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겨울 밤하늘의 별들은 하나같이 빛을 내고 있었다. 어쩌면 별밤책방은 겨울이 더 어울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민호는 테라스에 앉아 길 건너 양산천 위로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네 개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고 가운데 세 개의 별들이 나란히 빛났다. 민호는 저 별자리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래시계자리인가? 아닌데 진짜 쉬운 이름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형님~ 뭘.. 그렇게 고.. 민 합니까?"
"정리 다했냐? 나중에 같이 하자니깐. 꼭 말을 안 들어요."
"정.. 리할 게 몇 개 없..었어요. 근데 뭘 그렇게 보면서 고민해요?"
"아니? 저기 저 별자리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봉우는 민호가 가리키는 손끝을 보고 민호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진짜 몰라.. 서 묻..는겁니까? 나를 테..스트 하는 겁니까? 하하."
"모르는 게 아니고 기억이 안 난다고~"
"초코파.. 이 별자리 아닙니까?"
"아~ 오리온!! 그래!! 뭐? 초코파이? 이 놈 봐라."
민호와 봉우는 나란히 테라스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겨울 밤하늘에 펼쳐진 오리온 별자리를 보고 있었다.
"봉우야. 너는 별 보면서 소원 같은 거 빌어봤니?"
"네? 소.. 원은 보통 달보고 비.. 는 거 아니에요."
"하하 나는 별 보고 빈다. 왜! 그러면 안 되나? 하하. 그래서 달보고 무슨 소원 빌어봤어."
"안 빌어요. 초.. 등학교 때 빌어 보.. 고 빌어본 적이 없어.. 요."
"왜?"
"빌.. 면 뭐해요. 한 번도 안 들어주는.. 데."
"그럼 초등학교 때는 뭐 빌었는데?"
"기.. 억 안 나요. 형님은 뭐 빌었는데요?"
"나도 안 빌어... 나는 그냥 별 보는 것을 좋아해. 어린 왕자처럼 살고 싶었어."
"어.. 린왕자요? 형님 지금 그렇게 사..시는것 같은데요."
"그래.. 그런데 봉우야. 오늘 보니깐 잘하더라. 진행도 잘하고, 책 설명도 잘하고, 아무튼 멋졌다."
"형님! 죄.. 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이상.. 한 사람들.. 의 입에 오르게 해서.."
"또 그 이야기냐?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이라니 독자들한테.. 봉우야. 나 괜찮아. 이제 정말 괜찮아. 이번 기회에 내 속에 있는 부엉이를 찾아야겠어."
"부엉이요?"
"그래. 부엉이 "못 찾겠다. 부엉이. 부엉이." 하하"
연우는 집에 돌아와 화장대 위에 별밤책방에서 구입한 오늘의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올려놓고는 책상에 앉았다. 오는 길에 들린 편의점에서 구입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펼쳤다.
카드를 들고는 애처롭게 쳐다봤다가 내려놓고는 돌아섰다가 다시 앉았다.
연우는 펜을 들어 쓰기 시작했다.
"to 철민
안녕 철민아~
나 연우야.
메리크리스마스야.
우리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
그리고 중학교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고....
ps 니도 꼭 나한테 카드 줘야 해."
연우는 13살의 연우가 13살의 철민이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썼다. 연우는 무덤덤하게 눈물을 닦았다.
"미안해. 철민아. 그리고 고마워"
연우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일기장 사이에 넣고는 김 씨 영감을 찾았다.
김 씨 영감은 마당 한 켠에 놓인 오래된 나무의자에 앉아서 겨울 밤하늘의 오리온자리의 별모양을 손으로 그리고 있었다.
"아버지 안 추우세요."
"괜찮다."
연우는 김 씨 영감의 뒤에서 의자를 잡고 김 씨 영감이 그리는 밤하늘의 별을 따라 그렸다.
"어! 오리온자리네요."
"그래. 오리온자리.. 참 이쁘지."
"철민이가 별자리 많이 알았는데, 어릴 적에 둘이서 옥상에 올라가서 평상에 누워 별 보면서 많이 가르쳐 줬는데..."
"그래. 우리 아들이 어릴 때부터 별에 관심이 많았지.. 그래서 일찍 별이 됐는지도 모르지."
"....."
"오늘 보니깐 잘 있더라."
"아버지 미안해요. 오늘 같은 날 제가 너무 행복해 보였죠. 웃으면서도 이러도 되나? 생각을 했는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어요. 미안해요."
"뭐가? 나도 좋더라. 연우야~ 니는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너그 엄니하고 아부지하고도 내가 나중에 볼 낯이 있는 기라."
"무슨 그런 말을 해요. 아버지야말로 이제 좀 편하게 지내야죠."
"연우야~ 나는 말이제. 니가 이제 앞으로는 크리스마스에도 웃고 겨울 내내 지금처럼 웃고, 아니지 일 년 내내 십 년 내내 백 년 만 년 웃었으면 좋겠다.
"네. 아버지 그러니깐 건강하게 웃으면서 우리 살아요."
"그래~"
"아버지. 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저 퇴사할까 봐요."
"와? 누가 회사에서 괴롭히나?"
"아니에요. 누가 괴롭혀요."
"그러면 와?"
"저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확실하게 하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없는데요. 생각만 해도 자꾸 마음 한쪽 켠에서 뭔가가 꿈틀거려요."
"그래? 그러면 관두야지. 잘 생각했다. 빨리 관두뿌라. 아직 아버지 돈 많다."
"아버지도 참.. 뭐 할 건데 안 물어보세요? 관심이 없는 거예요?"
"연우야~ 인생은 말이제. 그리 길지 않다. 오늘 이렇게 있다가 죽어뿌도 이상할 게 없는 게 인생인기라. 그래서 무언가가 하고 싶고, 시작할 용기가 나면 해야지. 그게 지금이면 지금 시작해야 한데이."
"...."
"고민할 필요 없다. 내일 당장 관두뿌라."
"하하하. 네.. 아버지 오랜만에 밖에서 우리 오뎅탕에 소주 한 잔 할까요."
"좋지~ 저기~난로 선 좀 꼽아야겠네."
김 씨 영감은 의자만큼 오래된 전기난로를 끄집어내었다.
미순은 힘겹게 침대에 걸터앉아 스탠드 불빛에 환하게 웃고 있는 지석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 이렇게 요즘 행복해도 돼?" 미순은 한 마디 하고는 책을 펼쳤다.
민호가 추천한 뮈리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책이다.
"엄마~"
첫 장을 펼치고 차례를 보는데 가을이가 미순의 침대로 파고들었다. 가을이는 지석의 베개를 안고는 코를 갖다 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아빠의 향기~ 카아~ 좋다."
"애가 왜 이래?"
"엄마의 향기도 좀 맡아볼까?"
가을이는 미순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왜 이럴까? 너 무슨 할 말 있어?"
"아니? 엄마랑 요즘 책방도 가고 요즘은 너무 행복해서. 나 너무 행복해. 엄마 웃는 거만 봐도 행복해."
"너 그러면 아빠가 뭐라고 한다."
"아빠도 아마 행복해할 거야. 오늘 정말 기분 좋았어."
"그래.. 그런데 겨울이는 뭐 해? 자니?"
"아니. 자기 방에 문 잠그고 누구랑 통화하는지 웃고 난리야. 연애하나 봐?"
"진짜? 누구랑?"
"몰라. 연애인지? 또 짝사랑인지? 우리 엄마도 연애해야 하는데."
"애가 뭐라니?"
"엄마 꾸작가 좋아하잖아. 하하 아저씨 괜찮기는 하지. 하하.. 그런데 안 되겠더라. 그때 찾아온 아줌마 보니깐 너무 이쁘고 날씬하던데. 심지어 "오빠~"라고 하잖아."
"얘가 정말 오늘 왜 이래. 술 취했어. 하하"
"사실은 나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
"또 왜? 갑자기 심각할까? 말해봐."
"나 고민 많이 했는데. 나 결정했어."
"그러니깐 뭘?"
"나 다시 해 볼 거야."
"그래.. 잘 생각했어. 엄마가 적극 밀어줄게.. 이리 와 우리 딸 좀 안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