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우리 이제 BEER를 사랑해야죠. 짝짝짝"
"네네"
"짝짝짝"
"좋지."
"맥주 맥주 엄마 맥주 좋아 좋아."
9명이 각자 이야기했지만 "좋다."는 표현으로 하나가 되었다.
"자 봉우는 안주 준비 좀 하고."
제아는 봉우를 도와주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제아의 핸드폰이 수줍게 진동이 울렸다. 제아는 발신자 전화번호를 보고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받았다.
"여보세요. 네 네 맞아요. 제가 이제아입니다."
제아의 격양된 목소리에 모두가 일어서려다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네.. 정말요.. 우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네 내일요?"
제아는 한 손은 전화기를 들고 한 손은 자신의 허벅지를 때리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모두가 제아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제아는 가을이에게 메모하는 어설픈 제스처를 했다. 가을은 제아의 제스처를 알아차리고 메모지랑 볼펜을 제아 앞에 두었다. 제아는 적기 시작했다. 제아 옆으로 연우와 미순이가 머리를 맞대고 제아의 메모를 봤다.
"네~ 그럼 제가 전달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는 문자로 보내 드릴게요. 네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아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우진이처럼 배꼽인사를 했다. 제아가 전화를 끊고는 봉우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봉우 씨 됐어요. 인터뷰한대요."
"네? 정말로 진짜요?"
제아는 한 명 한 명 눈을 다 맞추고는 "음. 음."헛기침을 굵게 했다.
"무슨 전화야! 무슨 인터뷰? 뜸 들이지 말고 말혀봐."
김 씨 영감의 재촉에 제아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그게.. 무슨 전화라면요? 며칠 전 저랑 봉우 씨가 케네네 라디오 노래하나 얘기 둘이라는 프로에 사연을 보냈어요."
"케니니는 뭐고 노래하고 애가 둘?"
"할아버지. 그게 아니고 부산경남 방송 라디오 이름이고요 프로 이름이에요."
가을이가 김 씨 영감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김 씨 영감은 듣고도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사연을 보냈어요?"
연우는 턱을 받친 팔꿈치를 제아 가까이 다가가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였다.
"그게. 별밤책방이야기하고 별밤책방지기 민호 씨의 책이야기를 했어요."
"네?... 켁. 켁."
민호는 놀라서 목소리가 나오다가 사래가 걸려 컥컥 걸렸다. 옆에 앉은 미순은 민호의 등을 두드렸다.
"작가님에게는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이해해 줘요. 내일 생방송으로 30분간 전화통화 인터뷰한대요."
"우와!! 30분씩이나."
가을이는 제아를 한번 쳐다보고 민호를 한번 쳐다봤다. 겨울은 핸드폰으로 그 프로의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을 미순이에게 보여 줬다. 미순은 겨울이의 핸드폰을 건네받고는 한참을 보고 민호에게 건넸다.
"별밤책방이 너무 좋은데 어떻게 홍보를 할까? 민호 씨 책이 너무 좋은데 안타까워서 어떻게 할까? 문득 라디오 듣다가 생각이 나서 사연을 보냈어요. 그런데 작가가 작가님이랑 내일 인터뷰를 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전화가 온 거예요."
"이야~ 잘했네. 잘했어."
김 씨 영감이 손뼉을 치자 우진이도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손뼉을 쳤다.
"잘됐어요."
"아저씨 이제 스타 되는 거예요."
"스타 스타 우진이 스타 좋다. 좋다."
"민호 씨 미리 사인해 주세요."
모두가 축하 분위기인데 민호 혼자 심각해줬다.
"봉우! 빨리 안주 만들어 와~ 맥주도 주고~"
"넵!"
김 씨 영감은 봉우를 재촉했고 봉우는 거수경례까지 해가며 재촉을 받았다.
"봉우 아저씨~ 우리가 도와 줄게요."
가을이가 겨울이 손을 잡고 봉우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가을이가 주방을 가자 우진이도 가을이 꽁무니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연우는 미순이 옆에 앉아서 "우리 친구처럼 지내요" 하면서 양손을 잡고 흔들었다. 미순이도 질세라"그래요"하면서 좀 더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제아는 민호옆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서 라디오 프로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김 씨 영감은 천이에게 갔다.
"할아버지 들어오세요. 다 됐어요."
가을이는 문을 열고 김 씨 영감을 불렀다. 완벽하게 타인이 아닌 9명은 다시 긴 테이블에 마주 보며 앉았다.
"김사장~ 뭐가 그렇게 심각해?"
"에이~ 아저씨 왜 이렇게 약한 모습 보여요?"
"민호 씨 잘할 수 있잖아요."
"작가님! 작가님은 충분해요."
민호는 모두의 응원 속에 괜한 어색한 표정을 보이며 "네.. 괜찮습니다. 그까짓 것 해보죠." 큰소리를 쳤다.
"자자~ 다들 한잔씩 받아요~ 우리 우진이는 복숭아 주스 한 잔~"
"우리 건배해요. 별밤책방을 위하여~"
"좋지! 좋지~ 자 다들 건배~"
미순은 맥주 한잔을 마시다 뭔가를 적었다.
"우진이가 13살이죠?"
"네.. 우진이가 13살이죠."
언제 자리를 옮겼는지 미순이 옆에 앉은 연우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대답을 했다.
"그럼 우진이도 뱀띠네요."
"네. 뱀띠죠."
"그래요. 저희도 뱀띠인데요."
뱀띠라는 소리에 가을이가 대답했다.
"어.. 저.. 도 뱀띠인데.."
봉우가 자기를 가리키며 뱀띠를 강조했다.
"여기 완전 뱀사골이네요. 아버지 하고 제아 씨 빼고 다 뱀이네요. 우와 이것도 인연이네요."
연우는 인연이라는 소리에 더 힘을 주고 강조했다. 9명이 모였는데 7명이 뱀띠라고 서로 인연이라고 손을 잡고 흔들었다. 김 씨 영감은 괜히 소외감을 느꼈는지 제아를 잡고 잔을 쳤다.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필연 아닐까요?."
"그러게요."
미순과 연우는 서로 잔을 주고받으면서 조곤조곤 뱀띠로 인한 인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김 씨 영감은 샘이 났는지 미순과 연우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김 씨 영감은 잔을 들고일어났다.
"내가 오래 살아보니깐 삶은 말이야. 잘 들어라. 우리의 삶은 말이제 필연보다는 우연이야. 우연이 만든 우리들의 별밤책방을 위하여~ 건배~"
"건배~~"
"할아버지 멋져요."
"짠~ 별밤책방을 위하여~"
"꾸니왕 작가님을 위하여~"
"짝짝짝"
천이는 민호의 차소리를 듣고 짖는지 민호의 차를 알아보는 건지 엎드려 곤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민호차가 별밤책방 앞 삼거리 근처에 들어서면 짖기 시작했다.
민호는 별밤책방에 도착해서 별밤책방 문을 여는 대신 천이의 목줄을 잡았다. 천이도 이 시간에 목줄을 잡고 산책을 가는 게 어색한지 어리둥절했다. 민호는 천이와 양산천을 걷었다. 오전에 걷는 양산천 풍경은 달랐다.
며칠째 사라지지 않던 검은 먹구름이 아침부터 불었던 거센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없었다. 하늘은 겨울 하늘 답지 않게 파랬다. 양산천도 겨울천 답지 않게 파랬다.
오늘 아침부터 제아와 봉우의 라디오 디제이의 예상 질문지라고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