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작은 룰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남! 타! 커!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남이 타주는 커피가 맛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정수기 앞에 나란히 서서 각자 상대방의 커피를 타준다.
매일 하는 일인데도 이 순간은 괜히 조금 특별하다.
"뭘로 마실 거야? 맥심? 아아? 설탕 넣은 뜨아?"
아는 걸 물어보는 거지만, 매번 새롭다.
그날의 기분을 물어보는 말 같기도 하고,
오늘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묻는 인사 같달까.
처음부터 이런 습관이 있었던 건 아니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생긴 일이다.
설거지를 마친 어느 날, 남편이 타준 커피를 마셨는데
괜히 더 맛있게 느껴졌다!
커피 맛이 특별할 리 없는데, 이상하게 더 깊고, 더 따뜻했다.
그냥 마시는 커피가 아니라 내가 쉴 수 있는 시간,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는 마음이 담긴 맛이었다.
여름엔 더 그렇다.
시부모님을 도와 복숭아 작업을 마치고 하루 종일 땀 흘리고 돌아왔을 때, 남편이 타준 냉커피가 얼마나 꿀맛인지.
온몸이 지쳐 있을 때, 손에 쥐어주는 그 시원한 컵 하나가 마음까지 식혀주고, 어쩐지 하루를 다 버틴 보람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룰을 지킨다.
각자 자기 커피를 타면 되는 걸, 굳이 상대방의 커피를 타준다.
그 짧은 시간이 주는 힘을 알기 때문에.
짧고 사소하지만, 오늘 하루 확실한 행복 하나는 챙겨주는 시간.
삶이란 게 원래 그렇다.
거창한 기념일이나 대단한 선물이 행복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이렇게 작은 습관 하나, 사소한 배려 하나가
매일의 하루를 더 부드럽게, 더 따뜻하게 만든다.
커피 한 잔으로 서로의 하루를 더 충만하게 하고
작은 응원과 쉼을 건넨다.
커피는 그냥 마셔도 좋지만, 누군가 나를 위해 타준 커피 한 잔은 그 속에 마음이 담겨 있어서 더 깊은 맛이 난다. 아마 그래서 '남 타 커'란 말이 있나 보다.
아무튼 우리 집 커피 타임은 확실한 행복 한 스푼을 매일 담아내는 시간이다.