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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는 분주함 속에서도 자신의 미소가 거울 속에 살짝 비추는것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다른 옷 입어요. 왜 자꾸 우진이 옷을 입어요?"
"우진아 양말! 양말!"
연우도 검은 코트를 입었다가 편한 복장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때 아침의 모습 같아서 살짝 철민이와 어머니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연우는 화장대 서랍에서 사진 한 장을 챙겼다. 며칠 전 별밤책방에서 찍은 단체 사진이다. 몇 번을 봤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갑시다. 우진아 가자."
김 씨 영감은 뒷짐을 지고 우진이의 노스페이스 파카를 못 입게 한 불만을 토하듯 투벅투벅 걸어 나갔다. 연우는 제아의 도착 문자 보고는 서둘렸다. 별밤책방 앞에 검고 묵직한 suv한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검고 묵직한 차에서 아담하고 귀여운 제아가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오늘 코트가 멋진데요? 10살은 어려 보이는데요."
"그래~ 작년에 연우가 사준 거야. 괜찮제."
김 씨 영감은 우진이를 먼저 태우고는 코트를 살짝 들고는 뒤자석에 올라탔다.
"제아 씨~ 고마워. 내 차로 가도 되는데."
"아니에요. 저 지금 너무 설레요. 크리스마스날에 절에 가는 게..... 아~ 죄송해요.. 제가.."
"괜찮아요. 제아 씨. 저도 설레요. 아마 10년 만에 처음이에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같이 갈 수 있다는 게 아마 어머니하고 철민이도 좋아할 겁니다. 그렇죠? 아버지~"
"그려~ 그럴 기다. 그놈아가 얼마나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거 좋아했노?"
제아는 연우에게는 커피를 김 씨 영감과 우진이에게는 베지밀B를 손에 쥐어줬다.
"자~ 이제 출발합니다. 우진아~ 출발한다." "출발~~ 출발~."우진이는 안전벨트를 맨 채 통통 튀며 "출발"을 외쳤다.
"그런데 이렇게 큰 차 운전하면 겁 안 나요?"
"에이~괜찮아요. 저 운전 잘해요. 살면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운전이었어요. 차는 내가 움직이는 대로 가잖아요.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그래서 제 취미가 차 몰고 그냥 한 시간 정도 운전하고 오는 거였어요. 드라이브 즐기는 게 아니고 그냥 운전만 즐기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 전 재산 탈탈 털어서 이 차를 뽑았어요."
연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조수석에서 바라본 제아의 표정은 제아 말대로 너무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엄마~ 이 옷은 너무 튀지?"
"애는 아무거나 입어. 겨울아~ 사진 챙겨라."
"야! 오가을 무슨 산타냐?"
"언니한테 "야"가 뭐고 너는 무슨 루돌프냐 옷이 그게 뭐고?"
미순은 빨간 코트를 입은 가을이를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자기도 깜짝 놀라서 다시 미소를 지었다.
"엄마! 봄이 언니하고 여름이 언니는 언제 온데?"
"요번에는 못 온다고 연락 왔어. 설날에 들어온다고 하더라."
"아쉽다. 이번에 오면 별밤책방 식구들하고 같이 보내면 언니들도 좋아할 건데. 그치?"
"어쩔 수 없지 비행기표가 없다고 하니깐. 그리고 바쁜데 왔다가 바로 또 가야 하니깐 불편하지."
봄과 여름은 호주에 있다. 봄이 먼저 외국기업에 입사하여 정착을 하였고, 여름은 작년에 공부하고 싶다고 봄이에게 갔다.
"가자. 밑에 작가님 기다릴 거야."
미순은 가을이가 사준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는 무릎담요를 덮었다.
가을이는 미순이의 오른쪽, 겨울이는 미순이의 왼쪽 휠체어 손잡이를 각각 잡고 아파트 입구에 나오니 민호와 봉우가 굳이 안 흔들어도 될 양손을 크게 흔들었다.
"어서 오세요. 미순 씨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저씨~ 또 오버하신다. 봉우 아저씨는 스님은 같아요, 그레이색으로 뺐네요. 하하하"
가을이는 뒷좌석 문을 잡고 있는 민호를 밀치고는 미순이가 타기 쉽게 휠체어를 옆으로 붙였다. 겨울이는 반대쪽으로 가서 뒷좌석에 타서 미순이를 부축했다. 자연스럽게 다시 겨울이는 미순이의 왼쪽에 가을이는 미순이의 오른쪽에 앉았다.
"아저씨~ 휠체어 부탁해요."
"넵."
대답은 민호가 하고 봉우가 휠체어를 접고 들어서 트렁크에 실었다.
"자! 다들 출발합니다. 안전 벨트하시고~~ 갑니다."
"근데요~ 아저씨~ 회복력이 좋은 거예요? 아니면 일부러 오버하는 거예요?"
"누구? 나?"
"네 운전하시는 김민호 아저씨! 아니지 꾸니왕 작가님!"
"아~ 나~ 왜? 나한테 무슨 일 있었어? 봉우야 무슨 일 있었냐? 하하하"
가을이는 입을 다물고 그냥 창밖을 보다가 창문에 입김을 불어 '꾸니왕 짱!'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연우 씨 가족들은 출발했어요?"
"네.... 30분 전에 출..발한다고.. 연...락 왔어요. 그리고 이거 드셔..요?"
봉우는 검은 봉지 속에서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씩 돌렸다.
겨울이는 봉우에게 받은 캔커피 하나를 양손으로 감쌌다.
"우와~ 따뜻해요, 봉우아저씨 캔커피 오랜만에 마셔봐요. 맨날 아아만 마셨는데... 고맙습니다."
별밤책방에서 40분 정도 이동하니깐 '광천사'라는 작은 팻말이 보였다. 팻말 따라 200M를 더 가니 팻말에 비해 상당히 큰 절이 나왔다.
"절이 크네요."
"그치 크지? 부산, 양산사람들 죽으면 이 절로 많이 와~"
김 씨 영감은 씁쓸한 표정을 했다. 연우는 우진이의 점퍼 자크를 목까지 올려주고, 김 씨 영감의 코트 단추를 잠갔다.
제아의 눈빛은 호기심이 가득 찬 어린아이의 눈빛으로 변했다. 입술은 꽉 다물고 침착한 척을 했으나 어린아이의 눈빛으로 이리저리 쳐다보는 모습이 조금은 들떠 보였다. 사실 제아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경주 불국사를 간 이후 절이라는 곳을 처음 와봤다. 그렇다고 절실한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단지 엄마가 가라고 하지 않아서 안 갔던 것뿐이었다. 제아는 우진이의 손을 잡고 연우의 꽁무니만 따라갔다.
엄마와 아들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 유골함 앞에 섰다.
김 씨 영감은 세월에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쭈글 한 오른손으로 유골함이 보이도록 설치한 투명 유리를 쓰다듬었다.
"아들아! 너그 엄마하고 잘 있제? 여기는 걱정하지 마라."
연우는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유리안치단을 좀 열어달라고 했다.
김 씨 영감은 콧물을 길게 삼켰다.
"내 내려가 있을 구마. 보고 내리오너라."
김 씨 영감의 어깨가 훌쩍거렸다.
'광천사' 팻말이 보였다.
주차장에는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제아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넓은 주차장에 제아차 한 대뿐이었다. 크리스마스날에 절의 주차장 모습다웠다. 민호는 제아 차 옆에 주차를 했다.
봉우는 주차와 동시에 내려서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뺐다.
가을이와 겨울이는 탈때와 반대로 가을이가 먼저 내리고 안에서 겨울이가 부축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위치로 가서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겨울아~ 관리실에 가서 유리 안치단 좀 열어 달라고 해."
겨울이는 관리실로 뛰어갔다.
3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김 씨 영감이 내렸다.
"어~ 어르신."
"그래 왔어. 올라가 봐~ 내는 여기 있을게."
민호는 납골당이 익숙했다. 민호 아버지 어머니도 경주에 있는 작은 절 납골당에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틀에 한 번은 찾아봤다.
"여기는 납골당이 크네요?'
"네~ 큰 편이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작가님 고마워요. 같이 와줘서. 봉우 씨도 고마워요."
연우와 미순은 같은 사진을 유골함 앞에 놓았다.
두 사람의 눈물도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눈물을 닦고 서로의 손을 잡고 살짝 보이는 미소마저도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가오는 설날에 오겠다."라고 같은 말을 하고 나왔다.
"저 이제 큰 차 탈래요. 엄마! 큰 차 타자."
가을이의 "큰 차 타자."는 말에 미순도 조용히 제아 차에 올라탔다. 큰 차에 올라타고 얼마 가지 않아 통도사에 도착한 것이 가을이는 아쉬운 듯했다.
"와~ 눈이다."
"진짜네. 눈이 오네."
"몇 년 만에 기상청도 일을 하기는 하네요."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네~~ 다들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민호가 크게 말했다. 가을이는 달려와서 민호 팔짱을 끼며 "오버하지 마세요."하고 도망을 갔다.
"그런데 아저씨~ 눈이 오는데 포근해요."
겨울이가 민호에게 물었다.
"그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지?"
"'에너지 보존의 법칙' 그게 뭔데요?"
"하하 그게..."
조용히 미순이의 휠체어를 밀고 오던 연우가 웃으며 말했다.
"쉽게 설명해 줘요. 하하. 겨울아 그냥 음~ 공기 중에 있던 물이 바로 얼면서 눈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열이 조금 나와. 그 열 때문에 주변이 살짝 따뜻해지는 거지."
"우와 아줌마~"
"하하 우리 연우가 똑똑해. 부산에서 제일 좋은 대학 나왔어."
봄, 여름, 가을, 겨울 할거 없이 주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던 통도사가 크리스마스날이라 조용했다.
우리는 겨울이라 메밀꽃밭은 볼 수 없으나 극락암으로 가기로 했다.
민호는 눈이 내려 날씨가 포근해서 그런지 마음이 포근해졌다, 아침까지는 속으로 외치던 '나는 괜찮다.'를 외치지 않아도 되었다.
극락암에 도착하여 민호는 하늘을 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봉우는 겨울이 와 가을이 손을 꼭 잡고 있는 우진이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다. 제아는 혼자 이렇게 저렇게 셀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우는 미순이의 휠체어를 잡고 어딘가 가고 있었다.
민호 옆에서 김 씨 영감이 민호를 애처롭게 쳐다봤다.
"아직 안 괜찮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게 쉽게 괜찮아지겠나? 처음 겪는 일인데.."
"네.. 다 떨쳐 냈다 싶으면 다시 그런 글들을 보게 되고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그래요."
"그렇지. 사람인데.. 당연히 그렇지."
"...."
"김사장. 혹시 조용필이 알아?"
"가수 조용필 씨요? 조용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 있어요?"
"그렇지 다 알겠지? 근데 조용필이가 여기 통도사 극락암에 왔던 이야기도 알아?"
"그래요? 처음 들었는데요? 왜요?"
"그게 나도 어디서 들었는데 들어볼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