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해서
결혼이라는 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좀 무시무시한 일이다.
스무 살 쯤부터 제법 자기 의지로 산다 해도,
고작 십 년 남짓 어른 흉내 내본 사람들이 만나
앞으로 쉰 년을 함께 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니까.
결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늘 그 사실이 새삼스러워진다.
결혼하고 나서야 그런 걸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5년을 연애했지만,
어느 날 부모님들이 “이제 결혼해야지” 하셨고,
“그래, 그럼 내년쯤 해볼까” 하고 정해버린 것이
시작이었다.
둘 사이엔 한 번도 불타오른다는 식의 연애가 없었다.
손 한 번 잡지 않고 다니기 일쑤였고,
만나기로 한 날은 늘 정해져 있었다.
갑자기 계획 없이 만나는 일도, 긴 연락도 거의 없었다.
“일어났어?”, “밥은 먹었어?”, “퇴근했어.”, “잘 자.”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저 만나면 편했고, 떨어져 있어도 편했다.
누군가 그런 우리를 보고,
“그렇게 미지근하게 사귀고 어떻게 결혼까지 했어요?"학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그저 편했다.
이러나저러나 편했고, 그거면 충분했다.
성격이 꼭 같은 것도 아니었지만, 성향은 닮아 있었다.
시어머니가 가끔 우리 둘을 가만히 보시고는
“너희는 어쩜 똑 닮았다”라고 하실 정도로.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은,
운이라는 게 크게 작용하는 일인 것 같다.
함께 살고 나서야 알게 되는
상대의 생활습관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이 있으니,
연애할 때 보이는 건 기껏해야
그 사람의 30%쯤 되는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남편도 운이 좋았다.
날이 갈수록 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우리는 꽤 잘 맞는다.
예전에 <인생 후르츠>라는 영화를 보다가,
내가 늘 품고 있던 마음과 똑 닮은 말을 할머니가 하셔서 놀랐다.
“사랑한다고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될 수 있으면 뭐든 하게 해 준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도 그랬다.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작은 배려들 속에서 커다란 마음이 드러나는 것.
그리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을 읽다가 또 내 생각과 닮은 문장을 만났다.
‘상대방에게 정도 이상으로 잔인하지 말 것. 일상에서 따뜻하게 대할 것.’
결혼 후 나는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애썼고,
이제는 습관처럼 몸에 밴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아침에 꼭 안부를 묻는 일이다.
함께 살면서 안부가 무슨 의미일까 싶을 때도 있지만, 하루의 시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잘 잤어? 오늘은 어때?” 하고 물어봐주는 건,
생각보다 꽤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묻는다.
그리고 내가 챙겨줄 수 있는 일이라면
될 수 있는 한 먼저 챙긴다.
‘내가 할 일 남이 해주면 얼마나 편할까’ 싶은 마음이 들면, 내가 먼저 해본다. 정말 사소한 일들.
아침에 내가 먼저 나가면서 남편 신발을 신기 좋게 돌려놓는 일 같은 것. 아침마다 남편의 안경을 반짝하게 닦아 놓는 일 같은 것.
남편은 고맙다는 말을 참 잘하는 사람이다.
물 한 잔을 떠다 줘도 “고마워.”
밥을 다 먹고 나면 “윤선아, 밥 잘 먹었어.”
그럴 때마다 내가 챙긴 일들이 괜히 뿌듯해진다.
그렇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오가면,
뭐든 더 챙겨주고 싶어진다.
결국 결혼 생활은,
서로 고마워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늘 고마워하고, 따뜻하고 상냥하게 대하기.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 거창하지 않은 마음들 속에서 깨닫게 된다.
행복이라는 건, 상대가 나에게 채워주는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으로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내가 먼저 물어주고, 먼저 챙기고,
먼저 웃어주는 그 순간들 속에서 저절로 피어나는 충만함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결혼이란 그런 것 같다.
상대에게 기대지 않아도, 내가 먼저 내민 별거 아닌 마음이 내 하루를 더 환하게 만든다는 것.
서로를 위해 건넨 작은 마음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아도, 이미 그 마음을 내미는 순간, 그것이 나를 가장 풍요롭게 해 준다는 것.
나는 오늘도 그것을 매일 조금씩 배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