.

"휴~ 뭐 어때? 무슨 비밀이다고, 그리고 제아언니는 알아도 돼."

그 한마디가 연우와 미순은 모두가 가족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언니~ 잘 들어요? 크리스마스가 우리 아빠가 돌아가신 날이에요, 엄마도 그때 다쳤고, 우리는 아빠를 통도사 옆에 작은 절에 모셨어요. 우리 가족은 10년째 크리스마스 때 절에 가요."

김 씨 영감하고 연우의 눈이 커졌다. 김 씨 영감은 자리에 일어나서 테라스로 나갔다. 뒤를 따라 나가려는 민호의 손을 연우가 잡았다. 연우는 맥주를 한잔 마시고는 가을이의 말을 이어갔다.

"어제 아버지가 말씀한 삶의 우연이 또 겹치네요. 저희도 크리스마스 때 10년째 절에 가요. 제가 사랑했던 사람과 어머니를 절에 모셨어요?"

"설마? 광천사?"

"네! 어떻게 알았어요?"

"그랬군요. 우진이를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통 기억이 안 났는데 기억이 나네요. 절에서 스님 손잡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것을 본 것 같네요."

"신기하네요. 어떻게?"

연우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김 씨 영감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절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10년 만에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수도 있겠어요. 그리고 겨울이 좋아질 것 같기도 해요."

미순은 연우의 빈 잔에 맥주를 부어주었다. 가을이는 우진이 손을 잡고 김 씨 영감을 데리려 나갔다. 김 씨 영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이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 왔으니깐 아저씨! 우리 건배해요."

"그래 그럴까? 다들 건배하시죠. 건배."

제아는 맥주를 반쯤 마시고는 옆에 앉은 봉우에게 귓속말을 했다. 봉우는 제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다들 크리스마스 때 절에 가신다고 하니깐요. 저와 봉우 씨도 절에 가기로 했어요."

"네?"

"다 같이 계시는 절에 갔다가 통도사도 갔다 오죠. 근처에서 산채 비빔밥도 먹고요. 민호 씨 어때요? 민호 씨만 가면 돼요?"

"저야 당연히 가면 좋죠."

"그럼 쾅쾅쾅~ 우리 다음 모임은 크리스마스에 보는 겁니다. 그리고 다 같이 절에 가는 겁니다."

모두가 많이 웃었다.

맥주의 안주가 따로 필요 없었다. 안줏거리는 웃음거리로 대신했다. 웃음거리는 서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제아의 천이가 똥을 쌌는지도 모르고 입고 나간 청바지에 대한 이야기, 너무 피곤해서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서 눈감고 고개 숙이고 잠을 잤다는 봉우의 이야기, 연우는 마트에서 무빙워크 위에서 뛰어내려 가다가 넘어져 치마가 얼굴을 덮었다는 이야기, 우리의 안주는 푸짐했다.

"저 이렇게 손뼉까지 치면서 웃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요."

"저도 그래요."

연우와 미순은 잔을 주고 받으면서 손을 잡는 모습을 힐끔 쳐다보는 민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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