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생이 어릴 적, 우리 세식구는 4월이면 늘 에버랜드 튤립축제를 갔다. 어린이날이면 어디든 데려가 주셨고, 선물도 꼭 사주셨다.
봄이면 동네 뜰에서 냉이를 캐고, 바다로 조개를 캐러 갔고, 여름이면 바다에서 2박 3일씩 놀다 왔다. 주말이면 계곡으로 놀러 다니고, 가을엔 학교도 빼먹고 밤을 주우러 갔다. 겨울엔 썰매장과 스케이트장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늘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없다는 부족함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느낄 법한 결핍도, 내게는 스며들 틈이 없었다.
아빠는 그런 틈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아빠는 단지 받는 법만 가르치신 게 아니다.
늘, ‘주고받는 마음’을 말씀하셨다.
어버이날이나 생신이면, 초등학생이던 우리에게 미리 돈을 쥐여주시곤 “이걸로 아빠 선물을 사 와” 하셨다.
언뜻 들으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랬기에 알게 되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아빠에게 드릴 카네이션이나 선물을 고를 땐, 어김없이 아빠를 생각해야 했다.
정해진 돈에 내 용돈을 조금 보태면 더 큰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건 단순히 선물을 사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담는지를 배우는 일이었다.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남이 안 하는 걸 먼저 할 줄 알아야 한다.”
“너희가 어른이 되면 꼭 함께 봉사활동 다니자.”
나는 아빠의 수많은 말들 속에서 그런 학생으로, 그런 어른으로 자랐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을 ‘베풂‘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내 마음을 건네는 일일 뿐이다.
주고받는 마음을 가르쳐 주신 건
내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느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신 유산 같다.
그것은 누군가를 돕는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을 꺼내어 건네는 법을 배운 덕분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쌓여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건넨다는 게 얼마나 조용하고,
얼마나 깊은 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